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린이의 하루

4시간의 물레 차기라는 노동 아닌 노동

by 오예

사정이 생겨 1월 한 달 도자기를 쉬었다. 도예는 손으로 하는 것이라 느낌을 기억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느낌은 쉬이 사라진다. 도예에 시간을 들이는 게 답이라면, 흘려보내는 시간은 쥐약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는 상황이 생긴 것을 어쩌겠는가. 더욱이 평소 좋지 않던 오른 손목도 시큰한 차에 내심 잘됐다 생각했다. 얼마간 쉬다가 재개하면 금세 감각이 살아 돌아오겠거니. 과거의 나야. 안일하였구나. 껄껄.


그렇게 2월이 됐다. 아아. 휴식은 어찌도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지. 도예를 하지 않고서도 시간은 무언가로 그득그득 채워지고 말았다. 아. 물론 오해는 마시라. 나는 도예에 점점 빠져들어서 인생 이모작으로 도자기 굽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는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이므로. 어디 한산한 시골에서 ‘이 동네 컵은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컵쭐(?)을 내는 사람이 되는 게 새로운 꿈이 되었달까? 물론 지금 같은 실력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지만(…) 그거야 앞으로 하면 된다.


패기 있게 하면 된다고 썼으나 선생님은 당장 내가 다시 흙의 중심을 잡는 작업부터가 난관이겠다 생각하셨던 모양인지 수업 시간보다 30분 일찍 올 것을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강권하셨다. 마침 나도 물레를 막 차고 싶은 마음이 온천수처럼 솟아났으므로 바지런히 발걸음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처음 올린 흙은 어찌어찌 수월하게 중심을 잡아 올렸다. 나는 조금은 의기양양했다.


오, 되네?


순탄하게 오늘은 기물을 한 서너 점은 만들겠구나 하는 (헛된, 너무나 헛된!) 꿈에 부풀었음은 물론이요. 코가 1 cm쯤은 높아지는 듯한 우쭐한 기분도 없었다고 차마 못하겠다. 그렇게 일자 컵 만드는 작업으로 넘어갔는데. 어쩐지 중심이 잘 잡히더라니. 왜 일자를 만들지 못하니.


그렇게 틀어 올린 흙 한 움큼을 날려먹고, 다시 중심을 세우고, 또 날려먹고, 또 세우고, 또 날려먹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예전에는 하나의 기물을 만드는데 그저 노심초사하며 아주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오늘은 어쩐지 작은 실패를 아주 여러 번 맛보게 됐다. 선생님은 나의 실패를 격려하며 차라리 많이 무너뜨려보고 망가뜨려보는 것에서 더 많이 배우니 더 많이 실패해 보시란다. 나도 실패가 좋은 자양분이라는 건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타는 내 속은 어찌나 상이한지!


결국 쌓아 올린 흙을 몽땅 날린 후, 다시 새로운 흙을 올려 2차전을 시작한다. 이쯤부터 어깨가 누군가에게 맞은 듯이 으쓱거리고 허랑방탕하게 정리되지 않는 머리칼만 흩날려 나는 스스로가 몹시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중심을 세우는 작업은 또 왜 이다지도 되지 않는지! 옆에서 다른 수강생들은 척척 무언가를 다 잘하는데. 나는 내 똥 손을 원망하면서도 동시에 똥 손을 어르고 달래 갈 길을 가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마음 같아서는 선생님이 다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이 지점이다. 하지만 진정한 스승은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법이고… 우리 선생님은 참 스승이셨으므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해서 물레를 찼다. 이 시점부터 나는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으로 끌려가 노역을 해야 했을 도예공의 심정에 나를 대입하기 시작했다. 내게 처자식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 기물을 못 만들면 다 죽어… 같은 설정이었다. 이런 비장한 마음까지도 필요해지는 시점까지 도래하다니.


공방에 1등으로 도착해서는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옆에서 중지를 밀지 말고 누르고, 엄지를 누르고 검지로는 지지를 하라는 등 구두 지시를 내려주셨다. 나는 아바타가 되고서도 삐걱거림을 어쩌지 못해 난관이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선생님의 한 마디,


“예은님, 그래도 오늘 기물 하나는 만들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아뇨, 선생님. 괜찮아요… 라는 말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반짝이는 선생님 눈빛을 보고는 차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이자 마지막 기물은 공을 들여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다. 온갖 고통과 에너지가 집결된 기물이라 손 보기도 두려워 나중엔 만지기도 겁이 났다. 하지만 또 단호한 선생님의 음성.


“예은님, 혹여 잘못되더라도 만질 건 만져야 해요!”


4시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지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단호한 음성은 어쩐지 주저앉고 싶은 물레 앞의 나를 번쩍 깨우는 채찍 같은 말이었다. 망가질까 두려웠지만 다행히 어떻게 제대로 된 모양의 컵이 그렇게 한 점 탄생했다는 이야기.


가만 보면 나는 도자기를 배우면서 인생도 배우는 거 같이 느껴질 때가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