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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Jun 06. 2021

상식의 기준에 대해

아날로그 시계를 읽을 줄 모르면 안 되는 걸까?


  몇 년 전 온라인 상에서 나름대로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이야기가 있다.

  삼국지의 관우를 아는 것은 과연 상식이냐, 혹은 모를 수도 있냐는 내용이었다.


  익명 논의가 대체로 그렇듯 결론 없이 진흙탕 싸움으로 질척이다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 질문 자체는 꽤 오랫동안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 소설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권 외,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소설 자체를 몰입해서 읽지 못하는 탓이다. 그런 내가 삼국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 건, 정말 단순히 어린 시절 집 안에 놓여 있었던 삼국지 전집 탓이다. 성경 읽듯이 줄글과 줄글 사이에 간격을 둔 채 슬렁슬렁 읽었다지만, 그런 얼렁뚱땅 인 독서도 서너 번쯤 반복되면 어느 정도 기억에 남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집에 그 전집이 없었더라면 이름 두 자 정도만 간신히 안다고 답변하는 경우의 나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삼국지 이야기가 딱히 교과과정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긴 하는데, (초등 교과 기준이지만.) 그렇다면 슬슬 이런 생각에까지 이른다.

  상식의 기준이란 대체 무얼까.




상식의 기준이란 대체 무얼까?

이런 질문에는 사전부터 긁어와 나열하는 게 암묵적 규칙이다.

상식(常識, common sense)이란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 일반적인 견문,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을 말한다.



  그러니까 나라와 문화, 나이와 성별, 삶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상식이라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내에서는 카레에 김치 반찬이 없으면 비상식이고 중국에서는 마라탕을 시킬 때 번호가 쓰인 빨래집게를 주지 않으면 비상식이지만 그것이 국경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와중 얼마 전, 넷상 이슈를 구경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하나 발견했다.

  아날로그 시계를 읽을 줄 아는 것 또한 상식의 영역일까?


  처음에는 분명 꽤 충격적인 가정이긴 했다. 그거야 위에 이야기했던 관우와는 다르니까. 매 가정집 벽에 시계 걸듯 관우가 걸려있지는 않다. 그러나 하루에도 지금 몇 시지?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휴대폰이든, 벽시계든 무언가의 시계를 확인해야 하지 않던가.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내 휴대폰 시계와, 집 거실의 시계를 확인했다.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휴대폰은 (너무나 당연히) 디지털 시계였고, 거실의 시계 또한 요즘의 유행에 따라 아날로그 시계를 치워두곤, 흰 빛을 쏘아내는 디지털 시계로 바꾼 지 오래였다.






  나는 갑오시가 정확히 어느 시간대 즈음인지 알지 못한다. 십이간지 시간 자체를 외우질 못했다. 심심풀이로 인터넷 무료 사주를 찾아볼 때에나 그래서, 7:30분이 뭐였더라? 싶은 심정으로 검색창에 두드려보곤 한다. 한 100년 여 전 즈음에는 아마도 당연한 상식이었겠지만 이제는 모른다 해서 아무도 탓하지 않는, 그러나 잘 알고 있다면 언젠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소소하니 알차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잡학 지식이 된 셈이다.


  그러니 아날로그 시계를 읽는 법 또한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아직까지는 어린 시절 유아 교육으로 시계 읽는 법이 꽤 많이 존재하는 사실을 제쳐두고. 만물이 디지털화되고, 하다못해 대형 마트의 가격표까지 액정 화면으로 교체되고 있는 실정에, 아날로그 시계도 어쩌면 슬슬 주류에서 놓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어렴풋한 가정도 떠오른다. 어쩌면 상식과 비상식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러니 내가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길어진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에는, 아날로그 시계를 읽을 줄 모르다니 어쩜 그럴 수 있어!라는 발언이 꽤 구시대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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