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발자국 연작시
버텨낼 자신이 없어요.
2년 전 가을에 비가 오던 날에 룸메이트가 피우다 만 서너 개피쯤 남은 담배를 학교 언덕 위에서 호수를 내려보며 피우던 때에.
작년 연초 겨울 수원 아파트 뒷골목에서 고모부 몰래 내가 아닌 관계에 목매던 그와 전화하고 피우던 줄담배의 꽁초가 길바닥에 쌓이던 때에.
그리고 오늘 가을날에 다시.
비가 오니 다시 찾아온 그 앞에 서야 하다니.
다시 버텨야 하니 자신이 없어요.
2년 전에 뛰어내리기로 결심하고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던 그때처럼 웃으며 그의 깊숙이로 안길 용기가 나지 않아요.
그때 그 후련함과 안도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가도,
이제는 그런 용기가 나지 않으니,
그때의 결심을 이루지 못한 게 후회가 돼요.
감기 때문에 아무도 없어
가을 낙엽과 비만 내리는 사람 없는 캠퍼스는
이제 사람으로 가득해요.
이제 그런 결심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은 계속 그 결심을 기다려요.
그는 계속 돌아와요.
그가 나를 바라는 건 확실하니,
나도 이제 그를 바라지만
그때의 용기가 언젠가 올까 기다려요.
모두들 가을이 오면 가을을 타는 것 같다 할 때
난 그게 이해가 안 되었어요.
나는 원래 가을을 일 년 내내 탔거든요.
그저 내 마음을 꽁꽁 묶어 두었죠.
그게 익숙하기도 하고,
평생을 그리 사니 누가 묻지도 않았어요.
그냥 내가 잘못된 거지 생각하고,
나를 묶어 두어
번듯한 모습으로 보여주었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나를 반기었어요.
외롭지 않았지만,
외로웠어요.
이제는 그냥 외로워요.
묶어 둔 내 마음에
누군가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나는 완전했고
절대 외롭지 않았어요.
가끔 부서져도
접착제로 잘 붙였어요.
이탈리아 호숫가에 갔을 때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했을 때
우리 엄마는 내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고
군인의 의무를 다하길 바랐어요.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내 행복의 부재를
그분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때 쳐들어온 외로움은
세상을 보여주던 내 안경을 부서뜨렸어요.
부서져서 마음에 닥친 외로움은
나의 마음에 들어온 그 늑대 한 마리가
하루 종일 손수 접착제로 고쳐주었어요.
먼 그곳에서 나는
잘 버티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어요.
또 누군가
내 마음에 들어왔을 때
나는 외롭지 않았어요.
새로운 가을이 오고
비가 내리어도
한 마리 고양이가
내 마음을 보듬었어요.
나는 계획을 가지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돌아오니
아무래도 고양이가 없으니
마음이 공허하고,
나를 이해하는 이 없으니,
나를 이해하는 듯하던 이들은
대륙 반대편 저 멀리 있으니,
그 고양이가 그리워 연락해 보아도
아무래도 나는 고양이의 마음에 들어서지 못했나 봐요.
내가 독일에서 세운 계획을
한국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어요.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돈을 벌고
이야기를 하고
어딘가를 향하고
돈을 쓰고
사람을 찾아요.
밤에 내 방에 들어오면
햇빛이 없으니
묶어 둔 내 마음에서
부재의 기운이 터져 나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나는 침대에 짓눌려요.
기운이 없어 씻지 못해
방바닥을 디딘 발바닥은 끈적하고,
당의 페트와 알코올의 잔과
카페인의 캔과 니코틴의 내음으로 가득하지만
내 마음에 들어왔던 그가 열어준 코는
담배로 다 죽어
이제는 침냄새밖에 나지 않아요.
지금 비 오는 밤에
조금이라도 혼자 있으면
눈을 감고 버틸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무언가라도 해야겠는데
부재의 기운은 나를 짓누르네요.
그래서 그냥 누워서
하염없이 부재를 채워줄
그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하며
휴대폰만 바라봐요.
실은, 만나서 채워 보아도
하루가 지나서 돌아오면
혼자 있다 보니
다 울어내어서
다시 빌뿐이에요.
이제는 자신이 없어요.
그가 돌아올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