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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ee May 02. 2024

나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삶의 여백이 너무 부족해서 5

추석을 포함한 2주 동안 부산에 있다가 불꽃 축제가 있던 토요일 저녁, 서울로 올라왔다.


하필 짐 때문에 지하철이 아닌 택시로 이동해야 했고, 내 집은 영등포구에 있다.

길에서 꼼짝없이 잡혀서 택시 기사님과 어디로 돌아가야 막히지 않을까 고민했다.


기사님: “ 아이고 오늘 날 잘못 걸리셨네~ 아니~ 폭죽인가 뭔가 뭐 그리 대단한 걸 한다고”

나: “ 아휴 그러게요.. 어떻게 해 진짜..ㅠㅠ (하필 화장실이 엄청 가고 싶은 상태였다)”

기사님: “이대로는 안 되겠어 도망쳐야겠어요. 일단 여기 말고 다른 길로 빠져봅시다. 좀 돌아가는 길인데 어쩔 수 없어요.”

나: “도로로 치면 돌아가더라도 결국엔 그게 좀 더 빠르겠죠?”


그렇게 우리는 다른 길로 돌아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멘트를 3번이나 듣고 나서야

서강대교로 빠르게 진입해서 뻥 뚫린 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심지어 서강대교위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불꽃이 펑펑 터지는 것을 구경하며 왔다.


나: “와아~~!!!”

기사님: “(속도를 약간 줄여주시며) 보면서 가세요”

나: “감사합니다!! (카메라 꺼내 듬) 대단하긴 하네요..ㅋㅋ”

기사님: “그러게요 대단하긴 하네,,ㅋ”


이렇게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간 비워둔 집으로 돌아온 뒤 바로 샤워를 했다.

이젠 진짜 쌀쌀한 가을이고, 포근한 내 집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데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릴 거 같았다.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연 작가의 책 <매일을 헤엄치는 법>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이연 작가가 새벽반으로 수영을 바꾼 날, 텅 빈 새벽의 수영장 가운데서 '이 푸르른 수영장! 난 이런 게 너무 좋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울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는(이연 작가는) 너무나 작은 것을 지키려고 삶을 낭비하는구나. 그런데 그게 아깝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샤워를 하면서 그 마음과 똑같이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근데 난 아직 그 낭비가 아깝지 않은 건 아니라서, 아깝긴커녕 소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낭비를 찾고만 싶어서 울지 않고 꾹 참았다. 목구멍이 뻐근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래는 같은 책의 <계절의 순서>라는 에피소드 중 일부이다.

계절의 순서
나는 여름에 태어났으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여름에서 시작해 가을, 겨울을 지나
봄으로 끝나는 이야기로, 그러니 지금 이 초여름은 나의 시작이라고.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추위를 많이 타고 두껍게 입는 걸 싫어해서 평생 겨울을 싫어해왔다.

그런데 신기하게 올해는 늦여름부터 가을이 기다려지고, 가을이 오니 이젠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올해 가을은 나의 시작인 겨울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두 팔 벌려 맞이할 수 있게 미리 몸도 마음도 준비하는 계절인 것 같고, 실제로도, 앞으로 남은 가을 동안도 그럴 것이다.



오늘 택시에서처럼 조금 돌아가는 것이 다 지나고 봤을 때 훨씬 빠른 길이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느긋하게 ‘결국 도착하잖아. 내가 바랬던 그곳에’라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 흐름을 맡기고 있으면 그 무엇보다도 환하고 멋진 불꽃같은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행복은 이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처럼 단순하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 시작이다.

내가 일상에서 했던 시도들이 인트로다.





숙제

내 계절의 순서 생각해 보기


식물원 - 유진목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노래

It’s My Life - Bon 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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