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입학.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예술전문사 합격기.
2부에서 이어집니다.
비전공자라는 정체성으로 시작하였으나 언제까지 비전공자인채로 남을 수는 없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고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학위 없이도 전문성을 갖춰나갈 수 있겠으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당 분야의 학위를 채용 시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가능성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학위를 갖추는 편이 쉽고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배움의 기회가 도처에 놓여 있음에도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특정한 장소에 모여 전문성을 갖춘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경험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 또한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선택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비전공자로서 장기적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이를 위한 준비(미술관에서의 경력 등)를 마쳤다면 어느 학교로 진학할 선택해야 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고려대, 국민대, 경희대, 덕성여대, 동국대, 동덕여대, 명지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서울대, 이화여대, 조선대, 중앙대, 한양대,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익대 등에서 미술관 큐레이터와 관련된 학위를 개설하고 있다. 이들을 크게 미술사학, 미술이론, 큐레이터 정도로 나누어볼 수 있다(필자의 주관적인 기준으로의 분류임). 미술사 지식은 너무나도 필수적이기에 어느 학교의 교육과정을 보더라도 전체 강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과거의 역사를 해석하는 사학자의 길을 걷기보다는 현재 혹은 미래의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고고미술사, 미술사학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곳 중에서 선택하였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한예종 미술원 미술이론과에서 배우고 있으며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적도,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직접 교류한 경험도 없기에 다른 학과와의 비교는 불가하다. 이 글에서도 한예종에 지원하여 합격하게 된 과정을 주로 서술한 뒤 한예종의 예술전문사 학위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적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예술전문사과정은 8월에 원서접수를, 10월에 면접을 진행한 뒤 10월 말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1년에 한 번, 전기 입학생만 모집하므로 일정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원서접수 및 예비심사에 필요한 서류는 위와 같다. 공인영어성적의 점수 기준이 낮은 편이라 대부분 면제를 위해 성적표를 제출하게 된다. 지원자가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할 서류는 연구계획서, 자기소개서, 출신대학 성적증명서, 프로필이다.
프로필은 지정된 서식에 맞춰 작성하면 된다. 필자는 학부 입학에서부터 졸업 이후 미술관에서 일하며 취득한 준학예사 자격증까지 10여 년의 활동 중에서 5가지를 적었다. 학부 입학에서 졸업까지 열심히 활동한 사진동아리, 대외활동 수상이력, 미술관 경력 등을 적었는데 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활동과 프로젝트 추진 능력, 연구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대외활동을 중점적으로 선택하였다.
연구계획서와 자기소개서는 자유양식이다. 네이버와 구글을 통해 연구계획서의 기본적인 구성과 작성 방법을 찾은 뒤 나머지는 스스로 작성하였다. 재학생, 졸업생에게 첨삭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으나 비전공자로서의 개성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여 오탈자 수정 정도만 지인들에게 부탁하였다. 자기소개서에서는 화학과에서 미술이론으로 전공을 바꾸는 만큼 그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꾸며내기보다는 진정성 있는 답변을 적기로 하였다. 과학의 경이로움과 예술의 아름다움의 원천이 같다는 생각, 그 두 분야의 교집합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믿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설명하였다. 이런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1장, 프로필에 작성한 경력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 2장을 할애하였다.
연구계획서는 정말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글을 적었다. 준학예사 자격을 따기 위해 관련 공부를 한 경험은 있지만 학부 4년 동안 미술이론을 공부한 학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처음에는 무엇을 주제로 삼더라도 관련 연구가 이미 존재할 것 같다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RISS에 검색하면서 관련 연구 주제가 나오지 않더라도 내 검색 능력이 부족하여 못 찾는 것이지 이미 이런 주제는 진부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엇도 쓰지 못할 것 같아지기도 했다. 고민 끝에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배우러 가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냈다. 어떤 점이 어떤 이유에서 궁금해졌는지, 알아내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목적지에 어떤 것이 존재할 것 같은지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들과 조사한 자료를 종합하여 작성하였다. 한 학기 동안 공부하고 나서 연구계획서를 다시 들여다보니 이미 학계에서 논의가 오고 갔던 주제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재미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영어 독해 테스트를 본다. 모집요강에는 나오지 않지만 매년 봐왔다고 한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준비할 수 있는 성격의 테스트는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 문단 분량의 지문을 3개 제시하고 5분 정도 준비할 시간을 준 뒤 면접 중 한 두 문단의 해석을 요청한다. 세 문단 모두 난이도는 평이했지만 늘 그렇듯 긴장이 발목을 잡는다. 테스트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 이유로는 첫째 영어 성적을 제출할 정도라면 무난하게 해석할 수 있는 정도의 글이라는 점이며 둘째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해석 실수를 한 경우라도 합격한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intelectual이 하필 그날따라 inter-lecture로 보이는 바람에 상호학제간..? 이라고 번역해 버린 필자도 붙었으니 말이다.
그 외에는 프로필, 연구계획서,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한 질문이 주어지며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전공에 대한 깊은 지식을 물어보는 질문을 한다기보다는 진심으로 이 분야의 공부에 흥미가 있는 학생인지 확인하려는 질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솔직하게 서류를 작성했다면 이 부분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꽤나 고민했다. 예술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자유롭게 입어야 하는 건지, 정장을 입고 가면 딱딱하고 고지식해 보여서 오히려 감점요소가 될지 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단정하게 입고 가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정장을 입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한예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다. 대학교가 아니기에 석사학위 대신 석사학위에 준하는 예술전문사학 위를 수여하며 박사과정은 개설되지 않는다. 30주년을 맞이하여 대학교로의 승격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제쯤 가능할지 기약이 없는 실정이다. 학교에 다니며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조금 적어보자면, 이후 현장에서는 석사학위로 인정받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관련학과 석사학위 소지자'라는 지원 자격을 제시하는 모집 공고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외 학교에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진학하는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학교에서 주워들은 것들이기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학과 내 분위기는 '크게 상관없다'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석사학위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면 다른 학교에 지원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분야에 진심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각자의 관점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을 기대하고 온 필자는 학과의 분위기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