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세계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우습게 여기기 시작한 시점을 산업혁명 전후라고 믿는다. 이전까지 어느 정도의 존중을 보이던 인간이 이 시점을 지나면서 동물원을 만들고, 자연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고, 동물을 구경거리로 배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동물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지적 간격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은 산업혁명 이후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17세기 말,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을 정식화하고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저술한 바로 그때부터라는 점이다.
뉴턴의 발견을 말로 풀면 직관적이다.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가속이 일어나고, 그 운동은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 수식을 알면 물체가 언제 어디에 있을지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겉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조용하지만 아주 파격적인 전환이 숨어 있었다. 바로 그 발견 이후 인간들에게는 세계가 예측 가능한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체의 궤적을 계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생각으로 이어졌다. 미래의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 경로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과든, 돌이든, 사람이든, 나아가 사회든—원리를 알면 결국 그 움직임을 이해하고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즉 “세상을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낙관이 인간들 사이에 서서히 자라기 시작했다.
뉴턴이 살았던 17세기의 새들은 지금의 새들보다 인간과의 거리가 훨씬 가까웠다. 그들은 인간을 경계하기보다는 종종 곁을 맴돌며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그 지역 과수원에 살던 로빈과 블랙버드들 가운데에는 뉴턴 곁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을 지켜본 새도 있었고, 창가에 놓인 두꺼운 책장을 훑어본 새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새들은 뉴턴의 직관을 동물 세계에 전달하거나 뉴턴처럼 기호와 수식으로 정리해 체계로 남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침묵이 상징적으로 동물 세계를 수 세기 뒤처지게 만들었다고 동물 역사가들은 말한다.
동물들의 지성사를 500년 뒤쳐지게 만든 새, 로빈
개인적으로 아이작 뉴턴은 평소 지나친 낙관을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인간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식의 표현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틀은 이후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전염처럼 퍼져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세상의 물질과 현상에는 궤적이 있으며, 그 궤적은 알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만약 그 원칙이 쉽게 드러나지 않으면, 더 세밀하게 쪼개고 분석해서라도 그 질서를 찾아내려 했다.
먼저 에드먼드 핼리는 과거 혜성 관측 기록을 모아 비교한 끝에, 서로 다른 시대에 나타난 혜성이 사실은 동일한 천체임을 밝혀냈다. 그는 그 혜성이 1758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 예측했고, 실제로 혜성은 돌아왔다. 동물들이 혜성이 나타날 때마다 놀라고 또 놀랄 때,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해 버린 인간들은 “어, 저거 예전에 봤던 그 혜성이네.” 하며 태연하게 지나갔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하늘을 향해 조금 더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인간은 혜성이나 별뿐 아니라 다른 모든 물질을 이해하려고 들었다. 예를 들어 다니엘 베르누이는 물과 공기처럼 흐르는 것들조차 계산하려 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은 낮아지고, 속도가 느리면 압력은 높아진다. 그렇게 바람의 흐름 안에서도 에너지는 보존된다라는 식의 관계를 수식으로 정리했다. 바람의 흐름을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사실은 새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안타까운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새들은 매번 날개에 닿는 바람을 감각으로 느끼며 살아왔지만, 실제로 바람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설명을 해보려고 한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번도 날개를 가져본 적인 없는 인간은 바람의 흐름을 계산해 냈고, 그 지식을 축적해 결국 새처럼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칼 린네는 생물을 종·속·과로 나누며 자연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이는 자연과 동물을 처음으로 측정과 정리의 대상으로 삼은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고는 훗날 찰스 다윈에게 이어져, 생명의 변화를 시간의 흐름 위에서 설명하는 이론으로 발전한다. 뉴턴이 물체의 운동을 궤적으로 그렸다면, 다윈은 생명을 진화의 궤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 사실 역시 동물 세계에 큰 충격이었다. 완전히 다른 존재라 믿어왔던 종들이 사실은 서로 연결된 가계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불편하고도 당혹스러운 사실을 인간들이 들추어냈다.
이렇게 뉴턴 이후의 과학자들의 발견은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하나의 공통된 믿음을 강화했다.
“세계에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알 수 있으며, 알 수 있다면 우리가 다룰 수도 있다.”
이 믿음이 조각처럼 쌓이면서 인간의 낙관은 단단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은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의 토대처럼 굳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