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점. 점.

차근차근의 맛

by 오예
다리를 쭉 뻗어보니 사방팔방 멋스런 흙 장식이 되어 있다.

도자기 수업을 재개한지도 어느덧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청바지 차림으로 갔다가, 그다음엔 니트 소재의 부드러운 바지를 입었다, 급기야는 트레이닝복 바지인 조거 팬츠로 기승전결이 이뤄졌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부츠를 신다가, 운동화를 신다가, 급기야는 슬리퍼를 신고 허름한 차림새로 훌렁훌렁 공방에 간다. 복장에 성의가 없어 보인다고? 아니다. 이런 복장이 물레 차기 TPO의 정석이라는 걸, 물레를 3번만 차 보면 금세 납득하고야 말 것이다.


아픔도 그랬다. 첫 주에는 어깨가 엄청 아프더니, 두 번째 주에는 오른손 팔목이 간당간당했다. 가까스로 나았던 건초염이 도질까 봐, 그래서 다시 도예를 멈춰야 할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이번 주는 그래도 어디가 유별나게 아프지는 않다. 점차 힘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를 체득하는 모양이다. 좋은 신호다. 여전히 왼손가락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얼핏 보아서 선생님은 흙을 정말 자유자재로 다루시니 힘이 별로 안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물레는 겉보기만큼 낭만적인 장르가 아니다. 흙이 어찌나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모른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흙의 제멋대로 춤사위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점. 점. 점. 나아진다. 수업이 반복될수록.


서서히 흙이 꼬였는지, 중심이 제대로 잡혔는지를 손끝으로 느낀다. 중심에서 엇나간 흙을 물레의 중심에 곧이 세운다. 그런 사사로운 것 같으나 실상은 물레에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 작업을 하나씩 할 수 있게 되는 걸 느낄 때, 조금은 흙과 친해진 기분이 든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조금만 마음을 느슨히 먹었다간 흙은 다시 비비 꼬여 꽈배기가 될지도 모르는 새침데기니까! 흙의 마음을 얻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그래도 즐거우니까 열심히 구애활동을 하는 것이다, 나란 사람은.


처음엔 흙이 튀는 것에 마음을 졸이며 작업을 해서 앞치마나 옷가지에도 묻어나는 게 많지 않았는데, 수업을 하면 할수록 옷에는 야작을 마친 미대생의 앞치마처럼 흙물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수업이 끝나고 해가 저물어버린 밤 중에 버스 정류장에 이르러서야 옷가지의 상태를 체크한다. 나도 모르는 새 흙의 파편을 이렇게나 몸에 주렁주렁 달고 나왔구나 싶다. 허허, 하는 웃음이 난다.


공방에서 기물을 화수분처럼 뽑아내던 다른 수강생을 몹시 부러워하던 옛날이 있었다. 그때는 더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다그치는 마음에 공방 밖으로 나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의 무게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옷에 묻은 흙먼지에 희희낙락하고 있다. '지난 주보다 나아졌네? 이번 주는 흙이 이만큼이나 튀는지도 모르고 작업을 했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니 가뿐하다. 이제야 조금 도예 하는 풋내기 같다. 흙이 잔뜩 묻은 옷가지를 훈장 삼고, 빨랫감이 느는 수고로움은 뒷전으로 두고 못내 뿌듯함에 취한다.


점. 점. 점.

차곡차곡.

차근차근.


그런 낱말들의 소박한 힘을 배우려고 나는 흙을 매만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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