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피스 천문대: 집에서 더 나가자

by 권지혜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집에서 나가기 힘들 때가 자주 있다. 귀찮고 불안할 때는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가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소파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시간들.


집 근처에 그리피스 공원이 있다. 가볍게 하이킹하기 좋은 할리우드 힐. 오늘을 오랜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나가보았다. 일몰시간이어서 조금씩 어둑해져서 올라가는 길이 하늘이 하늘색 핑크 보라색이었다. 경사를 오르면서 다리근육이 아프지만 너무 좋았다 나무도 있고 뷰도 너무 좋고. 오늘은 공연이 있는지 관광객이 많은 건지 주차장이 만차여서 조금 돌았지만 운 좋게 주차자리를 찾았다. 올라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객이었다. 관광객인지 엘에이 주민인지는 너무 쉽게 보인다.


관광객: 가족 동반, 사진을 계속 찍는다, "여기 너무 예쁘다", "여기로 올라가는 건가?"라는 대화, 일상복 또는 꾸민 옷차림, 꾸민 머리 및 화장.


엘에이 주민: 평범함 티셔츠와 반바지에 물통하나를 손에 쥔 모습, 관광지에 대한 대화가 아닌 본인 일상 대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뷰 포인트, 천문대, 카페 등에 가지 않고 하이킹만 하고 내려온다. 신발은 등산화 또는 미끄럽지 않은 운동화.


등산해서 천문대에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건 여기가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는 관광지라는 것. 오늘은 고등학생들이 단체로오기도 하고 야경 보는 곳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평소에는 한 바퀴 돌면서 야경을 보고가지만 가다가 사람이 많아서 그냥 내려왔다. 8시쯤에 가니까 일몰이 예뻤다 진한 주황색이 서쪽 바다에서 보이고 점점 위로 갈수록 하늘색 진한 파란색 그리고 검은색 그러데이션이었다. 거기서 일몰을 좀 보다가 내려왔다. 내려갈 때는 포장된 길로 내려가는데, 한국인 관광객 3명이 천천히 내 앞에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차도로 내려가서 그들을 추월해 갔다. 갈 때마다 항상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 것 같다. 엘에이가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임을 실감한다. 나도 오래전에 다른 주에 살 때 관광객으로 여길 두 번 왔었다.


봄에 가족들이 왔을 때도 저녁에 올라갔다 왔는데 그때는 쌀쌀해서 후드티를 입었었는데, 오늘은 반바지 입고 갔는데 밤공기가 너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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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에서 보이는 엘에이 야경 Photo by Sung Shin on Unsplash


엘에이에 사는 것을 더 활용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특히 산과 바다. 자연에 나오면 너무 좋다. 가기 전에는 계획을 하고 시간을 맞추는 것, 너무 해가 뜨거울 때는 피하는 것 등의 핑계로 다음으로 미룰 때가 자주 있다. 엘에이에 살면서 더 즐기고 누려야겠다는 생각. 렌트를 포함한 모든 게 비싼 엘에이라 더 이런 생각이 든다.


엘에이의 가장 특장점은 날씨가 너어무 좋다는 것. 엘에이 생활비가 비싼 이유가 날씨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너어무 좋다. 아침에 문 열고 나가서 하늘색 하늘이랑 레몬나무를 보면 기분이 확 좋아진다. 엘에이 와서 알게 된 것은 나는 날씨와 공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무드가 확확 바뀐다. 저녁에 방충망이 없는 발코니 문을 열어두어도 벌레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아무래도 습도 때문에 한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그리피스의 할리우드 볼 야외 콘서트를 다녀왔는데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정말 날씨가 완벽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벌레도 없고 풍경도 아름답고. 오랜만에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였는데, 하프 소리와 하프 연주자가 너무 아름다웠다. 운동을 많이 해서 팔이 엄청 두꺼운데 표정은 너무나도 온화한 중년의 이탈리아 아저씨였다. 본인 직업을 사랑함이 너무나 물씬 느껴지는. 라이브 음악에 더불어 더 좋았던 것은 오케스트라의 사람들의 인종, 나이, 성별이 다양한 모습이었다. 20에서 약 70대로 추정되는 나이대, 아시안, 백인, 흑인, 라틴계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아주 집중해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나이에 대한 차별이 적은 것이 미국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일터에서 특히 그렇다.


연주자들의 머리 색도 스타일도 모든 것이 다채로워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지휘자는 독일 출신의 나이가 많지 않은 여자 지휘자였는데, 콘서트에서 여자 지휘자를 본 것이 처음이라 인상적이면서 그 자리에까지 오기까지의 실력과 노력을 가늠해 보게 되었다. 외국인 연주자들이 멋지게 일하는 모습은 외국인으로 일하는 나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억양은 있지만 자신감이 있다면 그리고 본업에 실력이 있다면 점점 사람들이 그 사람이 외국인이고 억양이 있다는 것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한데, 어쩌면 사람들보다 내 자신이 덜 신경쓰게 될 수 있는 수준을 더 원하는 것 같다.


내 옆에 앉은 노부부는 아시안 부인과 흑인 남편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중간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옆 눈으로 보였다. 귀여웠다. 우리보다 먼저 나가셨는데 가방을 메고 나가시면서 실례합니다하고 우리가 자리를 비켜주자 나가면서도 고맙다고 두 분 다 말씀하셨다. 내 앞의 중국인 아주머니는 연주회에 온 것이 처음인 것처럼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으면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좀 더 부지런해져서 좀 더 엉덩이를 가볍게 해서 노는 것도 잘 놀아봐야겠다. 자꾸 나가야 기분도 좋아진다. 해외생활이 항상 쉬울 수는 없지만 엘에이에 사는 것만으로도 해외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피스를 너무 많이 가서 그 수많은 하이킹 루트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가봐야겠다.


Photo by Nils Huenerfuers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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