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지 Jun 11. 2024

왜 열심히 하면 망할까

‘버려진 열심들'에 관하여

성공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데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망해버리는 걸까요?


유명한 작가들이 글쓰기도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일정 시간 앉아 무조건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해봤지만, 말처럼 되지 않더군요. 자리에 딱 앉아서 '오늘 한번 제대도 써보겠어!' 외치고, 열심히 하려 할수록 글이든 그림이든 완전히 망해버리는 겁니다. 결국 모두 삭제해 버리고, 열심이었던 시간들은 별 의미 없는 고문이 되어 버리죠.


사실 생각해 보면 많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면, 오히려 미칠 듯이 먹고 싶은 마음에 폭식을 하고, 그 괴로운 운동도 너무 하기 싫어집니다. 사랑도, 공부도, 운동도, 일도 뭔가 애쓸수록 잘 안 되죠. 열심이라는 것 자체가 별 볼 일 없는 지금의 나를 미워하고, 고통스러운 지금을 견뎌내고 잘 해내서, 목표를 이루고, 인정받고, 보상받으려는 마음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잘 발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열심’과 ‘애씀’을 내려놓고 잘하려는 마음 없이 하면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업을 할 때,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숨을 죽이고 무엇도 하지 않는 마음이 감돌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야 진짜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그대로 담을 수 있거든요.


도가의 노장사상에서 주요 개념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함 없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개념인데요.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고, 목표하는 바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상태 그대로 있는 ‘무위’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위의 반대말인 인위, 작위를 생각하면 감이 오시겠지요. 오래전 공부한 거라 정확히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함 없이 한다’는 그 무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아주 애를 쓴답니다.


무위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미디어에선 인위와 작위로 성취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뭔가를 얻으려는 거 없이,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술 한잔 하고, 아니면 그냥 늘어지게 멍 때리기,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마음을 갈고닦아야 누릴 수 있습니다. 시간 낭비는 현대사회에선 죄악시되니까요.

얻을거 없이 그냥 책읽기


한참을 하고자 함 없이 시간을 낭비하다가, 그럴듯하게 그리려는 마음 없이 그려야 하는 겁니다. 잘 그리려고 하면 손가락이 굳고 머리는 괴로움에 일시정지되거든요. 일단 그냥 막, 대충, 휘갈깁니다.

잘 그리려는 마음 없이 막 그리기



그래도 ‘열심’의 마음들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열심들은 얼마나 애쓰고 애타고 애달픈 마음인가요.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얼마나 애처로운 존재들인 걸까요. 나의 뜨거운 심장을 꺼내어 세상을 밝히고 데우고, 조금씩 식은 열심들을 다시 가슴에 담아 살아가다, 다시 열심을 태우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올해 출간한 우화집 <주머니 인간>에 수록된 이야기 ‘버려진 열심들’ 일부를 여기에 싣습니다. 열심히 살 도리 밖에 없어서, 나의 열심을 태우지 않는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시뻘건 계곡물이 쏟아져 내렸다. 붉은 물은 마을 곳곳으로 흘러내려 어떤 곳엔 웅덩이를 또 어떤 곳엔 연못을 이루었다. 크고 작은 붉은 쟁반들이 햇빛에 반사돼 마을을 물들였다. 핏빛이 주는 불길한 느낌에 보다 못한 사람들이 수원지를 찾아 계곡에 올랐다. 도착한 곳엔 거대한 석산이 서 있었다. 석산의 정체는 버려진 열심熱心들의 무덤. 거기에 사용을 다한 열심들이 응고된 채 엉겨 붙어 있었다.


열심들의 석산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차가운 밤, 외로운 밤, 그래서 우는 밤 때문이었다. 온 마을이 밤마다 울어대는 통에 사람들은 견딜 수가 없었다. 울면서 우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모두가 그랬다. 밤을 없애야 했다. 마을 중앙에 밤을 밝힐 거대한 화로가 들어섰다. 화로의 아랫부분은 칸칸이 나뉘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매일 가슴팍에서 열심을 꺼내 자기 이름이 적힌 칸에 넣었다. 한데 모인 열심들은 탁, 타다닥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이렇게 사용된 열심들은 조금씩 식은 채 다시 제 주인에게 돌아갔다.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것들은 한곳에 모아져 마을 끝자락에 버려졌다. 물기가 모두 증발해 딱딱하게 응고된 열심들이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쌓여갔다. …


- <주머니 인간>, 이현지, 2024, 달아실출판사

버려진 열심들, 이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