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내가 왜 버려야 해?

엄마의 경대

by stream


엄마가 쓰시던 경대가 아니다.

스물여섯에 시골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출퇴근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군청 근처에 단칸방을 얻었다. 그때 엄마가 사주신 경대이다.


주인집 마루 건넌방은 월세 4만 원. 마당 쪽으로 난 방문을 열고 나와 연탄아궁이가 있는 좁다란 부엌으로 갈 수 있는 구조였다.

방은 꽤 넓어 덩그런 방에 경대 하나 있고 또 뭐가 있었더라?

한 겨울에 연탄을 자주 꺼트렸다. 마당 쪽으로 나와서 다시 부엌으로 드나들며 꺼진 연탄불을 피워 밥도 해 먹어야 하는.


쉽지 않은 자취방 생활은 겨우 7개월 만에 끝났다. 더 이상 피폐한 자취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출근 10분 전에 일어나 후다닥 출근하곤 했는데 다시 왕복 서너 시간의 출퇴근 길로 돌아갔다. 직장 선배의 프라이드 승용차 뒷좌석에 짐을 다 실어왔으니 정말 단출한 자취생활이었다. 당차게 시작했으나 방황하고 외롭고 어설펐던 이십 대 중후반의 직장 생활.


내게 경대를 사준 엄마의 마음과 그때의 여렸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경대. 그 시절 나무로 단단하게 만들고 칠도 야무지게 한 거여서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부서진데 없이 튼튼하다. 정리 프로젝트 때마다 사용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던 경대는 버리기 후보 1순위. 하지만 매번 버리지 못했다.


한 번은 단단히 마음먹고 공방 쓰레기 모으는 창고에 버렸는데 구석에 오랫동안 처박아두고서도 아주 버리지는 못했다. 그 사이 새것처럼 깨끗하던 몸체는 여기저기 칠이 벗겨졌지만 거울도 작은 서랍도 여전히 단단했다.


어느 날 문득, 어두컴컴한 구석에 짱짱하게 서 있는 경대를 보다가

“이걸 내가 왜 버려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묵직한 경대를 다시 집에 들고 왔다. 집에 들고 왔지만 역시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아 일단 옷장 안에 또 한 번 처박아두었다. 한참 뒤에야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리저리 치우며 애써 경대의 자리를 만들었다.


내 책상 옆 나지막한 책꽂이 위에 두고 보니 나를 보는 듯하다. 경대를 사준 엄마의 마음도 느껴진다.

상처 입으면서도 꿋꿋이 지내온 작고, 여리면서 단단한 나의 경대.


버리지 않길 잘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Stay away from my daugh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