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병 환자, 미국에 오다.

by Muswell

내 아내는 요즘 농담 삼아 나를 중증 미국병 환자라고 부른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10여 년 전 유학을 준비할 때 어떻게든 미국으로 가고 싶어서 끝까지 가망 없이 미국 학교의 합격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둘째, 미국에 있는 국제기구에 한 번 일하러 가보겠다고 올해까지 장장 2년에 걸쳐 문을 두드렸다.


이에 대해 나는 여러 차례 반박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미국 학교가 박사과정 학생에게 재정 지원을 많이 해주는 편이기 때문에 미국 학교를 가고 싶어 했고, '미국'이 아닌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동기야 어쨌든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어떻게든 미국에 가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 반박은 설득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2년 동안 카투사로 근 복무를 하는 동안 미국에 대한 환상을 많이 깼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약 2년 전 예전 부서에 있을 때 회사 내에서의 미래를 고민하다가 개별적으로 국제기구 한 곳에 지원을 했다. 위태위태하게 1차 면접은 통과했지만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 뒤로 깔끔하게 외국 생활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2월 말에 회사에서 그 국제기구에 가서 일할 파견자를 선발한다는 공고가 났다. 그때까지도 지원할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의 권고와 조언 등에 힘입어 얼떨결에 지원을 하고 30분짜리 화상면접을 한 번 본 후 운 좋게 선발이 되었다. 4월 중순에 나가는 게 확정이 된 후 미국의 느린 행정 처리 속도에 제때 출국할 수는 있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도 6월 말에 무사히 미국에 도착하여 지금은 일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초기 정착이 얼마나 어렵고 짜증 나는 일인지를 영국에서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에 마음을 최대한 비우자고 거듭해서 다짐했는데, 국가가 달라지니 그때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평정심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집도 구하고 점차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는 있다. 다만, 출근하면 주변에서 영어가 쏟아지고 읽어야 되는지 불확실한 이메일이 넘쳐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한 후에야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봤고 외국에서 1년 이상 살게 될 거라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어느덧 영국 유학 6년을 마치고 미국 생활 3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 외국 생활로부터 배운 진리가 하나 있다면, 사람 사는 곳은 대부분 비슷하고 어느 곳에서 살든 장점과 단점은 모두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3년 후 나는 높은 확률로 '미국병'을 완전히 치료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3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기에, 이미 시작되었을 뇌의 노화를 조금이나마 늦추자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을 최대한 즐겨보려 한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kaytlentravels.wordpress.com/2012/06/10/hello-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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