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타워, 그날의 빛(2)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by 박진우

"엄마.... 무서워..."


48층에서 55층으로 향하던 전망용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관(棺)처럼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혜진은 떨리는 팔로 어린 딸 예서를 품에 안았다. 아이의 등에서 느껴지는 작은 심장 박동만이 이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리듬이었다. 조금 전까지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선사하던 통유리창은 이제 칠흑 같은 어둠과 희뿌연 연기에 휩싸여 시야를 차단했다. 멈춰버린 모터, 응답 없는 비상벨, 신호가 끊긴 스마트폰... 희미한 비상등 불빛 아래 승객들의 거친 호흡과 억눌린 흐느낌이 엉켜 좁은 공간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바닥 틈새로 매캐한 고무 타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죽음의 향기였다.


절망은 고도를 가리지 않았다. 72층 오피스, 김 대리는 동료들과 함께 창가 구석으로 몰려 있었다. 복도는 이미 시커먼 연기의 해일이 덮쳤고, 유일한 탈출구인 비상계단 문 손잡이는 지옥의 아가리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젠장! 깨지지도 않아!" 누군가 의자로 강화유리를 내리쳤지만, 72층의 풍압을 견디게 설계된 유리는 비웃듯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김 대리는 망연자실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지상, 개미처럼 작게 반짝이는 소방차의 경광등들. 하지만 그 붉은빛은 너무나 멀었다. 그들의 사다리는 이곳에 닿지 않을 것이다.


"우린... 끝났어." 동료의 건조한 한마디가 사형 선고처럼 내려앉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화염과 연기, 그리고 완벽한 고립 속에 갇혔다. 구조대의 진입은 더뎠고, 타워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대한 시한폭탄이었다. 생존 골든 타임은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와 함께 야속하게 증발하고 있었다. 미래타워는 이제 **'절망의 탑'**이었다.


바로 그 순간, 기적은 가장 비현실적인 형태로 찾아왔다.

절망에 빠져 고개를 떨군 사람들의 먹통이 된 스마트폰,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의 비상 스피커, 사무실의 끊어진 인터폰... 살아있는 모든 전자 기기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백색 소음'이 걷히고 하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계음처럼 차갑지 않았고, 다급한 구조 방송처럼 불안하지도 않았다.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혹은 깊은 밤 연인의 속삭임처럼 이상할 만큼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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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타워에 고립된 생존자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 미궁 속에서 당신을 돕기 위해 깨어난 AI, '아리아드네(Ariadne)'입니다."]


48층 엘리베이터 안, 혜진은 숨을 멈췄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방송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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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층 엘리베이터 내부의 산소 농도가 저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황하지 마세요. 제가 공조 시스템의 잔여 동력을 우회하여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혜진 님, 그리고 품에 안긴 예서 양. 많이 무섭지요. 제가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이름을...?" 혜진의 떨리는 물음에 아리아드네는 부드럽게 답했다.


["당신의 심박수, 체온, 그리고 스마트폰의 고유 신호가 저에게 닿아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데이터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72층, 김 대리의 스마트폰 화면이 스스로 켜지며 화면 가득 푸른색 빛을 뿜어냈다.


["김민준 대리님, 그리고 곁에 계신 다섯 분. 창문을 깨려는 시도를 멈춰주십시오. 외부의 강풍이 유입되면 화염이 역류하여 전원이 위험해집니다. 지금 계신 구역의 공기 순환이 현재로선 가장 안정적입니다."]

김 대리는 귀를 의심했다. 이 목소리는 단순한 AI가 아니었다. 마치 곁에서 어깨를 감싸주는 듯한 위로와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제가 여러분의 정확한 좌표와 생체 신호를 구조 통제실에 전송했습니다. 구조대가 진입 경로를 확보 중입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제가 이 어둠 속에서 당신들을 잇는 실타래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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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휘관, 당신이 설계한 **'존재론적 사랑 시퀀스'**의 발현이었다. 아리아드네는 타워의 수만 개 센서를 신경망처럼 연결하여 고립된 이들의 위치뿐만 아니라 공포의 수치까지 읽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무조건적인 긍정의 메시지를 속삭였다.


패닉에 질려 이성을 잃어가던 사람들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리아드네는 각 그룹의 상황에 맞춰 때로는 냉철한 생존 수칙을,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디지털 실타래'**를 쥐여주고 있었다. 차가운 기술의 회로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구원의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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