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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an 03. 2024

소탐대실 잘라 버리기

다시 체크카드를 주로 쓰기로 했습니다.

취업에 성공하여 월급을 받기 시작한 이후 지킨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애초에 굳은 신념이나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회 초년생이 돈 아끼는 법'과 비슷한 류의 제목이 달린 기사에서 본 내용이 기초가 되었다.


첫째, 월급의 반 정도를 매월 정기적금에 넣었다. 회사 근처 저축은행에서 홍보하던 연 8% 정기적금 상품에 가입하여 3년 만기를 모두 채웠다. 2008년 금융위기 전이었어지만 8%는 좀 높은 금리다 싶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저축은행은 결국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도산하게 된다. 예금액이 5천만 원보다 적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유학을 가면서부터는 정기적인 소득이 끊겼고 복직해서는 생활비로 나가는 돈이 꽤 되기 때문에 이제는 적금과 멀어진 지 좀 오래되었다. 


둘째, 체크카드를 주된 결제수단으로 사용했다. 입사 당시만 해도 금융권이 신용카드 발급 실적에 목매던 때라 지인들의 부탁을 받고 신용카드를 여러 장 만들긴 했지만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잘라버리거나 기간이 좀 지난 후 해지를 했다. 신용카드를 쓰면 (최소한 결제일까지는) 빚을 지게 되는데 빚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믿음에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비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나 자동차, 가전제품 등 큰 덩어리의 지출을 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신용카드를 쓰기도 했는데, 이외에 일상적인 생활비나 용돈은 주로 체크카드를 통해 결제했다. 최소한 지난 6월까지는 말이다.


지난 6월은 2년 전에 구매한 자동차의 할부금을 다 갚는 달이었다. 주택담보대출 등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큰돈을 갚고 나니 추가적인 절약의 욕구가 솟구쳤나 보다. 아니면 일단 대출을 받아보니 잘 갚기만 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체크카드 대신 신용카드를 쓰면 약간의 연회비를 내더라도 할인을 더 많이 받게 되니 결과적으로 이득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굳이 구체적으로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가계부를 통해 간단히 계산을 해본 결과 연회비 만 원에 할인액은 연 6~7만 원 정도로 예상되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11월 말에는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에 갤럭시 스마트폰을 싸게 판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영국 생활 말기부터 4년 넘게 사용한 아이폰에 여러 자잘한 문제가 생기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 있게 광고를 보던 중,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구입 시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를 보고 삼성 신용카드를 검색해 봤다. 연회비는 같지만 훨씬 더 할인혜택이 커 보이는 카드를 발견하여 발급받고 스마트폰을 구입했으며 이전에 사용하던 신용카드는 바로 해지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정도 새로운 신용카드를 사용한 후, 나는 다시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신용카드 사용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할인혜택을 얻는 대신 포기하고 잃는 가치가 내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졌다.


우선 신용카드 할인혜택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일정 금액의 사용실적을 채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용실적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소위 체리피킹을 위해서는 해당 신용카드를 통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영역, 현재까지의 사용 금액, 사용실적 인정 범위 등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므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소모하게 된다. 역시 체리피킹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내가 12월에 사용했던 신용카드는 매월 사용실적 30만 원을 채워야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주된 생활비 용도의 카드가 아니었고 할인혜택을 받은 결제 건은 실적에서 무조건 제외되었기 때문에 사용실적 충족이 결코 쉽지 않아 계속해서 사용실적을 확인해야 했다. 


그렇다면 사용실적 제한이 없이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신용카드를 쓰면 어떨까? 위와 같은 걱정은 없겠지만 이 경우에도 신용카드의 본질적 기능인 '소비 장려'는 여전히 살아 있다. 6월부터 약 5개월 동안 썼던 카드가 이런 종류의 카드였는데 이상하게도 앱을 통해 각 결제 건의 할인금액을 확인하다 보면 소비를 할수록 혜택을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신용카드 지출에 관대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현자가 '안 사면 100% 할인'이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이러한 할인 혜택은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소비를 하도록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하게 기여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신용카드 혜택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 글은 결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다. 그보다는 나처럼 작은 규모의 돈에 쿨하지 못하여 할인혜택을 완벽하게 챙겨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가치라고 생각하기에 소탐대실을 유발하는 신용카드를 잘라 버리고 다시 체크카드를 쓰던 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용카드가 편리하게 제공하는 할인혜택은 포기하더라도 소비 생활에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 제목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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