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왜 잘리지 않았을까?

정리해고

by 권지혜

올해 여름에 닥친 인생의 첫 정리해고. 놀라고 힘들고 슬픈 감정이 좀 해소된 뒤에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해고당하지 않았지? 50% 이상의 센터 동료들이 해고당하는 와중에 내가 어떻게 살아남게 된 건지. 외국인 신분으로 회사에서 비자와 영주권 스폰서도 해주어야 하고, 언어 및 문화 장벽이 있는 직원으로서 내가 왜 아직까지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1. 직원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하기 싫은 일 모두를 포함하는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피할 수 있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해내야 된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작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완성도가 낮은 작업물을 제출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 같다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것 같다. 일을 하다 보니 인생을 살다 보니, 나의 책임, 평판, 양심이 나의 커리어를 돕는다.


2. 효율성을 높여서 일을 많이 처리한다.

다른 동료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많이 하려면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고 각 프로젝트들의 데드라인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고 콜라보를 수락하고 그렇게 내가 담당하거나 참여한 작업들을 완성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좀 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싶어 져서 머리를 쓰고, 나 나름의 시스템을 구축해서 일을 하게 된다. 비슷한 직급에서 남들보다 일을 많이 해내는 직원을 해고하고 싶은 리더는 없을 것이다.


3. 어려운 일을 한다.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는 일들이 있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제들이나 나를 어느 정도 괴롭히면서도 발전시켜 줄 작업들. 그런 작업들을 기꺼이 하겠다고 자원한다. 어려운 일을 자원해서 하는 직원들을 상대적으로 적다. 부담과 불안을 떠안고 때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일들에 두뇌와 노력을 쏟아붓는다. 어려운 일도 몇 번 하다 보면 두려움이 확 줄어들어 있고, 어느새 내가 해봤던 일이 된다. 실패의 가능성도 있고 실제로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본다. 처음에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고 동료들에게 선언하고, 혼자서 부딪치는 과정이 가장 어렵고 두려웠다.


4. 변명과 핑계를 대지 않는다.

이래서 늦었고 저래서 못했다는 말을 안 하거나 최소화한다. 그러려면 완성도 높은 작업들을 계획했던 대로 끝내면 된다. 프로젝트 시작 전에 계획 단계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아주 많은 것 같고 모든 단계들이 수월해 보인다. 하지만 끝내기 며칠 전에는 남아있는 작업 양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다른 급한 프로젝트들에 시간을 빼앗겨 시간관리를 못하기도 한다. 근데 어느 순간에 이런 상황들도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는 경향의 사람은 동료들에게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고 또 신뢰를 잃는다. 반면에 하나둘씩 해내면서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은 결국 존경받게 된다. 사회에서 일을 해보면서 느낀 점은 자신이 맡은 역할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가령, 타임라인을 못 지키거나, 챗 지피티를 돌리고 수정 안 하거나 대충 한 작업물을 보내거나, 말로는 거창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써 온 것을 보면 탄탄하지 못한 경우, 또는 그냥 실력과 노력이 부족하거나. 김연경 선수의 말 "변명과 핑계는 루저들의 습관이다."


5. 전문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것

이메일을 합리적인 시간 내에 답하기, 미팅 시간 시키기 (정시에 나타나고 정해진 시간 전에 끝내기, 길어진다면 양해구하고 진행하기), 프로젝트 리더라면 기꺼이 가장 일을 많이 하거나 중요한 디테일들을 체크해서 완성도 및 실행력 높이기, 말한 약속 지키기, 고객에서 친절하고 신뢰감 있고 호감 가는 사람이 되기, 솔직하게 의견 피력하기: 이건 아직도 쉽지 않다. 솔직하면서도 공격적이지 않게 너무 직접적이지 않게 전달해야 하는데 답답한 감정이 꽉 차있을 때는 힘들다. 출근이든 줌 미팅이든 최소한의 격식 있는 복장과 머리를 갖추기: 줌 미팅이면 하의는 파자마여도 상의는 갖춰 입는 것. 미국에서는 옷차림을 신경 안 쓴다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든 인간은 타인의 옷차림과 꾸밈정도를 즉각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한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항상 깔끔한 차림의 동료와 종종 너무 편한 복장으로 나타나는 동료에 대한 이미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만 잘하면 된다는 말은 대부분 틀린 말이고, 일만 잘해서는 리더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도 전문적인 겉모습과 행동이 받춰지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6. 양심과 도덕

직장에서 나의 양심과 도덕성을 보여주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도덕성을 가지고 그것을 꾸준히 지키면 그 인성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분명히 생긴다. 동료든, 상사든, 회사 대표든 누군가는 나의 행동과 철학을 보거나 듣게 된다. 그게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비 도덕적인 모습은 1번이라도 보이게 되면 치명적이고, 도덕적인 모습도 1번이라도 노출이 되면 강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다. 가령, 직장에서는 정해진 근무시간 및 역할 지키기, 거짓말하지 않기, 공동의 물건은 1인용 및 1인분 정도만 사용하기, 회사 돈을 함부로 쓰지 않기, 중요한 결정 전에 상사에게 컨펌받아 위험성 줄이기, 자기 보다 권한이 적은 동료들에게 권력남용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기, 자신의 업적을 과하게 부풀리거나 타인의 성취를 뺏지 않기, 동료의 성공을 인정하고 축하해 주기 등의 행동들은 직장 내의 선순환을 야기시킬 수 있다. 단 한 명이 시작해도 변화는 시작된다.


이런 모습들을 내가 지향하며 지키고자 하는 방향임과 동시에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는 부분이다. 실력, 노력, 운, 역할, 마음가짐, 태도, 관계, 겉모습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정리해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해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국 친구 및 지인들에게 들었던 말은 "와 진짜 멋있다" "살아남았네 거기서, 대단하네"였다. 반면에 미국인 또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지인들은 "I am sorry to hear that. That must be really tough for you."의 반응이었다. 상반된 문화와 가치관이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치열한 잡 마켓에서 앞으로도 정리해고를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거나 내가 스스로 1인 기업의 사장이 되던지 해야겠다.



Photo by Zanyar Ibrahim on Unsplash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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