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만 개의 캐릭터를 한 폭의 그림에 담으려면?
모두의 풍속도 제작을 작년(2023년)까지 총 세 번 제작해오고 있습니다.(짝짝짝) 기획서부터 너무나도 많은 품을 들여 고생해서 만든 프로젝트기도 하고, 참여자 분들의 반응도 너무 좋았다 보니 언젠가 이런 과정들을 정리해서 내보이고 싶다 생각했는데요.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정리해 봅니다.
이번 글에서는 모두의 풍속도 참여자들이 제작한 캐릭터들을 활용해서 제작한 결과물인 '21세기 풍속도'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TMI 주의 ㅎㅎ)
첫해 모두의 풍속도를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는 총 33만 4천여 개입니다. 처음 모두의 풍속도 웹사이트를 완성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할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기획을 하면서 "참여자들이 생성한 캐릭터를 모두 모아서 만드는 풍속도를 제작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더랬지요.
하지만 참여 수가 3천 건도, 3만 건도 아니고... 무려 33만 건이 되어버린 상황... 참여자 분들이 SNS에 올리는 캐릭터와 그에 맞게 쓰인 재치 있는 글들을 보면서 너무 즐거웠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하... 참여자들을 모두 넣어 결과 풍속도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키면 어떡하지...' 고민도 깊어 갔습니다.
결과 풍속도를 오픈해야 하는 시점은 정해져 있었고, 캐릭터를 33만 개 배치하는 것도 일이지만 33만 개 캐릭터가 들어갈 배경을 제작하는 것도 너무 많은 리소스가 예상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모든 캐릭터를 넣어서 제작하는 게 가능할지 다른 방법이 있을지 빠른 검토가 필요했습니다.
검토하는 과정에서 참여자가 선택한 캐릭터 비율을 반영하여 3천 명 정도만 넣은 풍속도를 제작하는 방법, 참여 순서별로 1만 명씩 끊어서 총 33폭의 풍속도를 제작하는 방법, 동작별로 분류해서 간단한 배경을 더해 제작하는 방법 등이 대안으로 나왔습니다.
클라이언트였던 피알엠아이디어랩에서는 제작 리소스를 고려하여 저희가 이야기한 대안들을 수용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한 폭에 33만 캐릭터를 모두 넣는 것이 참여자가 느낄 임팩트가 클 것 같아 처음 기획처럼 진행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걸 바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하죠... 또르르...)
풍속도의 매력은 자고로 그 속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맛이라지요. 이 맛을 살릴 수 있게 캐릭터들이 너무 작게 보이지 않는 선에서 33만 개의 캐릭터를 배치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크기를 계산해 보니, 무려 가로 82,000px 세로 46,000px의 이미지를 제작해야 했습니다. 이미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운로드를 하게 할 수는 없었고, 확대·축소 기능을 포함한 웹페이지에 담아 보여줘야 했고요.
그 큰 이미지의 배경이 될 요소들도 필요했습니다. 평안감사향연도를 참고해서 기왓장, 지붕 표현, 담벼락, 나무, 산, 물 색상 등 배경 이미지 리소스를 그려나갔습니다. 원래 궁중문화축전이 진행되는 경복궁을 배경으로 하려 했지만, 33만 캐릭터를 담으려다 보니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궁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가상의 궁궐이지만 현판, 담벼락 등 디테일을 확인해야 하는 부분들은 경복궁을 로드뷰로 관찰하면서 표현했습니다.
배경에 사용할 이미지 리소스들을 33만 캐릭터 데이터를 추출해서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는 데는 맥북이 위잉 위잉 소리를 내며 6일 정도 고생해 주었습니다. 33만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로 많은 것인지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33만 캐릭터 이미지도 준비되었겠다, 배경에 쓸 이미지들도 준비되었겠다. 이제 배치만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완성을 약속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캐릭터 배치를 도와줄 분들만 있다면 완성이 가능해 보였어요. 급히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에 도움을 요청해서 일곱 명의 디자이너 분들을 섭외하고 함께 캐릭터 배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치를 담당할 풍속도의 구역을 배정하고, 해당 구역에 배치할 캐릭터 파일과 배경 이미지 소스를 전달드리고 본격적으로 Figma(피그마) 툴을 사용해서 배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디자이너 님들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배치를 해주었어요. 고요한 가운데 음악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들리는...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습니다. 배치한 캐릭터가 6-7만 개를 넘어가면서부터는 Figma 프로그램 자체가 엄청 버벅거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차선책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스케치, 포토샵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도 진행해 봤지만 비슷하게 버벅거렸어요. 또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3-4만 픽셀을 넘는 크기의 대지(Artboard)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33만 개를 모두 넣는 건 올해 안에는 어렵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너무 아쉬웠지만 빠른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클라이언트에 양해를 구하고 풍속도의 크기를 줄이고 줄어든 크기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만 캐릭터를 채우는 방식으로 작업 스케일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풍속도에는 19만 개 정도의 캐릭터가 배치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풍속도. 모든 캐릭터를 담지 못했음을 수줍게 고백하며 공개를 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정말 좋아해 주셨습니다. 엄청난 인구 밀도에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니냐고 하시는 분도, 19만 캐릭터 중에 본인을 찾아보겠다는 분도 계셨어요. 기획한 의미대로 풍속도를 확대해서 보며 재밌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이런 반응들을 보는 순간은 만들 때의 고생을 씻어내는 듯한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도감과 아쉬움을 뒤로 한채 21세기 풍속도는 완성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2022년에도 모두의 풍속도 제작을 맡아, 조금 더 효율화된 방식으로 풍속도를 제작하게 되는데요, 이 얘기도 나중에 풀어보겠습니다ㅎㅎ...
아래는 풍속도에 나름의 포인트 지형지물이 있는 곳을 갈무리한 이미지들입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함께 만든 사람들
클라이언트 : 한국문화재재단
기획·운영 : 피알엠 아이디어랩
웹 기획·제작, 일러스트 : 스투키 스튜디오
풍속도 인물 배치 : 양으뜸, 오새날, 이하경, 이현지, 장윤정, 최다솜, 홍희연
사용 서체 : Sandoll 마들렌, 함렡(Hahmlet)
작업 연도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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