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업! 프로이트

다시 읽어야만 하는 프로이트

by 박진우

정신분석이 말하는 ‘정신’이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정신의학에서 지시하는 대로 뇌와 중추신경의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정신'은 앞으로도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 혹은 생각으로 전부 표현이 안되죠. 그래서 '정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정신의 에너지 체계를 두고 '정신'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정신 질환은 생각이 고통스럽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래서 의식적인 괴로움을 덜 수 있다면 치료가 된 것으로 착각도 일어납니다. 정신의학에선 좋은 약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정신질환이 쉽게 해결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떨까요? 정신의학에서 내놓은 가설이 잘 맞아떨어졌다면 치료 가능성은 굉장히 높을 겁니다. 그런데 그럴까요? 폐쇄병동에는 여전히 환자들이 많죠. 몇 년 약 먹어도 좋아지는 게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체화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손쓸 도리 없이 몸만 아파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신경성 질환도 마찬가집니다 역류성 식도염이나 다발성 경화증, 강직성 척추염, CRPS와 같은 질환이 괜히 치료가 안될까요?


정신작용을 약으로만 다스리는 것은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신분석의 입장입니다. 의식적 진정에는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죠. 순간적으로 편해지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DSM-5를 개정하던 당시에 영국에서 정신의학이 조현병 치료에 쓸모없다고 심리학계에서 반발한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은 과거부터 사회복지 영역에 투자도 많이 해서 그런지 예산이 들어가는 영역에 좀 민감합니다. 정신의학에 조현병 치료하라고 투자를 했었는데 효과가 미미했죠. 심리학계는 정신의학적 조현병 치료에 예산을 투자하는 것을 '낭비'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약이 그렇게 좋아서 치료가 되었다면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드러나진 않았을 겁니다.


프로이트는 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에 깨끗하게 치료될 약이 있다면 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했습니다. 프로이트 역시 그러한 경험이 있으니 주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한 번에 낫는 그런 약이 나타날 리가 없을 것으로도 생각했을 겁니다. 정신구조의 역동을 생각하면 나올 수도 없습니다.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조현병 치료에 약 들어가니까 한 번에 나았다는 연구도 있긴 합니다. 약으로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겠죠. 그것은 치료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관리하기 좀 수월해졌다는 의미죠.

프랑스에서도 아주 강력한 라캉 주의자들은 약물을 배제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안 씁니다. 채팅으로도 분석 효과가 나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정신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환자도 분석 치료가 가능했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사이버 상담의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심각한 정신적 증상을 상담으로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과거 저와 분석하던 분은 대체 상담으로 어떻게 치료가 되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보통 뇌가 문제라서 병에 걸렸다고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정신질환이 발병한다는 것은 정신분석에서 인정되지 않습니다.


물론 발작적으로 등장하는 행동화(acting-out)는 상담의 한계로 완력을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술 먹은 알코올 환자는 힘으로 제압하는 거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죠. 물론 저도 그런 경험이 있고요. 맨 정신일 때는 아주 점잖고 친절하신 분이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돌변하더군요. 이때는 말이 어떤 효과를 지니진 못합니다. 이 경우에도 발생하는 정신작용은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막을 수 없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그 흘러가는 시간을 잡으려 합니다. 그렇게 현재 상태의 변화를 막으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찾아 헤매죠. 다가오는 죽음이 두려우니 미리 시체처럼 살려고도 합니다.

병이 그렇게 삶을 좀먹어서 지쳐도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태도는 매일매일을 우울하게 보내고 싶어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운명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제 내담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반복 회로’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다시 이야기하면 '반복 강제'라고 부르고요.


신경증에 시달리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자아와 이드, 초자아 간의 소통이 편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 정신구조에서 의식에 드러나는 것은 자아와 초자아의 일부입니다. 이드는 아예 등장하지 않죠. 그것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기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생각의 변화요소를 자아와 이드, 초자아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정신분석의 아류로 등장한 '에고그램'의 방식으로 검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정신분석을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접해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 행동을 두고 이드가 강하다, 혹은 초자아가 강하다고 설명하는 말에 혹하는 경우가 있죠. 그렇게 ‘내 마음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식으로 욕망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너무 조잡한 방식입니다.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에 적절한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심리학에서는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 찬성할 겁니다. 그렇게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프로이트를 조금 더 살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은 자아, 이드, 초자아를 대하는 기존의 태도가 프로이트 방식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정신과 관련한 직업을 지닌 사람들은 정상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신화에 불과한 내용입니다. 또는 상담사가 상담을 받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편견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라캉은 그런 편견을 반박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훌륭한 정신분석가의 조건으로 신경증을 이야기했었으니까요. 그것은 신경증 구조에서 충동의 축적 기능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강한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하죠.

프로이트도 신경증자들을 일반인보다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인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자해를 해서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 자체는 매우 인간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예절도 바르죠. 대신 자기 비하가 좀 심각하죠. 나름의 갈등 처리 방식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정신분석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개인 분석을 몇 년씩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정신분석 전문가(양성 분석가)이신 스승에게 장기간 분석을 받았습니다. 정신분석가나 의사들에게서도 신경증적 내용은 관찰이 됩니다. 학문적 동기를 지닌 사람의 신경증 구조는 학문적 성취에 굉장히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처럼요. 그런 경우에는 증상이 승화되어서 병으로 들어갈 능력이 학문에 투자되어서 본인의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증상 자체의 원래 형태는 자기 자신의 에너지거든요.



"모든 사람은 신경증자"라는 말을 프로이트가 했다고 아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과 다릅니다. 이 말도 한번 오해된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오독 과정을 거쳤습니다. 공부하신 분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혼란을 경험하죠.


‘모든 사람은 히스테리자’라는 말을 뫼비우스라는 의사가 합니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논문에서 그 내용을 인용하죠. 그런데 그 말을 프로이트가 했다고 와전이 됩니다. 이것이 좀 격하게 알려지면서 모든 사람은 정신병자라는 말을 했다로 변해버린 겁니다. 이런 식의 오해들은 문화계에서도 종종 등장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프로이트를 안 읽어서 그렇습니다. 제임스 스트레이치의 프로이트 오역도 문제지만요. 제가 공부 시작하던 때 스승께서 프랑스 본부에서 지시받으셨던 내용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를 읽혀라


그런데 이것도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프로이트 번역의 질이 그렇게 좋지가 않습니다. 정 반대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다양합니다. 그래서 직접 번역 교정을 해서 강독을 하셨습니다. 그 작업하시다가 병원신세도 몇 번 지셔야 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한 후에 프로이트 공부시킨다고 일일이 교정하시다가 생긴 일입니다. 그래도 강행하긴 하셨죠. 탄탄한 기초를 위해서는 오랜 기간 연구를 한 노학자가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강의와 분석 등으로 에너지 투자가 많은데 번역 교정까지 하려니까 몸이 견디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의 번역은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프로이트를 펼쳐야 합니다. 정신분석의 개념만 잡으려고 하면 오해로 빠지기 쉽습니다. 정신분석의 사례들을 충분히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되지요. 프로이트의 5 분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매우 중요한 사례로 충분히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프로이트를 읽는다는 작업 자체가 조금 버겁습니다. 오역은 둘째 치고라도 상식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매거진을 저의 브런치 북 '분석가의 외투'와 함께 읽으신다면 이해를 조금 더 넓히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론만 이야기하는 경우, 현실에서 적용되는 것도 상상력으로 꾸며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땐 말이 굉장히 화려하죠.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쓸데없이 화려한 개념이나 말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중에는 프로이트를 읽지 않고 쓴 프로이트 책도 꽤 됩니다. 의학이나 심리학은 이 말에 대해서 반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프로이트를 읽지 않은 증거를 제시한다면 중독의 고착점을 구강기로 이야기하는 경우입니다. 프로이트가 중독의 고착점을 구강기라고 이야기했을까요? 프로이트가 고착점 문제를 다루는 논문이 있습니다. 거기서 중독은 좀 빠져있습니다. 즉, 의학과 심리학에서도 프로이트가 제시한 심리성적 발달단계에 따르는 신경증의 고착점을 상상력으로 설명한다는 말이 되겠죠. 의사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거의 대부분일 겁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분이 알고 있던 프로이트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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