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첩보요원들에게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지식을 정리해오라고 주문한 존재는 현세 동물 세계의 오라클, 흰기린이었다.
흰기린은 그 임무를 오랜 시간 인간을 관찰해온 대표적인 첩보요원인 고양이에게 맡겼다. 이에 고양이는 그동안 동물들이 인간 세계에서 수집해온 기록들을 바탕으로,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인간 지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동물들이 집중적으로 수집해온 수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 예술이 왜, 그리고 어떻게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왔는지를 재구성하는 일이었다.
흰기린이 인간의 최근 역사를 다시 정리하려 한 이유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AI의 등장으로 세상이 급격히 어지러워진 지금,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가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준점이 바로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인간사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기린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의 인간사를 되짚으며 하나의 리듬을 발견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들은 낙관을 넘어 팽창으로 나아갔고, 그 뒤에는 필연처럼 갈등이 뒤따랐다. 이후 전쟁과 붕괴, 반성을 거쳐 다시 의미를 재설계하려는 여정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 인간은 다시 한 번 낙관과 팽창 그리고 갈등으로 이어지는 초입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한편, 기린의 진짜 걱정은 인간들이 또다시 이런 굴곡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팽창의 고점이 너무 높아, 인간들이 스스로 다시 의미를 찾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이 리듬 자체가 꺾여버릴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에 고양이를 중심으로 한 동물 첩보원들은 인간들이 즐겁게 쇼츠를 넘기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가장 최근까지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되짚으며 앞으로 닥칠 어려움과 기회가 무엇인지, 지구의 생명에 주어진 의미는 무엇인지 탐색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책, “첩보노트” 를 집필해 나갔다.
* "ai 첩보노트"는 만화 없이 원고만으로 이어집니다. 그동안 콘텐츠를 만들어오면서, 특히 AI가 생기면서 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에 자주 빠졌습니다. 다만, 지금은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를 붙잡고, 여러 방식의 실험 원고를 써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