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swell Jan 18. 2024

죄 없는 술 탓은 이제 그만

결국 과도하게 술을 먹은 내 잘못이다. 

어렸을 때 잔병치레는 많이 하는 편이었어도 종합병원을 드나들 정도로 크게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었는데 회사에 들어온 이후 인생 처음으로 응급실에 가고 입원을 해 봤다. 1년 차에는 연말 팀 회식 때 2차 장소를 물색하던 중 넘어져서 팔꿈치가 탈골되는 바람에 급히 응급실에 가서 뼈를 맞추고 한 달 동안 깁스를 했다. 2년 차에는 A형 간염에 걸려 5일 동안 입원했는데 아마도 당시만 해도 술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던 잔 돌리기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4년 차에도 술 마시고 넘어지는 바람에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한 번 더 있다. 이렇게 새삼 글로 쓰고 나니 문제의 심각성이 느껴진다.


한 마디로 모두 술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신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는 회식 때 술을 잘 마시는 것을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반쯤 우스갯소리로 '상사들과 술 잘 마셔주고 고기 잘 구웠기 때문에 회사에서 뽑혀 유학을 나올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대학교 때부터 술을 못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신입직원 때는 기나긴 회사생활에서 다수의 술자리로 단련된 선배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점점 회사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그런 회식 외에도 동기들, 친구들, 친한 선후배들이랑 술을 마시러 다니는 일이 많이 생겼고 당연히 과음을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다행히도 유학 기간 6년 동안은 그렇게까지 술을 많이 마실 일이 거의 없었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 기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있었고 한국에서처럼 주변에 술을 마실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런던의 미친 듯한 외식 물가도 한몫했다. 대신 거의 매주 금요일 저녁에 일주일이 무사히 끝났음을 기념하며 집에서 감자칩과 함께 맥주를 두어 캔 마시는 습관이 들긴 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에 복직을 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회사에서 회식이 거의 없었다. 전해 듣기로는 코로나 전부터 이미 술을 심하게 마시는 회식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고 한다. 유학 중에 나와 결혼한 아내는 잘 믿지 않지만 그 덕에 유학 전에 비해 술을 마시는 양과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적어도 현재 부서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현재 부서에서는 비서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수행 업무가 가끔 저녁식사 자리까지 연장되기도 했다. 즉, 상사의 성향에 따라 이 업무에 술상무 역할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 분들은 연세가 꽤 되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달리지 않고 딱 상사가 마시는 정도만 따라 마시면 아주 힘든 경우는 많이 없었다. 문제는 환갑 전후에도 끊임없이 소주를 원샷하는 초인과 같은 상사를 모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생했다.


사실 술을 아예 끊지는 못하더라도 절주를 하기 위해 나름 노력은 해 왔다. 집에서는 절대 미리 술을 사다 놓지 않고 딱 마실 양만 사다 마시고, 회식을 빼고는 개인적인 저녁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다. 그런데도 상사를 모시고 가는 회식 자리가 생각보다 자주 생기다 보니 이러한 노력이 무색해졌다. 회식 자리에서는 긴장을 하기 때문인지 사고가 없었지만, 집에 오는 과정이나 집에 와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결국 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도 몸에서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내가 내 몸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술자리에서 적절히 거절을 했으면 해결될 문제다. 항상 혹시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서 감히 거절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차장씩이나 되었고 나이도 40이 넘어가니 그 정도 용기는 충분히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술에는 아무 죄가 없고, 반쯤은 안 좋게 보일까 두려워하고 반쯤은 즐기면서 넙죽넙죽 술을 받아먹은 나의 업보인 것이다. 물론 말로는 술 강권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술 잘 안 마시면 싫은 티 팍팍 내는 상사 및 선배들도 깊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술자리에서 남들에게 절대 술을 권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육체와 정신 건강을 모두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 만큼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폭음을 하는 일이 없도록 술자리에서 'No!'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편한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곁들여 9시 정도까지 취하지 않게 마신 후 집에 들어가거나, 주말 저녁에 집에서 아내와 얘기하면서 저녁식사와 함께 막걸리나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는 술자리를 좋아한다. 이러한 술자리를 향후에도 오랜 시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억지로 끌려가는 술자리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단호한 태도로 절주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cremaclub.yes24.com/BookClub/Detail/110142530

작가의 이전글 소탐대실 잘라 버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