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는 대중의 관심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해 대중의 관심이 쏠린다면, 과연 해당 업장은 매출이 늘어날까?
글쎄,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도’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 이건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의 ‘모수’ 같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런 업장에선 10명의 일반 소비자보다, ‘충분한 소비’를 할 여유와 안목이 있는 한 명의 미식가가 더 수익에 도움이 된다.
일반인들이 입을 쩍 벌릴 가격에도 불구하고, 파인다이닝은 수익을 내기 매우 어렵다. 인건비, 재료비, 임대료 등 들어갈 돈은 많은데 회전율이 극악으로 낮은 탓이다. 30만 원짜리 코스 1명에게 파는 것보다 2만 원짜리 삼겹살을 5명에게 파는 게 훨씬 수익률이 높다는 거다.*
*게다가 고깃집 가서 1인분만 먹지도 않으니
이때 파인다이닝이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식은 주류 판매다. 고급 와인에 높은 마진을 책정해서 파는 것이다. 한 예로 내가 좋아한 파리의 원스타 해산물 다이닝 디너 코스는 80유로였는데, 페어링 와인 4잔이 90유로였다.
“밥값보다 술값이 더나오겠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 맞다. 미슐랭 같은 파인 다이닝, 하이 퀄리티를 추구하는 식당에선 원래 술값이 더 나와야 정상이다.
미슐랭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선 식전, 식중, 식후를 나눠 술을 여러 종류 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심지어 일반적인 식당에서도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하면 “Wine or Beer?”라고 물어본다.
파스타집이니까 파스타만 먹는 사람은, 굳이 비유하자면 막걸릿집에서 모둠전만 먹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좀 구격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수익 모델이 한국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5천 원 소주에 길들여진 대중들은 한병 10만 원 하는 와인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선 파인다이닝과 일반 식당 사이의 ‘비-스트로’는 와인바가 채우고 있다.
혹은 일반 식당에 ‘1인 1 주류 주문 필수’와 같은 코멘트가 달려있기도 하지만, 저런 안내문에 볼멘소리를 내는 소비층 (‘아니 저는 술 못 먹는 데요? 알코올 분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건가요?’)을 의식해서 굳이 무슨무슨 ‘바’를 붙여 불만을 원천차단하는 네이밍 트렌드가 도드라진다. 속 편해 보이긴 한다. 바에서 술을 시키는 건 당연하니까... 와인바, 하이볼바, 파스타바, 사케바... 당황스럽지만 ‘스시바’도 있었다.
한국도 이제 파인다이닝 문화가 꽤나 메인스트림에 올라왔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해외여행 경험을 통해 프렌치 식문화를 대중들이 점차 받아들이고는 있다. 그 덕에 하이퀄리티를 추구하는 셰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가고는 있지만, 아직 인식은 맞춰지지 못했다.
‘좋은 날’에 ‘좋은 식당’에 가는 것이 꽤나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은 술값은 10만 원을 넘기기 꺼려한다. 비록 20만 원짜리 코스를 예약했더라도 말이다. 솔직히 나조차도 그렇다. 3만 원짜리 파스타는 먹겠는데, 글라스 한 잔 2만 원 와인에는 손이 안 간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이미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시절부터 익혀온 ‘소주 3천 원’이 (요즘은 7천 원이지만) 뼛속까지 박혀 버린 탓이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대에 한정된 인원만 수용 가능한 오프라인 식당에서, ‘기념일을 맞아 요즘 유명하다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처음 예약한 일반인(뉴비)‘을 받는 일은 수익률 측면에서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만일 그 식당이 어지간하면 예약이 꽉 차있는 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은 술에 충분한 가격을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되는 사람(고인 물)을 받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이다.
한 심야 식당 운영하시는 분께서 남기신 말이다.
‘노-쇼(No Show) 보다 무섭다는 노-드링크(No-Drink).’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파인다이닝을 제외한 대다수의 외식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회전율이고, 시장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현상이 바로 배달이다. 예술에 준하는 최상급 요리를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어 하는 셰프들이 자꾸 세컨드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도, 웃기지만 유명 스시야 헤드가 광어회 필렛을 팔고 있고 이탈리안 셰프가 밀키트 광고를 하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명검을 더욱 예리하게 벼리는 일보다 자잘한 칼 여러 개를 파는 게 돈이 되는 세상에선, 예술적 완성도보다 안정적인 수익률과 광범위한 시장 확장성이 자본의 선택을 받는다.
아마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백수저 셰프들 또한 현 업장의 매출 증진을 기대하고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방송 출연은 다른 다이닝 업장을 추가로 내거나, 자기 얼굴을 박은 밀키트를 만들거나, 대중적인 세컨드 브랜드를 출시할 때 도움이 될 뿐이다.
최고급은 자본 시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의 ‘모수’는 모기업의 지원이 끊기고 폐업했고 (재오픈할 예정), 2016년 미슐랭 서울 가이드부터 꾸준히 3 스타를 유지한 엄청난 이력의 ‘가온’은 2022년을 끝으로 완전 자본 잠식 상태로 문을 닫았다.
여담이지만 로컬의 병원 산업, 피부과나 치과 또한 그렇다. 저품질 진료와 높은 회전율. 게다가 환자는 진료의 퀄리티를 알 턱이 없으니 자본의 선택은 당연히 빠르고 공을 덜 들인 진료다. 저품질 진료를 비정상적으로 싸게 덤핑 하는 치과의 매출이 매우 높다. 좋은 진료를 2명 할 시간에 저퀄리티 진료로 5명 해치우는 것이 나으니 마케팅 전쟁으로만 치닿는 것이다.
현대 소비 지상주의의 주체는 이제 마니아 혹은 특권층이 아니라 대중이다. 이제 나도 그걸 이해하고 있고, 짜치는 게 승승장구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 대신 어느 정도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을 길렀다.
선악으로 세상을 나누려들기보다 나름의 밸런스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다만 무언가를 숫자로 환산하려 애쓰는 인간보다, 무엇에 진심이라 몰두할 줄 아는 인간이 더 행복하며 빛난다는 걸 알 뿐이다. 그거면 됐다. 그걸 알아봐 주면 한 명이 있으면 그걸로 됐다.
지인들이 하도 보라고 난리여서 <흑백요리사> 몇 편을 보다 보니, 내가 한 때 찾았던 식당이 꽤나 많이 나왔다 - 대체로 흑수저 쪽이긴 했지만. 야키토리 묵을 좋아했고, 윤서울은 미슐랭을 받기 전(디너 무려 6만 원 시절이다) 두세 번 갔었다. 이제 방송 이후 전부 예약조차 힘들어진 것 같다. 그중 최강록 씨 식당을 가장 좋아했다.
최강록 씨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 2>의 우승자 출신이다. 담담히 요리를 하다가 말을 할 땐 뚝딱거리고, 또다시 덤덤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좋아서 여러 차례 방송을 돌려봤었다. 한 에피소드에서 최강록 도전자에게 심사위원인 김소희 셰프와 노희영 씨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많은 가다랑어포 들어가서 그 돈 얼마 받겠어요....
최강록 씨는 물건을 팔 때에 재료를 전부 사진을 찍어놔. 요리 그림 뒤에 재료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손님들한테 인식을 시켜줘야 알지.
그 음식만 먹고는 과정을 생각하기가 힘이 들어요.”
“최강록 씨의 요리는 오만한 요리예요. 순수한 원재료의 맛을 살리려고 애쓴 요리, 사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와닿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요?‘
사업 수완이라곤 느껴지지 않고 요리에만 진심이라 가끔은 답답해 보이기까지 한 최강록 셰프가, 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그의 식당이 좋았다. 인테리어에는 ‘킥’이 없고, 사진 찍을 맛도 안 나고, 멋들어진 설명도 하지 못하는 그 - 요리 외엔 다 어설픈 느낌.
그가 다시 차린 ‘식당 네오’가 막 오픈했을 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블로그 리뷰가 달렸던 걸 기억한다. ‘주류 주문 필수’이고,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음식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퀄리티에 비해 예약이 꽤나 여유로웠던 적도 있었는데 <흑백 요리사> 이후 한 달이 꽉 차 있다. 그래도 아마 몇 달 안에 다시 사그라들거라 생각한다.
내가 예약할 수 있을 정도로만, 조금만 덜 인기 있었으면 좋겠다. 유명세에 휩쓸린 스타 셰프보단 골방에서 홀로 방망이 깎는 노인, 어째 나는 그런 게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