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어느 예민한 날에

사소한 분노

by 이원장


몇 년간 부정해 왔지만 사실로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 나는 예민하고, 좋게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그래도 이만큼은 해야지’의 기준이 높은 것*이다. 좋은 식당을 가거나, 옷을 보러 다니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다 못해 일기장에 글을 써도 어느 정도는 해줘야한다는 최소 선이 있다.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긴 하다. 느긋할 땐 또 주변 속 터질 정도로 느긋하다



이 선을 가끔 사회적 선()으로 착각하기도 하여, 그 틀을 남에게도 빡빡하게 끼우려 할 때도 있다. 두 발 더 나아가 이를 벗어난 결과물을 보면 속으로 참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지레 인성까지 확장해 판단해 버리곤 하는 것이다. 음식을 잘 못하는 식당을 경험하면 ‘주방장 참 직업의식이 없네…’ 한다던가. 혹은 감각이 좀 없고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 쪽에서 인성이 모자란 건 확실한 것 같다.



남들과 일을 할 때는 오죽할까. 밥을 먹을 때보다 밥을 할 때 신경이 곤두서는 스타일이란 걸, 나도 근 몇 년 일을 해보고서 깨달았다. 화살의 방향은 주로 소비자보단 근로자에게 향한다. 볼멘소리 많이 하는 환자를 응대할 땐 ‘나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이것까지가 일이다’ 고 넘겨버리는 편인데, 예약이 엉망으로 잡혀 있거나 진료 진행이 원활히 안 돌아가면 직원들을 보며 ‘돈 받고 하는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하고 있지?’ 하는 것이다.




페이 닥터로서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 어딜 가나 거슬리는 점을 하나씩 찾게 된다. 기본을 안 지키는 기공소 보철물, 환자는 절대 모를 싸구려 재료, 중요 과정을 스킵하는 진료 시스템, 닳고 무뎌져 불편한 기구와 장비들.


요즘엔 전임자가 엉터리로 해놓은 진료를 보며 열불을 내고 있다. 나름 십 년쯤 된 병원이라, 초기엔 드러나지 않던 문제가 하나둘 씩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3년 전 원장님이 엉터리로 해서 지금 아프신 거니까 그 원장님 찾아가세요’가 구강저까지 올라온다. 다만 내가 정작 하고 있는 건 온갖 언변으로 환자를 구슬리고 스토리를 만들어 변명하고서- 이럴 때 쓰라고 글쓰기를 해온 것이 아닌데 - 한숨을 푹 내쉬며 다 뜯어내고 처음부터 새로 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진료는 품이 두 배로 든다.



**

보철 올리러 왔더니 엉망진창으로 심긴 Fixture, GP cone과 우식 위로 덕지덕지 올려놓은 코어, 세팅하려고 왔더니 엉터리로 해놓은 프렙 … 이런 것들이 모여 아까 3년 전에 엉터리로 해놔서 이제 아프기 시작한 아픈 진료가 된다. 그냥 이대로 마무리할까, 내가 한 것도 아니잖아, 지금 일 너무 많잖아, 이거 새로 한다고 환자는 안 알아주잖아 - 이미 지친 눈동자와 수년간 뻐근한 허리가 속살거리다가도 나는 어느새 체어를 일으켜 한번만 더 힘내보자고 쓸데없이 환자를 설득하고 있다.

**




어째서 남이 저질러 놓은 일에 환자도 술자도 아닌 내가 스트레스받고 있으며, 책임질 놈은 따로 있는데 왜 볼멘소리는 내가 들어가며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제가 조금만 손 보고 더 잘해드릴게요 -‘ 둘러대고 있는지. 한숨 쉬며 #2 라운드버로 갈아내는 순간에 분노는 쌓여가고, 별 거 아닌 직원의 잘못에도 까다롭게 굴며 화를 풀고 있는 진료실의 나 자신을 회상하며 퇴근길에 나는 또 괴로워하는 것이다.



.

.

.

.

.




한 달 하고 조금 더 전, 10월 막바지의 어느 날, 개인적인 외부 상황과 병원에 쌓인 실망이 더해져 예민하게 잔뜩 벼려져 있던 시기였다. 생각 없이 잡힌 진료 스케줄, 다시 뜯어내고 재신경치료를 시작한 전치부 프렙, 열 번쯤 얘기했는데도 방치되어 있는 핸드피스. 이 기구만 쓰니까 다른 건 괜찮으니 이것만 준비해 달라 얘기했는데 또 그것만 빼고 준비되어 있는 수술상을 보고, 수술하다 마음에 안 들면 기구를 집어던졌다는 선배 원장님들의 말을 곱씹으며 이렇게 몇 달하다간 나도 그러고 있겠다 싶던 하루. 어설픈 어시스트에 심통이 올라오려던 차에 밖에서 고상하면서도 친근한 음악이 들리는 것이었다.



‘따라 다라 다라 - 따라 다, 라 다 라-‘



익숙한 멜로디를 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니,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다. 하필 10월의 어느 지친 날에, 감미롭게. 내 친구 결혼식에 걔네 누님이 이걸로 플루트 축주를 했었는데, 10월이라고 누가 이런 벨소리를 해뒀나 보네 - 그냥 그런 생각이 들다가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준비가 좀 덜 되어있다고 내려던 신경질도 풀렸다. 진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겨우 이런 거로 풀릴 심통이었으면 뭐가 그리 중하다고 날을 세웠는가 싶었다.



나는 음률에 가사를 붙여 흥얼거리며 반성했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이 가득한 걸...’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 벨소리가 아니라 중앙에 있는 병원 CT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같은 자리에서 수십 번은 나왔을 그 멜로디를 여유 없는 마음에 한참이 지나서도 귀에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 수백 번 스쳐 지나간 멜로디는 몇 달이 지나 우연찮게 내 귀에 잡혀, 정말 어처구니없이 예민함을 녹여냈다. 이러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니다.


예민함, 이 사소한 분노라는 것은.



그러고 보면 ‘예민함’이란 정말 작디작은 분노를 쓸데없이 세련되게 표현해 놓은 말인 것이다. 우리는 정작 분노해야 할 것엔 눈치를 보며 삭히고 있다가, 본질과 벗어난 쪼잔한 분노엔 ‘나 예민해’를 핑계 삼아 온몸에 무형의 가시를 두르는 게 아닐지. 우리는 그렇게 언어 대신 공기로 감정을 발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민함은, 혹은 그러한 상황은, 사소한 사랑으로 해결이 된다. 쉽게 말하자면 귀여움 같은 거. 수십 명의 진상 환자를 쌓은 후 들어온 볼때기 둥그스름한 소아 환자의 미소가 내 마음을 녹일 때처럼.






그게 벌써 한 달도 더 된 결심이다. 그런다고 예민한 게 어디 쉽사리 카라가 앉질 않고, 별로 상황도 바뀐 게 없다. 병원 일에 지쳐 지난주에만 진료실 9명 중 3명이 그만뒀다. 인레이 세팅을 들어가면 본딩 준비할 사람이 없다. 지난 토요일 오전엔 위생사 4명과 32명을 봤다. 와중에 나는 당일 재수술 두 건을 욱여넣었다. 다음 달엔 2명이 더 그만둔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매일같이 찾아가 왜 이리 직업의식이 없느냐고 따지고 싶은 전임 원장보다, 동료 의식 없이 책임감만 운운하는 나라는 놈이 문제다. 예민하게 제 멋대로 하고 싶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도 개원할 때가 된 것 같다.



지난주 근처 사는 동기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누군가는 사회에 분노를, 나는 삶에 불만을 끼얹어 툴툴툴툴, 홀짝홀짝. 너무 늦기 전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가다, 그 사이에 조그마한 누군가가 빚어놓았을 더 조그마한 눈사람을 발견하곤 우두커니 서있었다. 배시시 웃으며, 그냥 봄볕에 그늘눈 녹듯이 아까의 분노도 불만도 녹아버렸다. 예민함이란 눈사람보다 빨리 녹는, 이토록 사소한 것이다. 이러고 나는 또 며칠 지나면 까치처럼 예민해졌다, 정오의 올빼미처럼 누그러들겠지. 다들 그렇게 사나 보다.



.

.

.




오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재지팩트 노래가 나오길래 카운터 양반을 강레오 셰프가 최강록 도전자를 째려보듯 쳐다봤다. 아니, 그저껜 무려 검정치마 앨범을 틀어줬는 걸 - 그것도 Team Baby가 아니라 Thirsty를. 나만의 사업장을 만들면 그런 식의 제멋대로 인디병 선곡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음악은 사소한 치유 능력이 있고, 그러니 적어도 병원에선 가능한 많은 이들의 귀에 잡히는 노래를 들려줘야겠다고.



10월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틀어야지. 9월에는, 그래 September는 꼭 넣어야겠다 - 황정민 씨의 아들 출산곡이었다는. 12월엔 부블레의 캐럴을 잔뜩 틀고, 새해 전날엔 ‘출발’을 틀고 ‘이젠 안녕’을 틀고. 나머진 잘 모르겠다. 이웃 분들이 댓글로 추천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환자가 접수대로 오면 신청곡을 받아도 볼까.


- 아, 갑자기 다모토리를 가고 싶어 진 건 연말이라 그런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양말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