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업 프로이트의 매듭을 짓습니다.
리비도 과잉 문제는 생활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자아 리비도가 과잉되면 정신에서는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찾으라는 압박을 합니다.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작용은 우리가 종종 느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외로운 시간을 경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로움이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좀 더 건강해지라는 주체의 메시지와도 같은 것입니다.
신경증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에는 이런 외로움의 신호를 죽을힘을 다해서 견딥니다. 그래서 신경증의 이기주의 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다가올 수 있을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게 됩니다. 자기 몸을 아끼는 태도가 지나치게 발달하면서 병이 됩니다. 프로이트를 이 문제를 풀어가면서 사람이 결국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사랑을 하면 신체가 고양되면서 기존에 앓던 병도 좀 덜 아프게 됩니다.
나르시시즘 문제는 신체의 병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실례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실제로 출간된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여자분이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어떤 병원에 가도 병이 낫질 않았습니다. 결국은 산속에 있는 어느 한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한의사는 여자의 진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아무 일도 해줄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얼마 후 노총각이었던 그 한의사와 아가씨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나중에 결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의 병도 나았습니다.
리비도 이론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즉, 사랑의 기적이라고 포장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현실적인 것으로 설명하게 해 줍니다. 그게 정신분석이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비슷한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죠. 피부과에서 흔히 <결혼하면 낫는 병>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증상들이 있습니다. 의사가 약을 쓰고 온갖 처치를 해도 피부병이 사라지질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여성의 경우에는 부모님 잡고 마구 신세한탄을 하죠. 왜 나를 이렇게 낳아서 지금 이 고생을 하게 만드느냐고요. 이 상태에서는 무슨 설명을 해줘도 잘 안 듣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약을 처방해줍니다. 이때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의 특징은 성 호르몬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바를 때는 괜찮지만 치료가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때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얼굴에 득시글 거리는 여드름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합니다. 나르시시즘에 투자된 에너지가 대상 리비도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야기했던 그 한의사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르시시즘 리비도 투자가 대상 리비도 투자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병이 나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때론 병이나 상처에 심리적인 의미가 깃드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흥미를 위해 사랑 관계의 예시를 들었습니다만 존경하는 인물도 해당합니다. 안수기도를 하고 병이 낫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를 신유의 은사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럴만한 존경심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는 사람들은 쉽게 병이 낫지 않는 히스테리자들이 찾는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병이 낫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자아 리비도와 대상 리비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것은 정신 리비도의 차원에서 분화된 내용입니다. 신체 리비도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느끼는 리비도입니다. 몸이 피곤해져서 힘든 것도 신체 리비도 고갈로 볼 수 있습니다.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은 리비도 만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신작용은 정신과 신체 리비도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돕습니다. 주변에서 가끔 우울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병든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혹은 악몽을 꾸고 무서워한다든지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 훨씬 건강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해서 스스로 가면 우울증이라거나 민모션 증후군 등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되면 또 안 그럽니다.
오히려 잘 지내기도 하고요. 상황에 따르는 리비도 처리 문제가 관계되는 것입니다. 정신에서는 리비도 자극을 가공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 자극을 외부로 바로 배출할 능력이 없거나 혹은 금지되어 발산할 수 없다면 자극을 내면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환상은 중립적이지만 여기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극을 가공 처리하면서 정신을 순화하는 기능을 해줍니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고 자아로 리비도가 바로 들어갈 때는 망상이 환상을 대신합니다. 이것이 정신병 상태입니다.
정신병에서는 자아로 돌아선 리비도를 망상을 통해 처리합니다. 그리고 과대망상의 내용에 의해 가공됩니다. 정신병자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작용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자들은 무의식을 드러낸다고도 말합니다. 망상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지요.
편집증에서 망상이란 처음에는 과대망상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왕이다>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환상이 작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환상이 작동한다면 대상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신병에서는 그 능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의식에 어떤 대상이 나타나게 되면 모두 자기 자신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정신병을 두고 <자아의 병>이라고 말합니다. 정신병자는 병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고도 말합니다. 근원적 나르시스의 문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것을 초자아가 보완을 해줍니다. 조금 헷갈리실 겁니다.
라캉은 이때 <폐제>라는 단어를 씁니다. 정신병에서 아버지 자리가 부재하기 때문에 <내어 던졌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버지 자리가 없다는 의미는 자아와 나르시스 연합으로 초자아를 무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상태를 정신의학에서는 초자아가 없다고 종종 이야기합니다만 초자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일부 기능은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잘 보셔야 합니다. 언제나 100%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은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정신의 자기 보존 충동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리비도는 증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지만 <증감률>만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과대망상이 등장하고 이후에 피해망상으로 발달합니다. 그제야 <나는 고통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과대망상이 핵심이 될 때는 고통의 이미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례를 들어보죠.
저는 아주 드물게 급성기 편집증의 분석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고추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초기에 분석을 시작하면 박해받는다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뭔가가 진행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혹은 어떤 행정처리가 계획대로 되었다고도 말합니다.
혹은 정신병원에 입원하신 분들 중에서 편집증에 시달리는 여자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이 근처에 잠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남자들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행동은 쉽게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경찰에 전화해서 신변보호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신경증에서 처리되지 않은 리비도는 불안으로 변형됩니다. 정신병에서는 망상으로 처리되지요. 그렇게 리비도는 대상에서 분리되고 더 나아가서 온갖 종류의 퇴행을 내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듣기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신질환이 생겼다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갈등을 회피할 수 있다면 신경증에는 시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최근 사회현상에 대해 여러분들은 다양한 반론을 제기하실 수도 있습니다. 정신병 범죄라는 것이 종종 이슈화가 되고 있으니까요. 주로 조현병 범죄나 분노조절장애 등도 해당이 될 수 있겠네요. 강남역 사건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아무 이유 없이 여성을 살해한 이 범죄는 전형적인 편집증 범죄입니다. 라캉이 자기 처벌형 편집증을 연구할 때 사례로 들었던 에메라는 여자를 들어본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여성은 가만히 잇다가 뒤플로스라는 여배우를 칼로 공격했습니다. 강남역 사건과 흡사해 보입니다. 물론 국가가 다르다고 하지만 유사 사건은 꽤 많습니다.
어떤 의사들은 강남역 사건을 두고 여성 혐오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정신과 전문의의 설명이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면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약 안 먹어서 일터 졌다는 말로요. 그것은 지금껏 우리가 이야기해왔던 정신병과는 동떨어진 내용입니다.
어떤 신경증에서도 초자아는 기능합니다. 사회적인 금기에 대해서는 행동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강남역 사건의 범인은 그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어떻게 초자아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사건을 이해하기가 곤란합니다.
강의를 시작할 때 욕망 구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자아는 나르시시즘과 연합해서 초자아보다 많은 에너지를 가집니다. 그때 초자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망상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병으로부터 안정화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겁니다. 약을 거부하고 씻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했을 겁니다. 증상을 퇴행시키는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퇴행을 막아야 합니다. 편집증의 고착점이 이가 나는 이유기에 해당한다면 그 이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열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민폐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범인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정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가인 미졸 드 멜러는 편집증자는 약물을 공격으로도 인식한다고 연구했습니다. 자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중추신경을 건드리는 약물을 거부하려 애쓸 것입니다. 다른 치료 역시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가 여성을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편집증에서는 동성애 충동이 뜹니다. 그런데 환상 대상에는 여성이 있습니다. 강남역 사건의 범인이 남자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환상과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환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편집증의 동성애 충동이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편집증자는 그 환상 대상의 이미지를 지워야만 합니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여성을 공격하게 되는 상황까지 갑니다. 그것도 1:1의 상황에 한정됩니다.
여성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파주 토막 살해사건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던 여성이 손님과 관계하다가 자신을 강간하려는 환각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일격에 그 손님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그러나 환각은 그 여성을 계속 강간하려 했습니다. 두려움에 질린 그녀는 시신을 두 개로 토막 내어서 따로따로 유기했습니다. 물론 행동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작용이 있다는 것은 고려해야 합니다. 아무리 심각한 행동이라고 해도 자기 보존 충동에 따르는 자가 치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망상이란 단순히 엉뚱한 생각 또는 상상으로만 이야기되지는 않습니다. 자아의 선택에 관여해서 행동을 일방적으로 몰아갑니다. 가능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이게 만드는 겁니다. 이런 사실은 일반에게 적용되는 윤리적 미학적 관점에서는 불쾌합니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실제로 생명에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보존 충동은 자아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 작동합니다.
정신병에서만 이런 반응이 나올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 역시 비슷합니다. 화가 나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렇게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거제도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나이 든 여성을 공격해서 살해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모른다고 끝까지 주장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의 초자아를 무시할 수 있는 힘이 공급이 되어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울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술 먹고 가다가 파지 줍는 할머니가 자기한테 뭐라 한 거 같다고 뺨 때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술이 깨고 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검열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주사 부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자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을 못 하는 남자가 술을 마시면 어느 정도 고백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르시시즘이 뜨면서 자아에 힘을 좀 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문학에서는 <사랑의 묘약>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요즘은 클럽에서 메스암페타민 같은 약을 복용하고 즐기기도 합니다. 마약의 경우는 나르시스에 굉장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래서 제한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듭니다. 물론 그 상태는 제정신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초자아가 그 행동을 검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중독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괜찮습니다. 중독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는 정신에서 퇴행의 움직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금단증상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퇴행을 막기 위해 초자아가 좀 더 엄격해집니다. 나르시시즘에 그만한 인위적인 에너지가 들어갔다가 빠지게 되면 초자아는 그만큼의 처벌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담배도 중독이 됩니다만, 담배의 경우에는 불안의 처리와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에너지 문제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암 환자처럼 몸이 아픈 환자들에게는 이런 중독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통증 상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로 완화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모든 사랑을 차단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진통제가 들어가게 되면 통증을 잡고 다시 대상 리비도 투자가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조금 덜해질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이나 심리치료를 실시할 때, 약물을 같이 쓰자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그런데 정신분석에서는 전통적으로 약물을 쓰지 않습니다. 약물이 리비도에 개입하여 나르시시즘에 작용하면서 리비도 처리방식을 바꿔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강의를 마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는 새로운 것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것을 그렇게 읽으라고 권했습니다. 프로이트를 두고 100년 된 이론이라고 구닥다리 취급하는 학자들도 종종 보입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까지 프로이트만큼 세련된 이론을 또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정신분석은 마치 자동차 튜닝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최고의 튜닝은 순정이라는 말처럼, 정신분석은 프로이트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질문 답변 시간을 한번 가져보도록 하죠.
청중 : 빙의와 같은 질환은 정신분석이 어떻게 설명합니까?
박 : 빙의와 같은 정신질환은 정신분석에서 히스테리로 봅니다. 무병의 경우에 진정이 되는 것은 히스테리의 전이효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언어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청중 : 다른 학자들은 뇌로 인해서 정신병이 일어난다고 설명하는 것 같아요.
박 : 뇌로 인해서 정신질환이 발병한다는 것은 프로이트 적인 관점이 아닙니다. 뇌가 문제라면 정신병 자체는 나을 수 있는 성격이 되진 않을 겁니다. 저는 실제로 만나지도 않고 온라인으로 분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효과들은 나타납니다. 저의 임상들은 뇌의 문제가 아님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드디어 레벨업 프로이트가 완결이 되었습니다. 꾸준히 작업을 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밀리지 않고 연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이제는 현재까지 쓴 글들을 원고로 만들고 출간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아. 그전에 글을 하나 공개할 것은 있을 것 같네요. 조금 시간을 두고 공개하려 합니다.
저의 작가의 서랍에는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여러 편의 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지금 공개하는 것은 조금 시기상조인 것 같네요. 나중에 다른 글들을 더해서 하나의 묶음이 될 수 있을 때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럼 당분간은 출간을 준비하는데 힘을 좀 쏟아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레벨 업 프로이트]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