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안전감과 포용적 리더십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병역 면제 여부가 걸려 있던 경기였던만큼 온 국민의 관심이 쏟아졌다.
연장 전반 3분.
페널티 박스 안으로 손흥민이 드리블을 치고 들어갔다. 슈팅 각이 충분히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외친다. “나와! 나와!”
공을 요구한 선수는 팀의 막내 공격수, 이승우였다.
이승우의 외침에 손흥민은 슈팅 동작을 멈추고 공간을 열어줬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이승우의 지체 없는 왼발 슛-
선제골이 터졌다.
한국은 금메달을 땄고, 그 골은 팀의 우승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선수의 커리어 전환까지 이어졌다.
이 장면은 흔히 ‘센스 있는 주장의 어시스트’나 ‘당돌한 막내의 자신감’으로 회자된다.
그리고 조직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인사이트가 있다.
골 장면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승우라서 가능했다’, ‘원래 자신감 있는 캐릭터니까’.
물론 개인 성향의 영향도 있지만, 조직에서는 자신감의 ‘발현 조건’이 ‘개인의 성향’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
즉, ‘요구할 수 있어서 요구한 것인가’, 아니면 ‘요구해도 괜찮은 팀이어서 요구한 것이가’의 차이다.
막내가 주장이자 에이스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요구하는 행동은 개인의 배짱 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이 행동이 가능 하려면 최소 두 가지 조직적 전제가 필요하다.
공을 달라고 외친다는 건, 판단 개입이다. ‘내 선택이 팀에 더 낫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위계가 강한 팀에서는 이 행동이 내가 팀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아닌, 도전이나 무례로 해석되기 쉽다.
그래서 판단이 맞아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임원 앞에서 다른 대안이나 전략을 제시하거나, 팀장의 결정에 이견을 제안하기 망설여지곤 한다.
한 개인으로서는 자신감이 있을지라도,
조직에서의 자신감은 팀의 구조적인 영향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공을 달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담대함이나 배짱 이전에, 관계의 안전성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조직일수록 실행력보다 침묵이 먼저 자리잡곤 한다.
손흥민과 이승우의 골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공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 외에도, 공을 가진 사람의 포용력이다.
손흥민은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주장이었고, 팀의 에이스였다.
충분히 직접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승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공간을 열어주고 패스를 내준 선택은 전술적 판단이자 동시에 권한위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조직에서 기회란 것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배분 되곤 한다.
그래서 실행 효율보다 직급의 구조가 성과 구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리더가 모든 상황에서 최적의 실행자일 수는 없다.
때로는 자신보다 더 적합한 실행자에게 역할과 기회를 넘겨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포용력과 권한위임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을 때 구성원의 요구도 실제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의 손흥민과 이승우의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명장면이 아니다.
조직 관점에서 보면 ‘심리적 안전감’과 ‘포용적 리더십’의 문화가 돋보인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렸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의 “나와! 나와!”라는 외침이 실제 성과로 연결될 수 있었다.
막내의 캐릭터나 리더의 배려만으로 만들어진 골이 아니라 팀의 문화가 만든 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속한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첫째, 누군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제안의 효과성을 먼저 검토하는가, 아니면 직급과 순서를 떠올리며 불편함부터 느끼는가. 즉 그 말이 책임감과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로 들리는가, 아니면 선을 넘는 제안으로 해석되는가.
둘째, 리더는 중요한 순간마다 공을 끝까지 쥐고 해결하려 하는가, 아니면 더 적합한 실행자에게 기회를 배분하려 하는가. 즉 권한을 유지하는 것이 안정이라고 믿는가, 아니면 넘겨주는 것이 성과라고 생각하는가.
조직의 성과는 자신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군가 손을 들었을 때, 그 선택이 실제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와 구조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적임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구성원들의 요구를 잘 듣고 판단하여 필요할 때 넘겨줄 수 있는 리더십.
이 두 가지가 갖춰질 때 개인의 용기는 개인의 캐릭터로 끝나지 않고 팀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날의 골이 한 선수의 타고난 배짱이 아니라 팀의 문화가 만든 결과였듯,
조직의 성과 역시 개인의 자신감이 아닌, 조직의 문화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The Other Game은 스포츠 씬 속 리더십과 마인드셋을 연구합니다.
본게임 너머, 경기장 밖의 ‘또 다른 게임’을 다루는 방식이 개인과 팀의 성장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