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만 둬 줬으면 좋겠다.
금요일 저녁, 아주 오랜만에 야근없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유는 팀원간의 불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밤을 새우며 무보수의 시간 외 근무를 하고, 한 번 감기에 걸리면 몇 달 동안 떨어지지 않는 체력이 되어가며, 내 생활을 내놓고 한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이던가.
억울하고 분하고 아팠다. 월요일에 다시 회사에 나가 그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무작정 휴가를 냈다. 그리고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내 몇 개월을 곱씹었다. 결론은 없었다. 구체적인 이유도 모른 채 그저 굉장히 억울하고 분하고 아플 뿐이었다.
그러던 일요일 오후쯤 엉뚱하게도 물이 시작하는 지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 뜨는 해를 바라보듯,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 듯, 물이 솟아나는 지점을 보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월요일. 출근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목표는 집 옆 유등천의 발원지. 우리 집은 유등천의 상류쯤에 있기에 천천히 천을 따라 올라가면 6~7시간 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콜록대며 집을 나서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아프면 오늘은 회사를 쉰다고 하지 그러니?”
이른 봄이었던 그 날의 아침은 쌀쌀했다. 가끔 운동하기 위해 걸었던 냇가를 질러 올라갔다. 우레탄으로 포장된 산책로는 곧 끝났지만 초반 3시간 정도의 냇가 길은 꽤 잘 정비되어 있었다.
무작정 걷는 길이니 지도도 길에 대한 정보도 있을 턱이 없었다. 그저 냇가를 따라가다보면 물길이 좁아지고, 산이 나오고, 산을 올라 물길을 따라가면 마법처럼 물이 솟아나는 지점이 보이고, 나는 그 곳에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것이란 기대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대전을 벗어나 금산에 접어들었는데도 유등천 물길은 좁아질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더 넓어진 것처럼 보였다. 20년 가까이 그렇게 알고 살았던 우리 집 근처는 유등천의 상류가 아니었던 건가.
비가 올 것처럼 잔뜩 꾸물대던 하늘은 곧 안개처럼 비를 흩뿌렸다. 흩날리는 비라 우산을 써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방에 우산을 넣고 걷다보니 옷이 점차 눅눅해져왔다. 비를 피하고 몸도 녹일 겸 근처 찻집에서 커피라도 마시려 했지만 한겨울을 막 지나보낸 관광객 상대의 가게는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따뜻한 차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 걷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점점 넓어지는 물길과 반비례하여 점점 좁아지던 냇가 길이 사유지 철조망에 막혀버렸다. 게다가 건너편은 절벽에 가까운 산이었다. 사유지 철조망 앞에서 좀 지나가겠다고 사정하려고 철조망 앞에 설치된 벨을 눌러봤으나 농한기의 사유지엔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그 때 주인이 나왔더라면 미쳤다고 했을 거다)
물 속으로 사유지를 지나 길이 다시 나타나는 곳으로 건너가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냇물에 들어갔다가 1분도 안 돼 다시 튀어나왔다. 3월 초의 냇물은 당연히도 얼어붙을 듯이 차가웠다.
그 때였다. 반대편 저쪽 너머에 산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이 보였다. 산으로 올라가 끊어져 있는 길만큼 이동하다 다시 내려오면 다시 물을 따라갈 수 있을듯 싶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길을 올라 위쪽으로 한참 이동한 듯 싶을 때 저쪽 가시덤불 너머로 다리가 하나 보였다. 저것이 사유지 너머의 다리구나 싶어 다시 가시덤불길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몇시간처럼 느껴졌던 몇십 분의 노력에도 불과하고 내가 발견한 그 가시덤불 너머의 다리는 좀 전에 물을 건너왔던 그 징검다리였다.
순간 맥이 풀렸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지, 정말 물이 시작하는 지점에 가고 싶었더라면 얼마든지 가는 방법을 찾아갈 수도 있었는데 항상 즉흥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뒷감당이 안돼 실패만 하잖아.
한참을 스스로에게 화내며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땀과 빗물에 젖은 옷이 식으며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숨을 쉴 때마다 부은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더 이상 걸을 체력도 걸을 기분도 아니었다. 택시라도 잡아타겠다며 근처 마을로 올라갔다.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는 다행히도 우리 집 앞으로 가는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한참을 바들바들 떨며 버스를 기다렸다. 5시간을 걷고 40여분을 기다려 탄 버스는 30분도 안돼서 집 앞에 나를 내려줬다. 진흙투성이가 된 바지로 터벅터벅 걸어 동네 이비인후과에 들러 항생제가 잔뜩 든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그 차림 그대로 집 근처에 사는 선배를 불러 차를 마시고 역시 또 집 근처에 사는 후배네 집에 들러 감기약과 맥주를 털어 넣었다. 집에 돌아오는 옷 틈새에서 계속 흙이 떨어져 나왔다.
그 날, 처음으로 나는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