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수치를 절제한다면
‘쪽팔림’이 감정들 중 가장 괴롭습니다. 쪽팔림은 열등감에서 기인하고 열등감은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성과를 삶의 중요한 지표로 삼던 시절, 인생을 다시 살고 싶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꿈꿨던 직업, 지원했던 회사, 도전했던 사업, 원고 투고까지 선택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아,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는 도저히 창피해서 계속해서 살 수가 없었지요. 게임이라면 바닥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두 번째, 세 번째 목숨을 살아볼 테지만, 실제 인생에선 그럴 수 없으니, 이 쪽팔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름 마음을 굳게 먹고살고 나 자신을 파악도 잘하고 자존감도 높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열등감, 죄책감, 피해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측면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정반대의 면을 동시에 갖고 있기 마련이니, 그렇겠죠. 아무튼 뻔뻔함 이면에 수줍음을, 거침없는 솔직한 표현 이면에 불안을, 당당한 자기 확신 이면에 죄책감을 갖고서 일상을, 일생을 살아갑니다. 뭔가 모르게 부끄럽고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쪽팔리는 감정들을 감내하며 삽니다. 다들 멋지게들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연약하고 어찌할 바 모르겠는 부끄러움을 감싸 쥐고 살아가겠죠.
죽음에 관한 우화집 <주머니 인간>에 수록된 ‘수치 절제술’을 쓰며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벌거벗겨져 세상에 내던져 태어날 때부터 무척 부끄러웠을 거란 상상을 했지요.
인간은 태어날 때 부끄러웠다. 너무나 수줍어서 눈을 맞추기도 고개를 가누기도 힘들었다. 그저 악을 쓰고 울어댈 수밖에 없었다. 태어날 때 부끄러웠다는 기억을 인간들은 가장 먼저 잊었지만 부끄러움은 늘 거기 있었다. 축축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그곳, 바로 혀 아래다. 부끄러움이 터져 나올 때 혀 아래를 지그시 누르면 새콤한 신맛이 감돌았다. 그 맛을 느끼며 여전히 거기 있구나, 했다. 연약한 부끄러움은 능란한 입술과 단호한 이의 보호를 받으며 때때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주머니 인간> _ 수치절제술 中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성과를 이루는 데 하등 도움 될 게 없으니, 수치를 제거한다면 어떨까?
인간을 한없이 연약하게 만드는 수치, 그게 없다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머뭇거릴 거 없이 빳빳해질수록 수줍음, 부끄러움, 수치스러움이 어쩐지 더 끔찍하고 귀엽고 애틋해지는 듯합니다. 속으로 ‘아, 내가 왜 그랬지’ 하지만, 안 그런 척 입을 꾹 다물로 혀를 턱 쪽으로 꾹 누르며 부끄러움을 감내하던 그 느낌이 어쩐지 소중하게 느껴지죠. 누군가 실수나 잘못을 하고 나서 부끄러워하기만 하면 그 실수가 뭐든 용서가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건 그 괴롭고 끔찍하고 아찔한 감정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견디고 있다면, 혀 아래를 지그시 누르며 신맛을 천천히 음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