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속도는 다를지라도

당신에게 알맞은 속도가 있다

by 오예
오늘의 꿀렁꿀렁 기물들…

오늘은 공방에서 물레를 차며 기물을 만들었다. 항상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원통형을 만드는 기법을 배웠다. 원통형을 만드는 것도 만드는 거지만, 크고 높은 기물을 만드는 게 진짜 관건이다. 근데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하긴 작은 기물도 맘대로 되지 않는데, 큰 기물이 될 리도 만무하긴 하다.


잘 빚어가나 싶더니만 여름철 뙤약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기물이 녹아내리는 광경을 결국 마주하고야 만다. 예전 같으면 낙심했을 것도 같은데 마음에도 맷집이 생긴 모양이다. 다시금 중심을 잡고 새로운 기물 성형에 들어간다. 열심히 손을 움직이려는 찰나 들려오는 선생님의 청아한 목소리.


“예은님, 속도를 조금만 늦춰볼까요?”


공방에서의 수업이 늘어갈수록 물레를 돌리는 속도가 부지불식간에 점점 빨라지고 있었나 보다. 사실 몇 바퀴씩 돌리면서 흙을 쌓아 올리면 기물이 된다. 그러니 속도가 빠른 게 아무래도 유리하다. 같은 시간 안에 한 바퀴를 도는 것보단 열 바퀴를 올리는 편이 효율적이니까. 나라고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흙을 얼마간 만져봤다는 익숙함에 물레를 빠르게 차고 있었다. 이런. 빠르게 돌리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


너무 느려도, 너무 빨라도 안 된다. 무엇을 빚느냐에 따라, 난이도에 따라 속도는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다. 더욱이 같은 작업을 한다고 해도, 빚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속도는 달라진다. 도자기를 빚는 일에도 저마다 알맞은 속도가 있다는 얘기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를 찾아 오른발 뒤꿈치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나의 속도’를 찾아낸다. 속도를 찾았다고 해서 갑자기 기물이 척척 만들어지고, 흙이 쭉쭉 뽑히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여전히 다듬어야 하는 부족한 면면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분명히 방금 전의 작업보다는 무언가가 나아졌다. 이를테면 주체할 수 없이 빠른 속도에 내가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든지. 흙의 움직임에 하릴없이 따라가지 않는다든지. 나만 아는 사소하고도 미묘한 어떤 일부분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몇 년 전이던가. 연말에 친구가 새해의 운세를 점쳐 보라며 포춘 쿠키를 선물해 준 일이 있었다. 또각—하는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진 포춘 쿠키에서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왔다.

빠르면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 천천히 가면 보입니다. 보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보다 보고 나서 옳은 길을 가는 것이 빠릅니다.


어쩌면 오늘의 도예 수업도 이와 같은 맥락을 부단히 내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빠르고 조급한 마음으로 쌓아 올리려 들면 흙은 그 마음을 훤히 읽는다. 금세 늘어지고 휘어지고 구부러져서 무너진다. 조금 천천히 올리는 것이 사실은 정말 빠를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알맞은 속도가 있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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