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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불법체류자인가, 미등록이주민인가?

2025년 LA시위의 존재자들에 대한 단상

by 승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며 지난 재임 기간부터 추진해 온 이민자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미국 내 불법체류자를 추방하는 정책과 이에 대한 반발 시위 속에서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논쟁이 부상하고 있다. 뉴스 메일링 서비스 '뉴닉'은 6월 8일부터 매일 해당 사건에 대한 기사를 발행하고 있으며 추방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을 미등록이주민이라고 표현해 왔다. 한 독자가 이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질문에 대한 에디터의 답변이 오늘자 뉴스레터에 실렸다.

e243f270-451c-11f0-bace-e1270fc31f5e.jpg.webp 출처 : BBC

“미등록 이민자는 불법체류자와 무엇이 다른지, 만약 불법체류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국가의 법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그전에는 왜 추방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불법체류자’가 아닌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범죄자를 연상하게 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혐오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 행위가 아닌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고요.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와 해외 주요 매체에서는 ‘illegal(불법)’ 대신 ‘undocumented(미등록)’ 또는 ‘unauthorized(미승인)’ 등의 표현을 쓰고 있어요.

미국에서 미등록 이주민이 늘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역시나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커요. 더 나은 일자리와 삶의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향하는 것. 미등록 이주민은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예: 농업·건설업)은 물론, 서비스업에서도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미등록 이주민이 없으면 미국 경제가 안 돌아갈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미등록 이주민들을 둘러싼 여러 논란도 있지만, 미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이들을 ‘활용’ 해왔다고 볼 여지도 있는 거예요. by. 에디터 반 �


나는 질문자와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었고 에디터의 설명은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했다. 범죄자를 연상하게 한다는 이유에서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불법체류자는 범죄자가 맞다.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주라는 점은 본인의 판단에 따라 불법체류 신분이 되기를 선택했다는 의미이기에 범죄자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비자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출국하지 않으면 불법체류 상태가 되므로 법적으로 적확한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에는 가치중립적인 법적 서술로서의 의미가 존재한다. 오히려 누군가가 불법체류라는 표현을 틀린 표현이라고 지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불법체류자(illegal immigrant)'는 법적 상태를 명확히 드러내는 용어로 보이지만, 그 단어가 사람의 정체성에까지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반면 '미등록이주민(undocumented migrant)'은 등록되지 않았다는 상태를 지칭함으로써 제도에 포섭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맥락을 열어둔다. 전자는 법과 질서의 관점을 반영하고, 후자는 인권과 사회적 배제를 고려한 시선이다.


비자가 만료되었음에도 출국하지 않은 상태는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난민 승인을 위한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인 상태, 인도적 체류 허가를 얻어 행정 절차를 진행 중인 상태, 자진출국 불이행 및 고의 장기체류 상태가 그것이다. 이중 앞의 두 경우는 미등록이주민이라고 불릴 수 있다.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의 이주민이지만 불법의 영역이 아닌 법의 회색지대에 임시로 머무는 상태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와 다른 점이라면 법률을 고의로 위반한 것인지, 제도가 허용하지 않는 회색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이들은 법을 어겼다기보다 법이 포용하지 못한 상태로 봐야 한다. 미등록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세 가지 상태 모두에 적용하게 된다면 불법체류자 전체를 과도하게 옹호하거나 불법을 의도한 체류자와 제도의 회색지대에 있는 체류자를 동일한 서사 안에 배치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기준에 속하는 사람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미국은 농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에서 미등록이주민의 노동력에 구조적으로 의존해 왔다. 이들은 시민들이 꺼리는 고위험·저임금 노동을 도맡아 수행해 왔고, 사회는 이를 묵인하거나 활용해 왔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추방을 명령했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는 이들을 저임금 노동의 공급자로서 필요로 한다. 대형 농장에서는 저임금노동자가 줄어들 경우 수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에도 정부의 판단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추방만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공식 입장과 비공식적인 현실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필요나 대중 선동의 맥락에서는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호명하며 범죄화하고 배제한다. 이용하면서도 배제하는 이중 구조 속에서 이들은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법 밖의 존재)가 된다.


미셸 푸코는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고 말한다.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은 단지 법을 어긴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험한 존재, 사회 바깥의 타자로 구성하는 담론 장치다. 법을 어긴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쓴다는 말만으로 끝내기에는 불법체류자라는 단어가 그들을 사회에서 배척하는 방식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서 언어가 사람을 말하게도 하고 침묵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불법체류자라는 호명은 그 존재의 정체성을 결정짓고, 사회적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그들을 불법체류자라 부를지, 미등록이주민이라 부를지의 선택은 법적 기술을 넘어,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언어의 사용자는 특정 표현을 선택함으로써 특정 정치적 견해에 서게 된다.


우리는 LA시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를 수도, 미등록이주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앞선 분류에 따라 스스로 불법임을 인지하면서도 체류 상태를 고의로 유지하는 사람들까지 미등록이주민의 범주에 포용하는 것은 범법자에 대한 과한 인도주의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안정된 신분을 갖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불안을 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타자로 간주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불법이민자라는 표현을 쓰고자 하는 충동은 우리의 정체성을 LA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에 투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등록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투영되었을 것이다. 불법체류자는 법을 기술할 수 있으나, 동시에 사람을 침묵시킬 수 있다. 그 말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를 묻는 일은 곧 우리가 어떤 세계를 지지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표현의 선택은 곧 위치의 선택이다. 어떤 단어를 고르는 가는 내가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절대적으로 옳은 단어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가 누구를 말하게 하고, 누구를 침묵시키는지를 민감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언어는 단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언어는 현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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