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외버스를 먼저 타야 했다.
신기할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한 층 낮은 허름한 아파트는 외벽을 옅은 연두색으로 새로 칠해서 유난히 돋보였다. 키 높은 수풀의 녹음이 주변에 무성했지만 페인트의 연두는 왠지 어색했다. 건물 몇 이서만 평지에 우뚝 솟아 있으니 모노리스를 보는 듯도 했다. 모노리스를 자세히 보면 난간까지 연두색인 발코니가 정갈하게 박혀 있었다. 발코니에 앉아 있으면 가끔은 밤에 키 높은 잔디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풀벌레가 잔잔히 우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낮에는 농약을 뿌리는 비행기와 지하에 땅굴을 파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거주자들은 허허벌판에서 이상하리만치 바쁘게 일했다. 발코니를 넘어 들어가면 있는 방들은 마치 커다란 연두색 지우개에 작은 구멍을 파 놓은 것만 같았다. 방 한 칸은 서넛 정도 되는 가족이 살기 알맞은 공간으로, 쓰리룸에 32평이었다. 다만 C동 301호는 단일 가구였다.
C동 301호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가 살았다. 자연이 좋아서 이곳에 살기로 마음먹은 경우는 아니었다. 짧은 삶을 살면서 제시받은 선택지를 다소곳이 고르다 보니 어느새 그곳에 있었다. 그는 딱히 일을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낮에는 낮잠을 자고 밤에는 보잘것없는 생물을 사냥했다. 가끔 책을 읽어보려고 정오에 벤치에 앉아 폼을 잡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거나 행인에게 가식을 떨기 일쑤였다. 요즘은 질렸는지 잘 읽지 않더라.
하루는 그가 동물원으로 집을 나선 적이 있다.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보고 싶었다. 그는 코모도왕도마뱀을 좋아했다. 영어 이름에 ‘드래곤’이 들어가는 데다 마치 화석에서 살아난 공룡 같은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바깥에 나간다고 꿉꿉한 눈가를 세수하고 머리를 빗었다. 하얀 메신저백에는 사진기와 노트, 사탕 한 곽을 챙기고 버블티를 사 먹을 꾸깃한 지폐도 챙겨 넣었다. 마음과는 다른 몸을 대충 가다듬고 불쑥 집 밖으로 나섰다.
건물을 나서서 5분 정도 걷다 보면 아주 오래전 버려진 철도길이 나왔다. 철도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다. 낮은 초목과 풀숲이 우거진 철도길의 사이사이를 총총 뛰어넘기도 하고 선로 위에 서서 중심을 잡고 걷기도 했다. 이곳은 그가 자주 산책을 나오는 곳이었다. 가끔은 산책을 나온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되는 상황도 종종 있었다. 그날에는 영화 동호회에서 만난 J군을 마주쳤다. 마침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 오래간만이네? 한참 못 본 거 같은데?”
한참 동안 동호회를 나가지 않았다. 사실 이 하이에나는 자기가 동호회를 다닐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J군은 끊임없이 의견을 물어왔다. 그는 항상 영화 감상에 초대했고 적절한 선에서 코멘터리도 해 주었다. J군은 아는 것이 많아서 하이에나가 영화에 별 관심이 없다가도 J군의 열정에 빠져들 수 있었다. 왠지 영화가 좋아지는 기분이었고, 실제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J군은 인사할 여지도 안 주고 물었다.
“내가 저번주에 빌려준 건 봤어? 좋은 영화는 아닌데 워낙 대표작이라.”
“아.. 아마 내일 보지 않을까요.”
살짝 기어들어가게 대답했다.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굽은 체 대답했다. 덕분에 갈기가 더 돋보였다.
J군은 쿨하게 대답했다.
“내 너 그럴 줄 알았어. 아무 때나 땡길 때 보고 돌려줘. 어차피 당장에 다시 볼일도 없거든.”
J군에게서는 항상 여유가 넘쳤다. 타인의 어떤 의견에도 상처받지 않고 딱히 관심도 없어했지만 항상 예의가 바르고 존중하는 방법을 알았다. J군이 사는 아파트의 맞은편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모노리스 아파트 보다 훨씬 큰 아파트 단지였다. 하이에나는 그곳에서 동물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오랜만에 동호회 가는 거? 오늘 애들 몇 모이기로 했는데 어떻게 알았대?”
“아뇨, 그냥 날씨 한산해서 혼자 동물원 다녀오려고요.”
“야 무슨 동물원을 혼자 가냐. 너도 진짜 대단하다.”
진짜 감탄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뭐 하고 지내?”
“그냥 방에 있죠, 뭐. 자꾸 방에만 있으니까 우울한 거 같아서 나왔어요.”
“잘했네.”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그냥 너네 집 근처 사진 좀 찍고 왔어. 오늘은 좀 건진 거 같아.”
“오, 이따가 블로그에 올리는 건가요?”
“이따 너가 직접 봐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하이에나가 대답한 후로는 서로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색한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였다. 하이에나에게는 이런 관계가 좋았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쿨하게 넘겨줄 것만 같았다.
정적을 깨고 J군이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지?”
J군은 한 달 내내 자기만의 눈치로 하이에나에게 이 질문을 하였다. 하이에나는 콕 집어서 무슨 일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이 심각한 일을 겪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저 자기만의 문제라고 여기고 입을 꾹 닫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J 군은 끈질겼다.
“뭐 딱히 얘기 안 해줘도 괜찮기는 한데 너 잘 지내고 있는지는 확인 좀 하게 연락은 받아 줘라. 안 그럼 나 진짜 삐진다?”
J군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하이에나는 그냥 말해버릴까 하는 충동이 자꾸 들었다. 그대로 그는 여태까지 꿋꿋이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멀쩡하게만 하고 다니면 상관없는 일이다. 돈 문제나 가족 문제도 아니니 그저 내가 마음만 고쳐 먹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그는 그냥 아무한테도 말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뭐든지 열심이던 그가 그런 아파트에서 명상을 하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량처럼 살게 되니, 잠깐이라도 사람을 만나니까 감정의 표출이 스파크처럼 일은 것이다.
“사탕 드실래요?”
하이에나는 J군에게 노란 곽에 들은 레몬 사탕을 건네었다. 물론 J군은 냉큼 받아먹었다.
“오, 땡큐.”
하이에나는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J군은 쩝쩝대는 소리도 없이 달달한 사탕을 입속에서 조용히 굴리며 하이에나의 눈가를 지긋이 지켜보았다.
“되게 사소하고 개인적인 고민이거든요.”
“고민?”
하이에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혼자 말했다.
“스읍, 고민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데.”
“일단 풀어봐. 무슨 일인데?”
“그러니까, 일단.. 밤에 잠을 못 자요.” 더듬으며 말했다.
“너 밤에 게임하느라 늦게 자는 거는 다 알지.”
하이에나는 피식 소리로 자조하며 동의로 고개를 으쓱했다.
“근데 그렇게 자꾸 게임을 하는 이유가 있어요.”
“왜, 뭔데.”
“전 제가 아직도 되게 애 같거든요.”
“너 완전 애지. 일도 안 다니고 그냥 대충 사는데.”
계속되는 농담이었지만 하이에나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걸었다.
“아니 왜 얘기를 하다 마냐?”
지켜보던 J군이 말했지만 하이에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도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선로에 나무판자 같은 것들을 총총 건너며 하이에나의 우울함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걸었다. 그들의 동쪽 저 멀리에서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쩌렁쩌렁한 비행기 소리가 지나갔다.
비행기 소리가 그치고 십몇 분이 지나서야 J군이 결국 말을 다시 꺼내었다.
“우리 부모님 이혼하신대.”
하이에나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께 동생이 전화하더라. 결국 한다고 그러던데, 이혼하고도 두 분이 친하게 지낼 거라더라. 뭐 파탄만 아니면 된 거지.”
하이에나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앙 다문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뭐 회사 다니고 혼자 사니까 상관은 없는데 동생이 걱정이지. 괜찮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겠냐. 나중에 집에 올라가면...”
“얘기할게요.”
하이에나가 갑자기 말을 뱉었다.
J군은 말을 그치고 조용히 듣는 자세를 취했다. 그만이 가진 존중의 자세였다.
“저 별거 아닌 일 가지고 자꾸 너무 우울해하는 거 같아요.”
J 군은 들었다.
“돈이 없지도 않고, 가족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연애 문제도 아닌데 자꾸만 우울해지는 거예요.”
J군은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우울해하는 걸 즐기는 거 같아요. 한참 멀쩡할 때 친해진 사람들이 내가 우울해진 모습을 보면 위로해 주고 도와주고 싶어 하잖아요. 그럼 그렇게 관심받는 게 좋아서 자꾸 비참 해지려고 해요.”
하이에나는 손을 떨며 말했다. J군은 들었다.
“그러다가 그저 애정 결핍이란 걸 알면 사람들은 갑작스레 하나둘씩 등을 돌리죠. 갑자기 투둑투둑 인연이 끊어지면 그러면 저는 진짜로 비참해지는 거예요.”
J군은 들었다.
“그러다가 다른 새로운 사람이랑 친해지면 그 사람한테 마음이 집착하게 돼요. 그렇게 악순환인 거죠.”
J군은 들었다.
“그냥 이런 생각 때문에 그래요.”
J군은 들었다. 그리고는 마음이 탁 트이는 충격을 느꼈다.
그 둘은 아파트 단지 앞에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하이에나는 떨리는 손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깊게 넣고 걸었다. J군은 그저 먼 곳만 바라보았다. 가끔 카메라를 켜서 그날에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때 하이에나는 정적이 너무나 무서웠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J군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그는 끝내 입을 열었다.
“나 동생한테 전화하기로 했거든? 집 들어가기 전에 하려니까.”
J군은 휴대폰을 가리키고는 작별의 의미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알겠어요. 들어가서 쉬어요.”
J군은 몸을 돌려서 하이에나와 버스 정류장을 등지고 집을 향해 신호등을 기다리며 전화를 했다. 우물쭈물 거리며 정류장의 휴게실로 들어설 때 하이에나는 J군이 여동생을 달래는 듯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이에나는 몇 분 동안은 휴게실에 앉아서 생각했다. J군은 이제 나를 싫어하겠다. 아무 말도 않더니 등까지 돌려버리고 빨리 헤어지려고 하는 걸 보니 틀림없다. 지금도 저 휴게실 문 바로 앞에서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다가 혼자 괜한 생각을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버스는 15분 뒤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그는 긴장한 가슴을 부여 쥐고 창문 너머 멀리를 바라보며 울지 않으려 최대한 애를 썼다. 버스에서 한 30분을 그렇게 보내다가 마침내 동물원에 도착했다. 입구 근처에서 버블티를 먼저 샀다. 바로 마시지는 않았다. 동물을 보면서 먹고 싶었다. 그러고는 입장료를 내고 드문드문 있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코모도왕도마뱀이 있는 곳으로 바로 향했다.
다만 손을 하도 떨어서 버블티를 다 엎질러 버렸다. 청소하던 직원이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이에나는 금방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꾹 누르고는 힘겹게 빈 플라스틱 컵을 주워서 재활용에 넣었다. 그러고 파충류관으로 향하자 바로 직원이 엎지른 곳으로 걸어갔다.
도마뱀이 있었다. 사실 하이에나는 코모도왕도마뱀을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마뱀을 만나면 모든 불안한 감정이 사라질 것이라 은연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도마뱀은 그곳에서 초라해 보였다. 허옇게 얼룩진 유리창 너머에 도마뱀은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엎어져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품고 있던 그날에 유일하던 희망이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하이에나는 코모도왕도마뱀이 있는 파충류관 주변의 동물원을 서성였다. 자기도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할 일이 없어서, 또는 좌절감이 하도 심해서 터벅터벅 걷기만 한 것일 수도 있다. 가족, 연인, 친구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는 그곳에서 하이에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마뱀으로부터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