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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l 08. 2022

듀오링고 실패기

제2외국어 공부로는 글쎄...

1. 시작

0개 국어 구사자. 유튜브 채널 와썹맨의 동영상에서 박준형이 아무 말 대잔치를 할 때 가끔씩 등장하는 자막이었다. 영국에서 살던 당시 난 이 자막을 보고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는 딱 하루하루의 삶에 크게 지장이 가지 않는 수준에서만 겨우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고, 주변에 한국인이라고는 가족들밖에 없어서 한국어 실력도 점차 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모국어가 영어이거나 영어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편인 유럽 출신의 학생들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부족한 언어능력과 싸우던 시점에 어이없게도 제2외국어를 한 번 익혀 보자는 다짐을 했다. 같은 연구실에 있던 독일인 동기가 취미로 스페인어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읽고 있던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에서 뇌에서 서로 다른 부분이 발달하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를 연결 짓는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고, 낯선 언어를 배우면 경제학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는 데 혹시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배웠던 독일어를 취미로 공부해보자고 결심했다. 약간의 검색 후에 듀오링고라는 앱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2. 재회

나는 '반일'이라는 단어를 마주칠 때마다 심경이 살짝 복잡해지는데 일본이라는 국가의 행동은 얄미워 보일 때가 많지만 몇몇 일본인들과는 우정을 나누며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첫 해외여행은 일본 대학생들과 연합세미나를 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한 것이었고, 대학원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유가 생기면 항상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올해 초 아내가 코로나 후에 일본 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다면서 나에게 일본어 공부를 해 볼 것을 권했다. 이 기회가 아니면 시작하기 어렵겠다 싶어서 다시 듀오링고 앱을 태블릿 PC에 설치했다.


3. 듀오링고의 장점 및 아쉬운 점

제목과 윗 문단에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듯이 이 글은 듀오링고로 두 개의 제2외국어를 공부하다가 두 번 모두 실패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독일어는 7~8개월 정도, 일본어는 4개월 정도 매일 공부를 하다가 중단을 했다. 중단 이유는 듀오링고 앱에서 아쉬운 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이를 핑계로 나 자신이 외국어 공부를 지속할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듀오링고의 가장 큰 장점은 매일 간단한 퀴즈를 풀면서 부담 없이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 학습 목표를 아주 까다롭게 설정해 놓지만 않으면 하루 10분 정도만 투자해도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매일 저녁 8시 정도까지 1일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알림 메일이 오기 때문에 꾸준히 학습을 하기에도 좋다. 가끔 퀴즈만 풀다 보면 습득한 지식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를 각 주제와 단계별로 핵심사항을 담은 페이지를 제공하여 보완하고 있다.


올해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추가로 느꼈던 장점은 캐릭터가 상당히 귀엽다는 점이다. 나한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아들은 문제를 풀고 맞힐 때마다 등장하는 캐릭터에 흠뻑 빠져 버렸다. 저녁때 아이가 캐릭터를 구경하기 위해 나에게 일본어 공부 안 하냐고 성화를 부릴 정도였으니 나는 추가로 공부하라는 알림을 받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아쉬운 점이 있는데, 이는 사실 듀오링고의 수익성과 관련 있는 부분이라 본질적 한계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듀오링고를 사용하여 제2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무조건 영어 버전의 듀오링고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사용하여 듀오링고에서 학습할 수 있는 외국어는 영어밖에 없다. 아마 한국인들이 듀오링고에서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학습하려는 수요가 높지 않거나, 듀오링고라는 앱 자체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독일어처럼 영어와 근원이 같은 서양권 외국어일 경우에는 이 점이 크게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단어나 기본 어순이 비슷한 사례가 많아 오히려 한국어 버전으로 독일어를 배울 때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어처럼 한국어와 훨씬 가까운 언어를 학습할 때 발생한다. 히라가나, 가타카나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순이 같은데 어순이 다른 영어를 중간에 거쳐야 되니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성이 이름 앞에 오는데 영어로 하면 반대가 되니 일본어에서 영어로 번역을 하다 보면 어떤 게 성이고 어떤 게 이름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짜증이 누적되면서 듀오링고를 통한 일본어 학습을 포기하게 되었다.


4. 결국은 꾸준한 학습의 문제

아마 삐딱한 시선으로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속담이 있을 것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만 한다.' 실패담을 글로 쓰고 있는 나도 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독일어 학습을 포기한 이유는 서술하지 않았는데, '이걸 배워서 무엇에 쓰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듀오링고 탓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언어를 배울 때는 꾸준한 반복 학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동기부여에 실패하기 시작하면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단, 일본어는 책을 한 권 사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듀오링고를 사용할 때처럼 꾸준히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계속 꾸준히 학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듀오링고는 포기했지만 그 핑계로 일본어까지 포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ko.duolin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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