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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Dec 24. 2018

이와이 슌지 감독이 같은 영화를 두 번 만드는 이유?

(2018.11.27 작성)


11월 3주차 중국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면 낯익지만 놀라운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8위를 차지한 <안녕, 지화>의 이와이 슌지 감독이다. 지난 11월 9일 개봉한 중국영화 <안녕, 지화>는 서정적인 영상미로 청춘의 정서를 세밀하게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일본감독 이와이 슌지가 연출을, 홍콩 멜로영화의 대가 진가신 감독이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좌측부터 이와이 슌지, 주신, 진가신


1995년작 <러브레터>는 한국에서도 신드롬적 인기를 누렸지만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고, 이를 계기로 이와이 슌지 감독은 중화권에서도 많은 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연애중적성시(2015)>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하고 감독이 몸담고 있는 밴드가 중국투어를 하는 등 이런저런 방식으로 중국과 연을 맺어온 바 있으나 본격적으로 중국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안녕, 지화>는 ‘Last Letter’라는 영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러브레터>의 답장과도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러브레터>의 첫 장면처럼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지화는 언니 지남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동창회 소식을 알리는 우편물을 발견하고 부고를 전하기 위해 언니 대신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지화는 자신이 짝사랑했던, 그러나 언니를 좋아했던 남자 윤천과 재회하게 된다.


지화를 지남으로 착각한 윤천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돌아온 후, 지화는 그에게 발신자 없는 편지를 부치게 되고 여기서 시작된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아련하게 엇갈리는 이들의 드라마를 풀어낸다. 죽음으로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이어지고 이를 계기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면서 편지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정교하게 엮어 플롯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러브레터>와 상당히 닮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화권 최고의 배우 주신이 주인공 지화를 연기하며, 로우예 감독의 페르소나인 진호가 소설가 윤천으로 출연한다. 아역배우 장자풍과 등은희가 각각 현재 시점에서는 지화와 지남의 딸, 과거 시점에서는 지화와 지남 역을 맡아 2인 1역을 소화한다. 드라마 ‘랑야방’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배우 호가도 특별출연으로 잠깐 얼굴을 비춘다.



영화는 <베놈>과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등 대작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선전해 개봉 첫 주에는 박스오피스 3위, 둘째주에는 6위를 기록하며 흥행수입 천만불을 돌파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평은 다소 갈리는 상황인데, 이와이 슌지 감독 특유의 감수성에 호평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은 한편, 일본적인 정서를 중국영화에 기계적으로 이식해 위화감이 느껴진다는 목소리도 있다.


개봉에 앞서 먼저 출간한 원작 소설 <라스트 레터>


흥미로운 점은 이와이 슌지 감독이 같은 내용의 영화를 일본에서 한 번 더 찍었다는 사실이다. <안녕, 지화>의 촬영을 봄에 마치고 여름에 일본으로 건너가 7월 하순에서 8월 말까지 약 한 달간 프로덕션을 진행했다고 한다. 일본 버전의 제목은 <라스트 레터>로, 2019년 개봉 예정이다.



마츠 다카코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는데 <4월 이야기> 이후 20년만에 이와이 슌지 감독과 다시 만났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카미키 류노스케가 각각 현재와 과거의 남자주인공 쿄시로 역을 맡아 2인 1역을 선보일 예정이며, 히로세 스즈가 과거 시점에서는 주인공의 언니 역할을, 현재 시점에서는 언니의 딸 역할을 맡아 1인 2역을 소화한다.   



<안녕, 지화>가 현재의 상하이와 과거의 다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라스트 레터>의 무대가 된 곳은 지금의 도쿄와 20여년 전의 미야기현이다. <러브레터>가 실제로 촬영지를 찾은 이들이 실망할 정도로 홋카이도의 소도시 오타루의 풍광을 아름답게 담아냈던 것처럼 이와이 슌지 감독이 <라스트 레터>에서 여름의 센다이를 얼마나 찬란하게 그려낼지도 기대를 모은다.



한 편의 영화가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되는 사례는 많지만 같은 감독이 동일한 내용의 영화를 두 개의 국가에서 동시에 만들어낸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뮤지컬이나 발레 등 무대극에서는 여러 명의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가 흔하고 각 배우의 역량과 캐릭터에 대한 해석에 따라 공연의 감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녕, 지화>와 <라스트 레터>는 배우만 바뀐 것이 아니라 언어부터 정서까지 온전히 다른 문화권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험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2018년 11월 공개된 <안녕, 지화>와 2019년 개봉 예정인 <라스트 레터>. 이란성 쌍둥이 같은 두 작품이 얼마나 같은 지 또 어디가 다른 지 비교해서 보는 것도 영화팬들에게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2018.11.2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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