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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Sep 26. 2021

에어컨을 사다

집콕 생존을 위한 선택

벌써 가을이 왔다.

신기하게도 처서가 지나니 후텁지근했던 날씨에도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은 더웠다. 작년 름은 그래도 버틸만해서 에어컨 없이 여름 났는데, 수술 후 집에서 쉬는 기간이 길어진 데다가 재택근무 또한 늘어나 폭염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에어컨은 설치, 해체가 번거로워 이사 갈 때 부담이 되어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올해는 대안을 찾았다.

윈도우핏 에어컨. 직접 설치도 가능하다.

윈도핏 에어컨이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구매 전에는 과연 제 성능을 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역시 에어컨은 에어컨이었다. 소리가 다소 큰 편이나 크게 신경 쓰일 도는 아니고, 서큘레이터와 함께 사용하니 습도와 온도를 잡아주어 확실히 집이 쾌적해졌다. 비록 방 하나만 시원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지... 전기세는 1달 기준 2만 원 이내로 나왔다.


복도식 아파트라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은 복도 쪽 창문뿐이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할 듯하여 따로 에어컨 바람막이를 사서 케이블 타이로 고정했다.

원래는 복도에 사람이 지나다니면 신경이 쓰여서 잘 사용하지 않던 방이었는데, 에어컨 설치 후 낮에는 노트북과 함께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5천 원짜리 종이 블라인드로 창문을 막고 작은 책상을 펴 두었다. 덕분에 거실에 있는 32인치 모니터와 데스크톱은 여름 내 전원조차 켜지 못했다. 체력이 안되어 모니터를 옮기는 것도 무리여서 조그마한 태블릿 화면으로 버텼다. 덥지만 큰 화면과 편한 책상과 의자 vs 시원하지만 좁고 불편한 환경 중에 선택해야 했다.

재택환경이 극단적이다. 마치 중간이 없는 내 여름처럼.

어쩐지 중간이 없다.

올해 내 여름은 전체적으로 그랬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 했는데, 췌장 수술로 이렇게까지 엎어질 줄은 몰랐다. 사실 수술이 처음이라 수술하고 한 두 달 있으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까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산만한 경주마처럼 뭐든지 잘하려고 방향성 없이 저돌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지칠 때마다 집중도 휴식도 못하면서 불안해하기만 해왔다. (어중간한 내 학업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걷지도 못하면서 놓지도 못하고 억지로 달리는 척, 버티는 것. 어쩌면 나는 이제껏 선생님들이나 부모님께 이런 모습을 칭찬받아왔다. 뭐든 힘들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금방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응급실처럼 살 순 없다. 지금은 회사에 복귀했지만, 또다시 나도 모르게 무리하게 된다. 다행히 주변의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도와주고 계시지만, 뭐든 예전처럼 해 낼 수는 없다.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어차피 이런다고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을 버텨내려면 뭔가 변화가 필요한 때가 왔다. 중간을 찾아야 한다. 더웠다 추웠다 하는 환절기를 지나, 적당히 시원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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