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장사가 안돼서 망한 거지, 뭐.

by 재민

그냥 장사가 안돼서 망한 거지, 뭐. 나는 친구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난 10월 말. 유일한 조부모였던 외할머니가 세상을 뒤로하고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갔을 때 나는 책을 만들었다. 실패 이야기를 모았다고 해서 제목도 『실패기록집』이라고 지었다. 외할머니 장례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당시 살던 서울 집으로 올라가 인쇄소에서 문 앞에 두고 간 핑크색 책 400권을 집 안으로 옮겼다. 조금이라도 제작비를 아끼려고 400부나 뽑은 게 금방 후회됐다. 그리고 한동안 외할머니를 잃은 것 같이, 이 책을 향한 관심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팔아야지, 하는 마음에 독립 서점 서른 곳 정도 이메일을 보냈다. 그중에는 바로 연락이 닿은 서점도 있었지만, 사실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 서점이 더 많다. 그 이야기는 이 책을 이메일로 소개했을 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이미 책은 인쇄되었는데.



3개월 동안 이 핑크색 책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던 책은 항상 시야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아주 묘하게 책이 못생겼다고 판단했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책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망한 것이다. 그러면 장사가 안되고, 안되면 책은 망한 것이다. 아직 집에 274권이나 남아있는데, 어쩌지.



만약에 표지가 눈길을 끌지 못해서 입고 되지 못하고, 팔리지 않는 것이라면, 표지를 바꿔야겠다. 얼마 전 봐두었던 푸른색 그림과 연분홍색을 가지고 요리조리 책 표지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이전 디자인은 그래픽적인 요소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자기계발서처럼 읽힐 수 있다는 판단에 그림을 넣었고, 기존 진한 분홍색의 표지에 새 표지를 덫 씌었을 때 티가 많이 나지 않도록 연분홍색 바탕을 만들었다. 가독성이 좋은 폰트보다 형태가 아름다운 폰트를 사용하고, 책 판형이 작은 만큼 간결하게 텍스트를 배치했다. 고작 새로운 표지 대안 한 개를 만들었다.



얼마 전 릴스를 보다가 봉준호 감독님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모를 땐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그래, 어차피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은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책을 만들자. 그냥 장사가 안되면 망하는 거고, 뭐. 내일 시간이 된다면 대안을 하나 더 만들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