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지난 포스팅에서 iF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하게 된 준비 과정을 소개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출품작 중 상위 50%를 가려내는 1차 Online Selection 에서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50%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다니!
최종 수상까지는 어려울 수 있어도, 최소한 1차는 통과할 줄 알았기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1차 통과하면 제출자료 수정해야 하니 업무 일정 참고해달라고 CD님께 보고 드린 것이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직 3개월 수습기간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 이대로 계약종료 되는 건가?
잠깐. 수습기간에 계약종료면 실업급여 받을 수 있지 않나?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심사 결과지를 다시 꼼꼼히 살펴봤다.
다섯가지 심사 항목 별로 각각 100점씩 부여, 총 500점 만점에 263점이 커트라인이었는데 우리는 236점을 받았다. 아깝게 떨어졌다고도 말할 수 없는 민망한 점수지만, 그래도 실패 요인을 파악하고 다음 번엔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각 항목 별 점수를 살펴보면, ‘Form’ 즉 디자인 자체로는 괜찮은 점수를 받았지만 나머지 항목에 대한 점수는 모두 처참했다. 디자인 자체는 그럴싸했지만, 그 외 브랜딩의 목적이나 타깃 설정, 실제 브랜딩으로 발생할 임팩트 등의 전략적인 부분이 촘촘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브랜딩에는 디자인은 있지만 기획이 없다.
브랜딩이란 뭘까. 브랜딩 저서들을 이것저것 펼쳐보고 각종 마케팅 플랫폼을 들락날락하며 살펴봤다.
브랜딩이란 이거다 저거다 말이 많았지만, 종합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는 듯 하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경험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제공하는 회사인지, 브랜드의 본질과 존재가치를 다루는 영역이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라면,
이렇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실체화 작업이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일 것이다.
브랜드 경험은 이름, 슬로건 등 언어적인 요소와 비언어적인 디자인 요소로 다시 나눠질 수 있는데, 아무래도 받아들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시각적인 경험이 가장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브랜드 로고나 그래픽 패턴, 색상, 서체 등 디자인 요소가 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디자인 경험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무시할 수 없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없는 브랜드 경험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실패 요인은 여기에 있었다. ‘디자인 어워드’니까 ‘디자인’만 괜찮으면 다 잘 될 거라고 애써 외면했던 건지도 모른다.
포스팅을 쓰던 중, 관련해서 도움이 될 만한 아티클을 읽었다. 우리가 실패한 원인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https://maily.so/alkony/posts/420afe96
중요한 부분은 따로 메모. 결국 우리는 엇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사보다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브랜딩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브랜딩에 대한 환상은 무형의 브랜드 가치가 감각으로 인지되는 유형의 자산에서 온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중략) 단순히 눈에 보이는 부분만 치장하면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접근은 놀라울 만큼 일차원적이고 편리하다. 그러나 그 편리함에는 늘 한계가 뒤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브랜드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브랜드 자산이지만,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아무튼 첫 도전이 씁쓸한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실패를 경험 삼아 재정비해서 다른 어워드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인원이 붙어서 기획 단계부터 촘촘하게 논의해볼 계획이다. 우당탕탕 브랜딩 여정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