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소재의 개인성과 인디 게임의 집단 지성 고찰
앞서 인디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살가움’과 ‘사랑받음’을 제안한 바 있다. ‘살가움’의 특성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 지를 살피는 기준이다. 플레이어에게 살가운 게임은 플레이어의 마음을 울린다. 게임은 테마를 내재하여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제 의식을 고취시킨다. 예컨데, <나이트 인 더 우즈>는 스무 살에 자퇴하여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메이의 이야기이다. 기숙사에 살고 있던 필자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스무 살의 정처 없는 일상에 회의감에서 위로해주었다. 반면 ‘사랑받음’의 특성은 게임이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받는 지를 살피는 기준이다. 플레이어에게 사랑받는 게임은 플레이어의 마음을 형성한다. 감명깊게 플레이한 게임은 사람의 일부가 되기 마련이다. 때로는 주제 의식이 마음을 함양하기도 하고, 게임을 중심으로 소통의 장이 열리기도 하며, 더 나아가 컨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번 비평에서 중심적으로 다룰 주제는 <Yume Nikki>와 <Yume 2kki>에서 나타나는 ‘꿈’이다. 꿈이란 잠을 잘 때에 머릿속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하며, 대부분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꿈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하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꿈 일기를 꾸준히 작성해서 기록하기도 한다. 필자도 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니지만 기억나는 대로 항상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놓으려 한다. 가끔 흥미로운 꿈을 꾸면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꿈이란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같은 꿈을 두 번 다시 꾸기 어려울 뿐더러, 꿈을 꿀 때에 다른 이와 함께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없고, 이를 정확히 녹화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LSD: Dream Emulator>는 사람들이 꾸는 개별 하나하나의 꿈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1998년에 1세대 PlayStation의 타이틀로 Asmik Ace에서 제작한 이 게임은 게임이란 컨텐츠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에 구애받지 않는 온전히 실험적인 게임이다. 동작 또한 단순하기 그지없다. 1인칭 시점으로 3D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상호작용이란 그저 사물에 가까이 가서 만지는 것 뿐이다. 그러면 사물이 움직이기도 하고, 다른 세상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제작진이 실제로 꾼 꿈들을 플레이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한 게임이며,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재미를 경험하는 게임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필자는 <LSD: Dream Simulator>에서 진정한 의의 두 가지를 찾았다.
제작자들은 돈을 벌고자 이런 게임을 만들지 않았다. 돈을 벌고 싶었다면 시장의 흐름에 맞는 게임을 만들지 않았을까? 제작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었던 거다. 메리 셸리가 1818년에 쓴 <프랑켄슈타인>은 작가의 악몽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예술가들은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 영감을 어떤 식으로든 발휘하고자 한다면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LSD: Dream Emulator>가 그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로 유명한 이유 또한 직접 꾼 꿈의 분위기를 독특한 연출과 형태의 경험으로 제공하고자 한 제작자들의 예술적 발휘에서 알 수 있다. 개발자에게 사랑받는 게임은 플레이어 없이 출시하기 전에부터 그 의의를 달성한다.
<LSD: Dream Simulator>의 게임 시스템은 하루하루를 거듭하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방식이다. Day 1에는 드넓은 초원에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보았다면, Day 2에서는 시부야와 같은 도시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Day 3에서는 알 수 없는 괴물들을 맞닥뜨릴 수 있으며, Day 4에서는 게임 레벨도 아닌 그저 몽타주로 짜집기된 영상이 재생되기도 한다. 각 Day 마다 어떤 경험을 하게 될 지는 플레이어의 행동과 무관하다. 우리가 어떤 꿈을 꿀 지 의식적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덕분에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른 이와 다른 새로운 경험을 마주할 수 있다. 또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와 공유하면서 ‘게임을 통해 경험한 개인성’과 이를 ‘공유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소통할 수 있다. 각자는 개인적으로 경험한 게임 월드에서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창의적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 게임의 내러티브는 개인의 사고 활동에 살갑기 그지없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이 가능한 이유로 많은 게임들은 ‘꿈을 꾸는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연출을 자아낸다.
<Stardew Valley>에서는 하루하루를 끝마칠 때마다 플레이어는 꿈을 통해서 일과를 정리하고 성과를 산출하며 새로운 이벤트와 기술을 해금할 수 있다. 여기서 꿈은 ‘게임에서 일어난 사건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는 플레이어의 집에 들어가 침대에서 잠에 들면 꿈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른 플레이어들의 섬을 구경할 수 있다. 여기서 꿈은 ‘무작위로 선정되는 컨텐츠를 선보이기 위한 연출’로 활용된다.
<나이트 인 더 우즈>에서 꿈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경험한 사건을 반영하는 동시에 게임의 중심 스토리의 복선과 단서를 함께 제공한다. 여기서 꿈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 핵심적인 소재’로 활용된다.
위의 세 용례들은 모두 꿈이 근본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을 활용한다.
때문에 온전히 꿈의 이런 분위기와 특성만을 사용하고 다른 어떤 게임의 요소도 제공하지 않는 <Yume Nikki>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어렵다. 이 게임에서 즐길 수 있는 요소는 <LSD: Dream Simulator>처럼 그저 게임의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때문에 <Yume Nikki>의 특성은 <LSD: Dream Simulator>와 꽤나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필자는 <Yume Nikki>에서 플레이어와 개발자의 참여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Yume Nikki>는 kikiyama라는 익명의 누군가 2004년에 개발한 어드벤쳐 게임이다. RPG Maker 2003으로 제작되었지만 여느 RPG와 달리 이 게임에는 마땅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마도츠키’라는 소녀를 조작하여 그의 꿈을 돌아다니게 된다. <LSD: Dream Emulator>와 매우 유사한 시스템이다. 마도츠키가 잠에 들면 여러 문이 나타나고, 각각의 문 뒤에는 각기 다른 꿈이 펼쳐진다. 그 곳에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어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도 있고, 꿈에서 깨면 플레이할 수 있는 미니게임을 해금할 수도 있다.
각 문 뒤의 꿈에서 플레이어가 겪게 되는 경험은 갈래와 경우의 수가 매우 다양하다. 덕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한 플레이어들은 각자에게 살갑게 다가온 <Yume Nikki>의 개인적인 경험과 직접 내린 해석을 토대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이 게임을 너무나도 사랑한 몇몇 플레이어들은 <Yume Nikki>에 영감을 받은 호러 게임을 개발하였다. 꿈이라는 소재를 주제로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위 ‘쯔꾸르’ 형태의 게임들은 개발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쉽다. 개발자는 자신이 풀어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Yume Nikki>의 내러티브 방식에 영감을 얻게 된다.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증진하는 것이다.
<Yume Nikki>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개발된 본 게임의 비공식 후속작인 <Yume 2kki>는 컨텐츠의 제공과 소비 방식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기본적으로 <Yume 2kki>는 <Yume Nikki>와 같은 시스템이다. 다만, 컨텐츠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Yume 2kki>는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동일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누구든지 커뮤니티를 통해 <Yume 2kki>의 개발에 동참하여 새로운 꿈을 투고할 수 있다. 때문에 <Yume 2kki>의 꿈 세상은 본편의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며 커뮤니티 또한 지속적으로 활발할 수밖에 없다.
게임을 연구하는 우리는 <Yume 2kki>가 게임 커뮤니티에 가져온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 개발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한 게임 커뮤니티를 탄생케 한 게임이라는 것에 아주 큰 의의를 가진다. 이는 인터넷의 근본적인 특징과도 같다.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정보의 제공자와 수용자가 동일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컨텐츠를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공하고 생산하기까지 한다. 이와 같은 인터넷 환경은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진 예술의 나래를 펼치기 아주 용이하고 격려하는 공간이 된다. 누구든지 취미로 쓴 소설과 웹툰을 블로그에 연재하고, 직접 만든 단편 영화를 비메오와 유튜브에 게시할 수 있으며, 자작곡을 사운드클라우드에 투고할 수 있다. 꼭 출판사, 배급사, 음반사를 거쳐야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컨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컨텐츠의 수용자가 곧 제작자인 인터넷의 세상에서 게임이라고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자. <Stardew Valley>를 개발한 에릭 바론은 게임에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서 지극히 자신만의 게임을 탄생해내었다. 에릭 바론의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은 에릭 자신 스스로가 게임 시스템과 사운드, 그래픽, 내부 코드 하나하나 모두에 손길을 담아 제공하여 탄생한 명작이다. 이제 <Yume 2kki>의 경우에서, 에릭 바론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 각자가 자신만의 세상을 구현하여 함께 공유하고 있다. 이것이 기존에 배급되는 게임과 다른 부분이다. <Yume 2kki>의 꿈 하나하나는 각자 다른 개인 개발자들이 제공하는 경험이고, 그 꿈을 경험한 플레이어는 또다른 영감을 얻어 새로운 꿈을 만들도록 격려한다. 창작 활동의 연속적인 굴레인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와 개발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다른 예시는 ‘샌드박스 게임’이라는 장르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레이어가 단순히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만을 순순히 따라가기만을 선호하며 직접 창작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은 인간이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사람들은 <심시티>, <롤러코스터 타이쿤>과 같은 게임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자유도 높은 게임들을 통해 사람들은 게임 내의 각기 다른 게임 요소를 생산해내게 된다. 독창적인 맵을 제작하고 모드를 개발하면서 자신이 상상한 예술 활동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제는 의무교육에서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고 한다. 개발자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평범한 개인이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마치 비디오 카메라의 보급으로 홈비디오가 유행한 것처럼, 프로그래밍 능력의 보급 또한 인디 게임의 확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의 예술 활동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예술가들은 직접 기본적인 공학을 배워 아두이노와 같은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 발전 과정을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Yume 2kki>이다. 프로젝트 초기에서 현재까지 방대한 컨텐츠 양을 갖출 수 있던 그 이유가 바로 인터넷 사용자의 쌍방향성이 현대에 들어서 더 활성화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놀랍게도 <Yume 2kki>의 꿈들은 모두 각자 개인이 개발한 꿈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한 게임 내 여러 꿈의 연속체처럼 여러 꿈들이 갈래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또 한번 인터넷의 근본적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Wikipedia>, <GitHub>와 같이 무작위 다수가 토의하여 컨텐츠를 결정하고 제작을 진행하는 집단 지성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Yume 2kki>에 직접 만든 꿈을 투고한다고 해서 바로 본 게임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해보고 토의를 거친 후에 게임에 추가할지가 결정된다. 이는 <Wikipedia>에서 문서를 생성하고 수정할 때 다수의 사람들과 토의를 거친 후에 실제 공식적인 문서 컨텐츠로 게시할 지 정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Yume 2kki>의 꿈은 불특정다수의 꿈이 한데 모인 모두의 꿈이자 개인적인 꿈이 된다.
사회는 개인 하나하나가 모여서 구성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예술 창작 문화가 향하고 있는 방향성은 개인의 경험을 서슴치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접근성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발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기술은 이미 마련되어 있으며, 실제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의 초창기부터 사람들은 개성 넘치는 웹사이트를 제작하여 게시하고 공유했다. 현대에 들어 인터넷 상 멀티미디어가 보급되어 <Snapchat>, <Vine>, <TikTok>과 같은 매우 짧은 분량의 영상 컨텐츠 미디어는 진정으로 정보의 게시자와 수용자가 동일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을 보급하였다. 인터넷 문화는 매우 유동적이고 짧은 유행에 민감하며 쏟아져나오는 컨텐츠의 양이 방대하다. 이러한 정보의 바다에서 컨텐츠 제작자들이 독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바로 <Yume 2kki>와 같은 프로젝트일 것이다. 짧게 만들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컨텐츠를 제작하여 광고로 생계를 유지하는 컨텐츠 제작자들은 실없는 대중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단순히 유행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컨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Yume 2kki>와 같은 컨텐츠가 필요하다. 게임의 컨텐츠가 개인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살갑고, 개발자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게임, 그런 컨텐츠야 말로 우리 대중 문화가 인스턴트 컨텐츠로 빠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인디 게임 시장에서는 <Playdate>와 같은 프로젝트가 개발자와 플레이어의 경계를 허무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개개인의 게임을 통한 자아 실현이 용이해 진 것이다.
<Yume 2kki>는 실시간으로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개인이 구현해놓은 꿈을 온라인을 통해 여러 플레이어가 함께 탐험할 수 있다. 즉, 개인적인 경험에만 국한되어 있는 꿈을 보다 더 자율적으로 공유하고 직관적으로 나누는 방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Yume 2kki>는 온라인에서 플레이가 가능하며, 공식적인 한국어 번역 또한 제공한다. 이와 같은 동인 게임 문화가 더 주목받아 집단 지성과 개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이 더 자주 소개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