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아버지 사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들 사자가 걸어 나간 긴 복도의 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흑표범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이유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엄마가 어릴 때부터 품에 안고 책을 읽어줬지. 아마 그 기억이 깊이 새겨졌을 거야.”
아버지 사자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
“나는 저 아이의 운명이 너무 걱정돼. 얼마 전,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저 아이가 추운 산속에서 배가 홀쭉해진 채로 기절하기 직전까지 책을 읽고 있었어. 그 모습은… 동물들 모두가 우러러보는 왕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어.”
아버지 사자의 말에 흑표범은 이번에는 아무 말없이 침묵을 지키며, 복도의 끝을 응시했다.
한편, 젊은 사자는 풀이 죽은 채로 궁전에서 걸어나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버지를 설득은커녕, 제대로 반박도 못한 채 잔소리만 듣고 돌아오게 된 것이 너무 속상했다.
"휴."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쉰 젊은 사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궁전 입구 양옆에 늘어선 고대 조각상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서는 인간 검투사를 압도하고 있는 모습의 ‘선대 할아버지 사자’의 조각상 근처에서 멈추어 서서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각상 뒤쪽을 향해 말했다.
"나 혼자야. 너희들 이제 나와도 돼.”
젊은 사자가 부르자, 사자 형상의 조각상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다람쥐와 독수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뭐라고 하셨어?”
다람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갑자기 책 냄새가 난다며, 공부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하셨어. 아예 혼내실 작정으로 부르신 것 같더라. 게다가 흑표범까지 나타나서 한참이나 잔소리를 늘어놓았어.”
젊은 사자가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흑표범이 거기 있었어?”
다람쥐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 흑표범은 오라클이라서 아버지를 가끔 찾아와 조언을 해주거든.”
그렇게 말하던 젊은 사자는 갑자기 눈빛이 번쩍이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줄 만한 동물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나한테 마침 좋은 생각이 났어."
사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람쥐와 독수리가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사자가 이어 말했다.
"흰 기린을 만나러 가보는 거야.”
“흰 기린? 왜 하필?”
"오라클들 중에서도 고리타분한 흑표범과 달리, 흰 기린은 유연한 사고와 깊은 통찰력을 지녔다고 들었어. 흰 기린이라면 분명 공부와 관련해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거야."
동물 세계에는 질서와 생명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오라클'이 존재하는데, 한 마리는 방금 젊은 사자가 만났던 흑표범이고, 다른 한 마리는 동물 전체의 운명을 예측하는 역할을 하며 많은 동물들에게 신성한 존재로 불리는 흰 기린이다. 사자는 신비롭고 넓은 시야를 가진 흰 기린이라면 분명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독수리, 지금 바로 우리를 흰 기린이 있는 다마라랜드(Damaraland)로 데려다줘.” 3)
사자가 스스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에 들뜬 사지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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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사자의 말로 추측하건대, 어머니 사자는 책을 읽을 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머니 사자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젊은 사자도 어렴풋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 사자를 제외한 부계의 족보가 궁금하다면 <부록: 바바리 사자의 계보>를 참고하자.
2) 오라클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부록: 오라클은 누구인가?>를 참고하자.
3) 다마라랜드(Damaraland)는 아프리카 서남부 나미비아의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곳이다. 붉은색의 화강암 지대로 이루어진 이곳은 마치 화성에 있을 것 같은 척박한 풍경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