블로그 세탁 대작전
느닷없던 블로그 챌린지가 불러온 과거 잔재 숨기기
한 때 블로그 좀 해봤다 하는 친구들이 요 며칠 허겁지겁 정리하는 것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의 과거 잔재들이다.
5월 1일부터 14일 동안 매일 빼먹지 않고 일기를 쓰면 무려 만원 가량을 주겠다는 네이버 블로그 챌린지 탓인데, 얻을게 무엇 있어 이 일기를 돈 주고 사나 싶었으나 하는 이야기를 가만 들어보니 MZ세대의 데이터 수집이 주목적이라는 듯싶었다. (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 세대도 아니면서 괜히 실제와는 다른 정보를 적어내고 싶은 비뚤어진 생각도 좀 들고.)
계좌 파서 공모주 청약 넣기는 그리 솔깃하지 않지만 또 이런 잡다한 금전에는 이상하게 더 흥미가 동하는 게 사람 심리가 참 묘하다.
아무튼 잊고 있었던 학생 시절의, 소위 흑역사를 들추는 과정에 비명과 한탄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모양새가 꼭 싸이월드의 완전 종료가 기정사실화처럼 이야기되던 시절 제 과거 미니홈피를 방문해보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의 오프라인 관계 위주로 흘러가던 싸이월드와 달리, 온라인 관계 위주로도 줄곧 흘러가던 블로그는 조금 색다른 느낌의 괴로움이긴 했을 터였다.
그래도 글을 쓰기는 써야 할 테니, 비명은 비명대로 지르며 다급한 빨래가 이어진다. 글을 통째로 삭제하려면 카테고리 째로 삭제하는 것이 이롭다. 과거 블로그 타이틀을 사방에 자랑하고 싶지 않다면 블로그 히스토리는 꼭 잊지 말고 전부 지워라. 온갖 팁이 난무하는 가운데 파헤쳐지고 지워지는 과거 데이터들을 보니 얻어갈 데이터보다 소실된 데이터가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챌린지가 끝난 다음이면 10년도 초반 블로그 글은 지금보다 더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바라보고 있다면 잡생각이 따른다. 일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리 노트 채로 버리거나 지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지 않는데, 기묘하게도 웹 상에서는 종종 전부 다 지워버리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본질적으로 나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과,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의 차이인 걸까, 아니면 펜과 키보드의 차이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개인의 성질인 걸까.
미숙했던 시절의 (혹은 미숙하다고 믿고 싶은 시절의) 이야기는 언제나 묻어두었던 깊숙한 곳의 양심을 쿡쿡 찌른다. 몰지각한 발언들, 배려 없던 행동들이라던지, 이제 와서 꺼내면 모르긴 몰라도 사람 몇은 잃을지도 모르는 생각들. 그 지난하고 못난 과정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지만 언제나 허둥거리고 실수투성이이던 부분은 예쁘게 오려내어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두고 싶은 법이다.
당연한 과정이라고 해서 그걸 기교 없이 남들 앞에 꺼내놓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나라고 그 유혹에 자유롭지는 않았으니 한 번 두어줄 써 보고 뭐라도 받아볼까, 만 얼마에 과거 수치와의 대면이라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생각하며 블로그를 열어보았지만 생각보다 별 것 없어 되려 김이 빠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학교 이전, 그러니까 중고등학생 시절 쓰던 블로그는 나름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으로 이런저런 후기 포스팅도 올리고, 댓글도 작성하며 지냈던 것 같기는 한데, 당시의 내 거취 탓인지 잦은 해킹으로 툭하면 카지노 광고 블로그로 둔갑해 계정 자체를 버렸더랬다.
새로운 계정을 만들 즈음에는 블로그라는 수단 자체가 어느 정도 유행이 지난 후의 이야기인지라, 별달리 열의를 가지고 운영해봐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질 않았고.
그러니 담백하게 아무 글이나 작성해두곤, 안락하니 텅 빈 블로그에 앉아 안타까이 끼지 못한 비명의 대열을 즐겁게 구경하는 것이다. 남의 소소한 괴로움이 이다지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