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떠난 사자 일행은 북쪽 하늘을 밤새 날아, 다음 날 새벽 악숨 근처 깊은 산속에 도착했다. 그곳의 아침 공기는 얇지만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고, 시메엔산의 봉우리 사이에 숨겨진 아버지 사자의 궁전이 첫 햇살에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산속에 감춰진 아버지의 궁전 앞에 도착한 사자는 조심스레 문을 밀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긴 복도를 따라 발소리를 죽이며 걸은 끝에, 그는 마침내 궁전의 중심, 왕좌가 놓인 메인 홀에 다다랐다.
왕좌 앞에 멈춰 서자, 아버지 사자는 언제나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멜렉(Melek), 왕위를 물려받을 날도 이제 일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구나. 마음의 준비는 잘하고 있지?”
“네.”
젊은 사자가 대답을 마치자, 아버지 사자는 갑자기 허공을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가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곧장 멜렉의 허리춤에 꽂혔다. 그곳엔 얇은 끈에 묶인 책 한 권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버지 사자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멜렉, 허리에 매고 있는 저건 뭐냐? 꼴사납게... ”
“네...”
젊은 사자는 놀라 앞발로 자신의 허리를 더듬었다. 궁 안에 들어올 땐 벗어두려 했던 책을 그대로 허리에 두른 채로 들어온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네가 인간 세상에 관심을 갖고 인간의 도시를 구경하러 다닌다는 제보는 들었는데, 그거보다 열 배는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아버지, 동물들도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젊은 사자가 말을 잇기도 전에, 아버지 사자가 의자의 팔걸이를 쾅하고 내려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또 공부 타령을 하려고 하는구나. 철 좀 들어라 아가야.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공부를 하려는 거냐?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인간의 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한테 맞는 길이 아니야.”
순간 아버지 사자의 왕좌 옆을 밝히고 있던 횃불이 흔들리면서 아버지 사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버지,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지식을 공부해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일부라도 받아들여야 해요. 인간들은 이제 세상을 '제어'하는 방법을 익히며 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다고요.”
" ‘제어'라고? 그래 인간들은 공학을 배우면서 그런 말을 하지. 그럼 말해 보거라. 인간의 지식으로 자신들의 사회를 제어하더냐, 아니면 자연을 제대로 제어하더냐? 자신의 개체 수 하나 조절 못 해서 메뚜기 떼처럼 늘었다 줄기를 반복하고, 자연의 모습은 하나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아버지 사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완벽한 제어를 보려거든 바람을 날개로 받으며 공중에 떠 있는 새를 보아라. 인간들처럼 현란한 수식을 쓰지 않아도 자연의 흐름을 몸으로 체화하면서 조절할 수 있지.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지식이야.”
이때 궁전의 어두운 구석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던 흑표범이 슬며시 걸어 나오더니 아버지 사자의 말을 이어받았다. 흑표범은 아버지 사자에게 동물 세계의 운영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가, 아들 사자가 방문을 하자 둘이 대화할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피해 있었다. 하지만, 두 사자의 대화를 듣다가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동물들이 공부하면 이 세상이 얼마나 괴상해질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게다가 동물들이 공부를 한 번 시작하면, 동물들은 결국 인간과 비슷한 문명을 만들고 성장하고 싶어 하겠죠.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될 거예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 힘들어요.”
젊은 사자가 억울한 듯 자신의 논리를 펼치려다 아버지 사자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두 사자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에 흘렀는데, 한참이 지나자 아버지 사자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못 이기듯 말을 꺼냈다.
“멜렉(Melek), 너는 머지않아 왕이 될 것이다. 그전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한다면, 내가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이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난 아버지 사자는 벽으로 다가가, 그곳에 걸려 있는 로마시대에 살았다는 선대 사자의 전리품 '검투사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칼날을 앞발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1)
"하지만 명심해라. 인간의 지식이 화려해 보이고, 우리 동물들이 밀리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야. 지금 잘 나갈 때 인간들이 한껏 잘난 체하고 우리를 비웃으라고 해라. 자연의 긴 호흡에서 보면 저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에 불과할 뿐이니까.”
“네. 아버지.”
한참을 망설이던 젊은 사자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 짧게 대답한 뒤,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1) 아버지 사자는 과거 동물 세계의 왕위에 오르면서 '자식 교육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라는 새로운 교육 정책을 내세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