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1 대영박물관

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by 스튜던트 비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며, 마음이 이루는 것이다."

- 법구경 -




박물관 직원은 광장을 지나, 사자, 고양이, 그리고 거북이를 실은 손수레를 밀며 유물 보관 창고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갔다. 석상으로 분장한 동물들은 정지 상태를 유지하며, 직원 그리고 CCTV의 눈을 완벽하게 속였다. 그리고 마침내 유물 보관 창고 앞에 도착한 직원은 전자식 ID카드를 이용해 창고의 문을 열고, 사자와 고양이를 실은 손수레를 안으로 밀어 두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문이 닫히고 창고 건물 안에 동물들만 남자, 헤드셋을 통해 너구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우가 CCTV 해킹에 성공해서 미리 녹화해 놓은 화면을 송출하기 시작했어. 이제 인간들은 CCTV로는 너희를 볼 수 없으니 안심하고 수색을 시작해.”


동물들이 '창고'라고 부르는 이곳은 유물 보존 연구소였다. 곳곳에 유물을 보존 처리하기 위한 기자재와 연구용 책상들이 놓여 있었고, 널찍한 홀 중앙에는 보수가 필요한 유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중에는 고대 문자가 빼곡히 적혀있는 석판 그리고 돌로 된 사자 형상의 석상이 있었고, 1) 홀 저편 끝으로는 오래된 책들이 가득히 꽂혀있는 서가가 보였다.


사자, 고양이, 거북이는 각자 흩어져 타깃을 찾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있어 거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는 역시 내 손바닥 안이야. 타깃을 찾았다."


사자와 고양이는 소리가 들린 서가의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가니, 거북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 버니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버니를 발견한 고양이는 즉시 본부로 무전을 보냈다.


"본부, 이제 15분 내로 이곳을 빠져나간다. 정문에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을 대기시켜라.”


그리고 이때, 사자가 울고 있는 버니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버니, 이제 울음을 그쳐. 우리가 널 데리러 왔으니까."


하지만 사자의 말에도 버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울지 말래도!"


이번에는 거북이가 재촉하듯 말하자, 버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는 책에서 궁극의 자세를 보았어. 그 자세는... 우리 동물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자세였어."


버니의 말에 고양이가 거북이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좌절스러운 소식에 순간 짧은 적막이 흘렀지만, 사자는 개의치 않고 버니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지금은 여기를 빠져나가는데 집중하고, 그 '궁극의 자세'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사자가 버니를 일으켜 세우려 할 때에, 어딘가에서 철커덕하고 전자기계가 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사자와 고양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살피는 사이, 무전으로 여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저 보안장치가 갑자기 가동됐어! 빨리 창고를 빠져나가야 해!"


"보안장치는 밤에만 가동한다며!"


"모르겠어. CCTV가 제대로 해킹이 안 된 모양이야!"


"뭐?" 거북이가 화난 목소리로 외치자, 사자가 거북이를 제지하더니, 출구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서가 끝에 위치한 창문을 발견했지만, 쇠창살로 막혀있었다. 사자가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고양이는 넓은 홀 쪽으로 가 허공에 백색 가루를 뿌렸다. 그러자 가루가 공기 중에 퍼지면서, 입구부터 동물들이 있는 곳 약 10 미터에 이르는 거리까지 촘촘하게 가동된 레이저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레이저를 육안으로 본 동물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박물관 밖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독수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려왔다.


"외부에서 비상 알람을 받았는지 경찰 인력들이 박물관 쪽으로 이동 중이야! 시간이 별로 없어, 빨리 움직여!"


사자는 잠시 자리에서 서성거리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양이가 가진 백색 가루가 담긴 파우치를 뺏어 들고, 남아 있는 가루를 허공에 몽땅 뿌리면서 말했다.


"여우, 지금 당장 입구의 자동문을 열어 놓아."


사자가 말하자, 무전 너머로 여우가 당황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사자 잠깐! 레이저를 뚫고 나가는 건 안돼! 감지되는 순간 비상벨이 울릴 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문이 다시 강제로 닫힐 거야."


"알았으니까, 그냥 열어 놓아!"


여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자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리고, 고양이와 버니를 양팔로 안고 거북이를 꼬리고 감더니 서가 끝까지 갔다. 그런 다음 돌아서서 한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입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레이저로 가로막힌 지점을 향해 과감히 뛰어들 결심을 한 것이다.


레이저가 가로막은 지점까지 뛰어간 사자는 한 손에는 버니, 다른 손에는 고양이를 낚아채더니 도약하여 허공을 가르며 레이저 속으로 날아들었다.


‘크로우 자세’ , ‘나무 자세’, ‘워리어 자세’...


사자는 그동안 배운 요가 자세를 하나씩 떠올리며, 마치 무용을 하듯 몸을 유연하게 비틀며 레이저를 피해 통과했다. 하지만, 절묘한 자세를 보이며 앞으로 날아가는 것도 잠시, 그 어떤 동물도 통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모양의 구간을 맞닥뜨렸다.


그 순간, 사자는 허리를 세우고 다리를 모아 앉는 자세를 취해 마지막 구간을 향해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레이저가 만든 틈을 위해 설계된 조각상처럼 정확한 실루엣이었다. 그리고 레이저에 닿을 것만 같은 지점까지 날아갔을 때, CCTV 화면으로 숨 막히는 장면을 지켜보던 너구리는 순간 눈을 가렸고, 다람쥐와 여우는 두 앞발로 머리를 잡았다.


"엄마야!"


버니가 두 눈을 가리며 "엄마야!"를 외친 순간, 짧은 찰나에 머릿속에 번뜩 무언가 스친 사자는 무의식적으로 거북이를 감고 있던 꼬리를 확 잡아채, 레이저에 닿기 직전의 찰나를 피해 빠져나갔다.


이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던 동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 사자가 취한 자세는 동물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책상다리' 포즈였는데, 동물들은 사자가 순간적으로 보여준 그 낯선 자세가 바로 기린과 흑표범이 말하는 '궁극의 자세'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2)


사자는 그렇게 신기하고 기묘한 몸동작으로 10 미터를 날아 입구를 통과했고, 자동문 반대편에 있는 복도 벽에 부딪히더니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1) 크니도스의 사자상과 로제타 스톤은 대영박물관의 대표적 유물들이다. 박물관에서 두 유물들의 상태 점검을 위해 창고 안으로 들인 것으로 보인다.


2) 요가를 수행하는 자들은 이 자세를 '달인자세'라고 부른다. 인간들은 '달인자세'를 쉽게 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고관절 구조상 이 자세를 쉽게 취할 수 없다. <부록: 궁극의 자세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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