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경험하는 것은 곧 행동을 번역하는 것
‘정신’ 이란 말에 관심이 있다면 프로이트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개개인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서 프로이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성욕이나 남근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이다.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이라서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론만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정작 정신분석을 일상에서 ‘경험’ 해볼 기회는 갖지 못한다. 정신분석을 경험해보고자 한다면 직접 정신분석가를 만나서 정신분석을 진행하는 것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신분석을 일상에서 경험해볼 수는 없을까?
공부하면서 이론적 틀이 잡히고 나서 상담경험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상담하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겠지만 치료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면 좀 더 구체적인 경험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험에 대한 갈증이 계속 생겨났다. 그 갈증은 대단한 것이어서 사회복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도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위해 무리하기도 했다. 물론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배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 경험은 사회복지사에서도 특이한 내용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미국 초기 사회복지사들 중에서는 복지 하다가 도중에 정신분석가로 빠진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플렉스너라는 정신과 의사가 사회복지가 전문직이 아니라고 비판했고, 그에 따라 정신분석을 사회복지 이론으로 채택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회복지사로 정신분석을 실천하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달랐다. 사회복지 실천으로서의 정신분석보다는 직접 임상을 다루는 정신분석가의 역할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사회복지 현장으로 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배운 것을 써먹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데는 나의 스승이 경험담이 큰 영향력을 미쳤다. 내 스승께서 프랑스에서 수련하실 때, 반정신의학 운동기관에서 수련했던 그 경험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관이 정신병원이 같은 조건을 지닌 곳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경험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펠릭스 가타리라는 정신분석가는 정신질환자들과 10년 넘게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는 라캉식의 정신분석이 아닌 분열 분석이라는 새로운 기법들을 만들어냈다. 내 생각으로 그런 기법들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함께 해나가면서 대화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일상생활의 정신분석에 대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프로이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그 당시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당시 나는 스승께 분석을 받으면서 동시에 경험이 쌓이고 있었기에 이해도도 높아지고 있었으며 치료 성과들도 내고 있었다.
물론 일과 상담을 어떻게 병행했냐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 치료기법의 특수성 덕분인데, 나는 온라인으로 정신분석을 실시해서 치료효과를 이끌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시기였던 만큼 비대면 상담에 대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없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치료 경험과는 별개로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한 현상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물론 나타나는 현상이 여러분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는 난해해 보이는 현상들이 검토될 수 있으며 믿기 어려운 현상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두고 '해석의 기예'라는 말을 썼다. 그것은 '번역'에 비유될 수 있는 것으로 증상은 1:1로 대응해서 해석할 수 없는 내용이다. 분석작업 자체는 신경증자의 행동이나 말을 원래 형태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번역하기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나는 정신병원에 입사해서 환자분들의 생활을 도우면서 그들의 행동을 번역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치료효과로 불릴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게 느낀 것은 치료란 분석가가 만들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신경증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미를 찾고 탐구하기에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