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가 한 생각

달리기에 관한 3가지 질문

by 오예

세상에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일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공부와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고로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이 정직함은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은 두 면모를 꾸밈없이 드러내는데 하나는 시간을 들이면 들이는 대로 성장하고,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퇴보하고 만다는 거다. 이것은 희망과 좌절이 그려진 금화처럼 느껴진다. 어느 면이 나오냐에 따라 성취감과 절망감 중 무엇을 맛볼지는 달라질지언정, 일단 쥐는 것만 해도 최소한의 노력만큼은 담긴다는 측면에서는 미래든 현재든 어떤 가치에는 부합할 금화나 다름없다고 느껴진달까. 마치 삶이 기쁘기도 즐겁기도 하지만 일단 다른 무엇보다도 산다는 것 자체에 거대한 의의가 있음과 유사하게 말이다.


고백하자면 근래의 내 달리기는 성취보단 미세한 좌절을 느끼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좌절은 다름 아닌 ‘수치’에서 왔다. 애플 워치를 차고 달리다 보니 과거 레코드가 켜켜이 남은 덕분에 오늘의 나와 과거의 나를 저울질할 수 있어서다. 7km의 목표는 5km로 줄어들었고, 7분 대의 페이스는 8-9분으로 늘어버렸으며, 달리기를 시작하는 아침의 시간도 늦춰진 데다 결정적으로 달리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나한테 혼나는 기분도 드는데 그런 취지의 글은 아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중요한 것은 역시 달리기라는 액티비티 하나가 삶에 추가되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망각이 곁들여지기 전까지의 퇴보는 여전히 성장과 가깝다. 그리하여 아침에 느슨히 달리며 몇 가지 생각을 하였다.


첫째 어느 속도로 달리는 게 알맞은 걸까.

둘째 어떤 마음가짐으로 달리면 좋을까.

셋째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역시 현대 문명의 꽃과 다름없는 애플 워치를 들여다보니 어느 정도 답이 나오긴 했는데 속도나 거리 기준보다는 BPM으로 판단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끄러미 달리면서 보아하니 BPM이 150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건 좀 편안한 뜀박질이다. 달린다는 감각을 더 느끼고 싶다면 170이 마지노선인 거 같다. 170-180, 아니 190을 넘으면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을 친다. 그때 왠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묘한 쾌감이 든다. 컨디션이 괜찮다면 그때는 BPM을 살필 것.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인들로부터 ‘너 참 부지런하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하는데 정작 스스로는 그다지 자각을 못 한다. 내가 보여지는 것에 비해 실체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지런함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남들보다 까다로운 것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좌우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자문한다. 내가 나를 혹여 너무 못살게 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달리는 마음가짐은 역시 몸의 상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며 달리기다. 목표한 바가 있어도 무리라는 걸 느꼈으면 이제는 몸을 돌보는 것이 먼저다. 속도를 늦추든, 거리를 줄이든, 당장은 퇴보라면 퇴보다. 그러나 비록 퇴보라 해도 수용할 줄 아는 자세야말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오늘에 양보해야 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그리하여 오늘은 몸이 나를 잘 싣고 다녀주는 것만도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불쑥 달리다 말고 어깨를 토닥이며 고맙다고 말하게 되었다. 느리든, 빠르든.


마지막 질문을 떠올리게 된 것은 오늘 공원에서 형광색 마라톤 조끼를 입고 달리시는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뵌 까닭이다. 나도 저 나이까지 달릴 수 있을까. 무릎은 괜찮을까. 튼튼하고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연령 범위가 있다면 얼마 정도일까 싶은 것이다. 떠올리자면 아직도 마라톤에 나가시는 친구의 어머니도 계시니 환갑까지도 거뜬할 것도 같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역시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리면 된다’는 다소 당연한 결말로 치닫고야 말았다.

이왕이면 달리는 할머니가 되는 게 개인적인 소망이라곤 하지만, 느슨하게 걷는 것도 역시 좋다. 그러니 미래의 내가 원하는 대로 걷든 달리든 할 것이고 나는 그저 과거에서부터 응원의 신호탄을 자그맣게 쏘아 올리면 그만이다. 이런 무의미한 생각이라니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같이 공원을 달리는 할아버지가 스쳐가시면서 엄지를 척 올리며 미소를 건네주신다. 역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고,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걸 하면 그만이다.


공원에는 축구 훈련을 받는 어린 학생들과, 삼삼오오 모여 경보보다 빠른 속도로 수다를 나누시는 할머니들, 카세트테이프로 걸쭉한 트로트를 들으며 공원을 거니는 아주머니, 그리고 내게 쌍 따봉을 날리시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모두들 그렇게 아름다운 계절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향유하고 있다. 나 역시 느슨한 마음으로 달렸다. 가을은 달리기에 참 좋은 계절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님아 그 욕심을 부리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