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격 유형에 대한 관찰

예민함에 대하여, 서문

by 이원장

예민함과 내향성은 후천적 형질이기보다 유전-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에 가깝다. 타고난 감각 수용과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속내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다만 유년시절부터 시작한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일부 강화되거나 반대로 조금 희미해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양한 외부 조건은 이들에게 일반적인 성격의 남들에 비해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타인과 부대끼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이들은 인내, 억압, 예측, 단절, 합리화, 회피 등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방어 기제’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러한 대처는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벽, 필터 역할을 한다. 마치 무질서한 밀가루 반죽에 틀을 찍어 다루기 쉬운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 듯, 예측 불가능한 외부 조건을 정제된 형태의 자극으로 변형하여 민감한 자아가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름망은 상수보다 변수가 지배적인 세상(특히 인간관계)에서는 제대로 적용시키가 어렵다. 삶이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적절히 반응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아 갈등 혹은 불편이 빚어지기도 한다.



유년시절


이들의 유년 시절은 각별한 주의가 동반된 돌봄이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절한 훈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더구나 공동체주의, 더 나아가 전체주의 성향에 가까운 한국 교육 체계에서는 개인 맞춤형의 세심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예민하고 내성적인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기질 변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그 예시이다.

자꾸 옷을 잡아당기거나 불쾌한 신체 접촉을 하며 괴롭히는 옆 자리 아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다 같은 친구’ 혹은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상대가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라고 강요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어도 편식을 잘못된 행동으로 규정짓고 잔반을 남기지 않을 것을 유도. 극단적인 경우 억지로 꼭꼭 씹어 넘길 것을 강요


예민한 지시 사항에 대해 이유를 묻거나 거절 의사를 밝힐 시 역정을 내며 강압적인 지시를 통한 행동을 강요(‘잔말 말고 그냥 해’).



이러한 어른과 사회의 일방적인 훈육방식은 예민하지 않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였을 때에는 전체의 틀에 간편하게 끼워 맞추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지만(그러나 근본적인 도덕 가치관 형성, 인성 함양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겉에 드러나는 행동만 교정하는 성과주의식 훈육의 경우 후일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크다), 예민한 아이의 경우 역효과를 내어 예민한 기질이 강화되거나 갈등 상황을 회피하는 성향으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내향적이고 예민한 T씨 관찰 일지

<아래 서술이 해당 유형의 대표성을 띄는 것이 아니라 한 예시임을 밝힌다>

T씨는 기본적으로 완벽주의자 성향인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을 추구한다기보다 실패를 기피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오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고, 이미 알고 있는 것 위주로 행하며, 자신이 정해놓은 선을 침범하는 타인을 싫어한다. 따라서 시간 약속에 민감하고 계획되지 않은 여행을 꺼린다.

그가 부지런할 경우에는 임기응변을 기대하지 않고 철저한 계획을 통해 행동에 나서기 때문에 모자람 없는 실행가의 면모를 보이고, 게으를 경우 하나의 행동과 실행에도 계획에 들여야 하는 노력이 남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짐짓 포기하고 혼자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기도 한다.

민폐를 싫어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신도 남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지 않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꺼린다.

다만 인간은 원래 자기 눈의 대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끌을 크게 보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은 대체로 괜찮다 행동한다 생각하고 타인의 행동은 엄격하게 바라보는 경향성을 띌 수밖에 없다.
그도 타인의 선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상대가 말없이 넘어가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상대에겐 조금도 빗금조차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그의 태도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순, 일명 '내로남불'을 느끼기도 한다.

거슬리는 자극이 많기 때문에 타인에게 지적을 하고 싶어 하고 이를 합리적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점차 사회화가 되면서 사람들이 지적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더 나아가 지적을 해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도 잘 지적을 하지 않게 되고, 다만 몇 차례 자신만의 기준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시 조용히 관계를 끊어버릴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친구와 지인 관계가 있기보다, 자신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 소수의 오랜 친구 몇 명만 곁에 두는 경우가 많다.

그는 기본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조건 투성이인 단체 생활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예민한 감각이 불쾌한 자극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의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수준으로 설정된 환경의 단체 생활(ex.군대)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특히 MT나 회식과 같이 공동으로 해야 하는 행동을 통한 익숙하지 않은 변칙적인 감각이 강요되는 상황은 더욱 피하려고 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같은 원리로 환경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장소, 낯선 음식, 낯선 인물을 꺼리고 혹여나 새로운 경험을 시도할 때에도 정제된 환경에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행을 할 시 음식, 잠자리, 기후, 위생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 남다른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여럿이서 여행을 할 경우 정해진 한도의 예산과 일정을 분배하는 데에 있어 양보가 적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낯선 이에게 쉽사리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지 않고 그와 동시에 이유 없는 희생을 꺼린다. 그렇기 때문에 살갑거나 다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차가워 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피해를 끼치거나 일을 떠맡기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특별히 비난을 받지도 않는다. 물리적-심리적 개체 공간(Personal space)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범위보다 좁으며, 낯선 사람이 이를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말,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 사람에게 의구심을 가지며 열 가지 장점이 있더라도 한 가지 단점이 거슬리는 상대의 경우 관계를 끊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직장에서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다. 해야 한다는 판단이 일단 서면 대강하지 않고 실수가 적으며 기한을 놓치지 않는다. 자기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남의 개인 사정을 쉽사리 봐주지 않기 때문에 중간 관리자 역할에서 효율적이다. 팀장, 파트장, 총무, 마름(!) 등의 직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포용력이 떨어져 다방면의 인재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막연한 도전을 꺼리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나와 너, 혹은 우리의 친구인 T씨. 누구에게나 있는 예민한 포인트와 내성적인 순간.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할까, 고쳐야할까? 다른 사람의 예민함에는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전혀 전문적이지 않고 근거도 없는 예민함에 대한 고찰 에세이, <예민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