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의 일기
최근에서야 나는 또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걸 알았다. 마트료시카의 인형처럼 우물 밖에 나왔더니 또 다른 우물이 있었더라 인 셈이다. 지금은 고개를 들어 보이는 우물 밖과의 높이에 무력할 뿐이다.
이제서야 현실이라는 알을 깨고 나온 건가도 싶지만 기분은 넘쳐흐르는 락앤락 통을 어떻게든 욱여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이, 물 위에서 유영하다가 자연스럽게 귀가 잠겨 한참 멍했다, 화들짝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매 순간 울컥하고 번들거린다.
최근에 누군가에 의한 중산층의 정의를 들었다. 간절함을 못 느끼는 것. 비빌 언덕이 있는 것. 그저 한참 동안 멍했다. 여태 간절하지 않은 적도 없었지만 그저 짊어져야 할 언덕만 있다는 걸 잘 몰랐다. 그저 난 철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의 마지막 학력은 국민학교다.
열세 살 때부터 공장 용접 일을 시작해 낡아 해진 고무신만 신고 다녔다. 개발 전 늘어선 판자촌이 잇따른 종로구 장사동의 일대는 유일한 집 터였고 민주를 외칠 시간과 꽉 쥔 주먹이 없던 젊은 시절을 보냈다.
개천에서 용이 났던 과거 세대 속의 삶이지만 그 개천이 흙탕물이면 이야기가 다르듯이, 인색함과 이기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천성 탓에 K-장남도 아닌 막내 벌임에도 집안을 거드느라 만년 일개미를 자처했다.
나의 어머니의 마지막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종이 한 장 살 돈이 없어 허덕이는 가난에, 뒤에 태어난 남동생들의 미래를 위해 나이 열여덟에 방직 보세 공장으로 들어섰다.
그때 그 시절에는 다들 그랬어라는 마법의 단어로 포장된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개인의 야망과 커리어는 천장에 고이 닫혀버렸다.
이 둘이 만나 성실히 삶을 이어나간 탓에 내가 태어날 무렵 자영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사업이란 모름지기 천성이 착하고 뻔뻔함을 모르면 호구라는 딱지가 붙는 게 당연한 건지, 경제 10분위 한참 밖인 형식상 중산층이나 정작 지표의 규모대로 살지 못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유영하고 있다.
"10억 부자는 50억 부자를 보고 거지라 자칭하고, 50억 부자는 100억 부자를 보고 돈 없다고 하고 살아."
아버지가 내게 늘 하는 말이다. 재산에 삶의 기준을 맞추지 말라는 뜻이다. 본인은 몸이 상하지 않은 데가 없으면서. 비겁하기 그지없는 상냥함이다. 아버지의 회사에 근무하는 게으른 모 부장은 최근 아들에게 벤츠를 선물하고도 여유가 있는데 말이다.
매번 듣는다. 가난을 이번 대에서 끊고 싶다고. 그러니 이 나이에도 여행 한 번 못 가보고 고생한다고. 해외 한 발짝 나가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쉼도 없었던 두 분에게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속이 문드러지는 기분이다.
이런 내 이야기를 듣고 해외 유학이나 정착을 준비 중인 친구들은 말한다.
"너 삶은 네가 사는 거지. 이 나라는 답이 없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해외로 나가."
"이해는 한다만 K-장녀가 그렇지 뭐. 그래도 그런 거 다 제쳐둬야 너 삶을 살 수 있어."
속으로 생각한다. 보호자가 노후 준비가 되어 있는 안정된 가정은 무엇보다 큰 선물이라고. 전폭적인 지원까진 아니더라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건 모종의 기회라고.
이런 기프트와 거리가 먼 현실의 윤곽을 알수록 증식하는 짐 덩어리를 똑바로 직시하기가 싫어 내면적으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그 나물에 그 밥인지 외면하지 않아야함을 더 배워버린 탓에 나의 회피는 계속되고 있고 이 괴리는 꾸준히 나를 괴롭힌다. 그저 단순히 우물 밖으로 껑충 뛴 개구리가 되고 싶다.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싶다는 말이다.
아직도 나는 어릴 적 퇴근한 아버지의 손에 쇳내가 가득 풍기는 동전들과 "아부지 오늘 일당"이라며 멋쩍게 웃어 보이던 표정이 스친다. 급식 도우미를 오래 한 탓에 성한 곳이 없는 허리와 손에 난 습진 그리고 뜨거운 걸 오래 만져 웬만한 데임에는 감각이 없어진 어머니의 굳은살은 여전히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이렇게 기프트라는 단어로 입체적인 사유를 하며 연초의 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