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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경 May 09. 2021

나는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삶

바쁘다고 타령하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지만, 지난 한 주는 정말 바빴다.


심플스텝스의 4주년 이벤트를 향해 달리는 일주일 동안 미팅과 워크숍과 클럽하우스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슬랙과 이메일이 주렁주렁.


할 일 목록은 어깨에 매달려 있는 걸까요, 왜 어깨가 아픈가요?  


낮에는 애들이랑 놀고, 오후엔 가벼운 미팅을 한두 개 하고, 저녁 7시에는 본격 출근을 하는 것이 나의 삶의 균형. 지난주에는 그것이 와장창 깨어졌다.

삶의 시간을 도려내어 자꾸 일에 퍼주다 보니 가장 어려운 것은 먹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아이에게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는 것이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에게 인스턴트 음식을 연달아 먹이면 팔다리를 벅벅 긁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난주엔 인스턴트 음식을 세 번이나 먹였다. 마음 한 켠에는 죄책감을 안고, 제발 먹고 오늘 밤에 가렵다 하지 말길 바라면서.


그럴 때면 발 밑이 푹 꺼진다.
이게 뭐야  
제대로 되는 게 없잖아
완전히 망쳤어
그동안 애써 잘 챙겨 먹인 게 다 허사가 될 거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주에 스트레스 관리 강연을 한 것이랄까. 강연 내용을 스스로 곱씹으며, 죄책감과 불안감이 치고 올라올 때에는 조용히 말해본다. "이건 지금 나 자신이 '뭔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야. 전부 망쳤기 때문이 아니야."


그것이 스트레스의 본질
나는 지금 상황을 느끼는 것뿐이다
죄책감이 좀 든다고 해서 내가 엄마 노릇을 망친 것이 아니다


그럴 땐 빨리 상황을 고쳐야 한다  요리할 시간은 없으니까 야채를 썬다. 상추, 오이, 당근, 토마토, 파프리카를 색색깔로 접시에 담으면서 반대의 신호를 보내본다. "이것 봐 알록달록 야채가 있지? 이 정도면 괜찮아."

인스턴트 맥앤치즈 옆에 샐러드를 담는 것으로 죄책감을 지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접시 위의 야채. 국은 못 끓여도, 고기는 못 구워도, 야채를 썰어 담아놓으면 '그래도 아직 완전히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라는 위안을 준다.


이것을 해내면 물을 한 잔 더 마실 수 있고, 잊지 않고 산책을 할 수 있고, 최소의 수면을 유지할 수 있다.


파프리카와 오이가 올라있는 접시는 삶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 같은 절망에 빠지지 않게 나를 붙들어준다. 빼먹지 않고 지키는 바깥놀이 시간은 해준 것 없어도 내가 괜찮은 엄마라는 자긍심을 불어넣어준다. 5분의 스트레칭은 일이 많아도 내가 파묻히고 있다는 생각을 막아주고, 끝내지 못한 일은 잠시 덮고 잠자리에 들면 내일 다시 일어나 일할 수 있다.


이제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시 발 밑이 단단해진다. 딛고 일어서 앞을 본다. 개키지 못한 빨래와 밥솥 안에 말라가는 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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