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공유된 유머, 교양
몇 년 전 대학생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데, 그런 날 있지 않는가, 이상하게 텐션은 안 오르고 피곤하기만 한 날. 자리를 가능한 자연스럽고 빠르게 파할 요량으로 대화 중간중간마다 "야, 슬슬 가자"를 계속 던지며 동태를 살폈다. 한 시간 쯤 되었을까, 열 네 번째 <가자>를 뱉자 한 친구가 내게 이러는 것이었다.
"야, 뭐 <오발탄>이냐?"
속으로 살짝 녀석의 센스에 감탄했다.
‘<수능 국어를 위한 한국 현대 문학> 좀 뒤적거려 봤네, 이 친구.'
다른 친구들은 못 들은 것인지 이해 못한 것인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우린 서로 피식 웃으며 눈빛만으로 서로의 '교양'에 조금은 뿌듯해했다. 그 친구와 그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꼭 저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즈음부터 자주 놀러다닌 기억이 난다.
공감대 형성은 즐거운 대화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공감대 형성이 기반되지 않은 일방적인 폭소 유도를 즐거운 대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스탠드업 코미디이자 일방적인 강연이지 대화가 아니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즐거워야 좋은 대화 아니겠는가.
국민MC로 불리는 유재석 씨가 진행하고 있는 <유퀴즈>를 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펀드 매니저를 만나면 경제 이야기를, 국방 전문가를 만나면 무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고 질문한다. 어떤 누구를 만나도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것이다.
자기의 커리어도 전문가답게 깊게 파야하는 우리로서는 많은 영역들을 다 알기 매우 어렵다. 준전문가를 만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가능하고 간단한 질문 정도 던질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꽤나 훌륭한 교양이라고 본다. 지금의 내가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교양 지식의 방향이기도 하다.
현대는 매스미디어로 인해 예능, 드라마, 영화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컨텐츠가 생산되고 배포되는 시대다. 그로 인해 공감대 형성 재료의 생성과 소멸의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예는 <이러다간 다-죽어! (오징어게임)>, <동작, 그만 밑 장 빼기냐?(타짜)> 와 같은 영화/드라마부터, <가능한-(1박2일 김종민 대추)>, <무야호(무한도전 할아버지)> 와 같은 예능까지 다양하다. 또 보다시피 현대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유머는 영상매체에서 생성되어 전파된 ‘밈(meme)’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유튜브를 비롯한 알고리즘, SNS 기반의 스몰미디어 시대이기도 하다. 매스 미디어만 존재하던 불과 20년 전의 과거와 더욱 다른 점은 ‘다른 집단의 밈을 서로 모른다’는 점이다. KBS SBS MBC-3사의 드라마로 시청률 30%는 우습던, 전국민이 쉽게 대동단결하던 시대는 벗어난지 오래다. 요즘은 백만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도 아는 사람만 알지,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른다(20대 중에서도 <피지컬 갤러리>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단 사실에 난 좀 놀란 경험이 있다). 그래서 해당 채널 혹은 커뮤니티에서만 사용하는 밈과 드립을 공감대 형성한답시고 일반 모임에서 사용하면 분위기는 더욱 싸해지고, 여차하면 '그게 뭔데 씹덕아'를 듣기 십상이다. '설명이 필요한 드립은 실패한 드립이다' 라는 현대의 격언이 많은 현상들을 설명한다.
애초에 밈을 일상으로 들여오는 것은 교양의 깊이보다는 눈치의 영역에 가깝다. 적재적소에만 사용하면 오히려 일반 교양의 공감대보다 더 강력한 유대감을 발생시키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원래 소수자들끼리의 소속감은 더욱 강력한 법이다). 다만 특정 집단 안에서만 깔깔대는 것이 가능한 밈을 밖에서 사용하고서는 ‘저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네’ 하고 더욱 폐쇄적으로 살아가선 곤란할 것이다. 성별-세대-계급 간의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나는 이러한 세태롤 꼽기도 한다. 일흔 살 할머니에게 '그대 기억이~' 하고 소주병에 꽂아놓은 숟가락을 마이크 마냥 넘기고선 '지난 사랑이!’를 기대해서 되겠는가. 대화를 포함해 타인을 대할 때에는 나이 성별 세대 취향 모든 것을 자연스레 고려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타인의 관심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사견이지만 교양(여러 의미가 있지만 이 글에선 과거부터 현재까지 과학과 예술,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적인 지식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겠다)의 가치는 이러한 대목에서 오히려 더욱 진가가 발휘된다고 본다.
집단에게 있어서는 짧게 스쳐간 사실이 아니라 수 십, 수 백년간 이어져 함께 전승되어온 지식이고 진리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고 서로를 더욱 깊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로 인한 유대감과 즐거움은 덤이자 인류 문명을 여기까지 쌓아올린 축복이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국밥 다 식기 전에 화장실 잠깐 다녀오겠다는 친구에게 '오, 관운장!' 이라고 하는 유머라면, 아마 400년 전 정조 대왕님도 이해하고 웃으시지 않을까? 아마 겨울날 국밥집 들어가면 안경에 김서리는 것부터 공감하시겠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 말초적인 웃음만 자극하는 수많은 영상매체 밈과 달리 교양(역사와 문학, 과학)은 이해를 통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코미디나 예능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개연성 낮고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조차 영화에 비해서는 낮은 단계의 예술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영화는 특정 공간(영화관)에서 특정 시간(상영 시간)에 기승전결을 보여주고 끝까지 관객의 집중력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브라운관 앞으로 시청자를 계속 앉아있게 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딱히 없다. 그래서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더 가볍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로 제작될 수 밖에 없다. 막상 앉아서 TV를 틀었는데 집중을 해서 이해해야할 정도의 내용이라면 대중은 미간을 찌푸리곤 채널을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미디어인 Youtube가 드라마보다 더 가볍고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만 가득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담으로 개인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일부 연기자들끼리 영화배우, 탤런트, 코미디언 순으로 급을 나눴다고 하는데, 이러한 유희 수준의 단계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교양' 혹은 ' 상식' 이라는 것도 그 선을 긋기가 어렵다. 어디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에 들어서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알면 상식이요, 모르면 전문 지식 혹은 덕후의 잘난 척으로 치부한다. 술자리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장기자랑으로 흉내내는 사람과 은빛 스뎅 그릇에 소주를 담아 마시면서 정철의 관동별곡을 읊는 사람 중 누가 더 이상한 사람일까? 아는 건 많을수록 좋겠지만 아무튼 아웃풋은 뭐가 되었던지 적당히 해야하는 법이다.
(나는 요즘 술자리에서 이경영 씨 성대모사로 ‘원샷, 진행시켜’를 자주 사용한다.)
요즘 버스 지하철에서 심심할 때면 움베르토 에코 씨가 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읽고 있다. 과학, 문학, 철학, 역사에 걸쳐 수 천년을 아우르는 교양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머 소재로 사용하는 엄청난 지식인인 에코 씨가 쓴 잡문집이다.
그가 구사한 교양 유머의 예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 미국에서 기차는 탈 수도 안 탈 수도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막스 베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는 실수를 범한 죄에 대한 벌이다.
- 그 호텔에 다다랐을 때 나는 마치 의화단의 난이 벌어지는 동안 베이징에서 농성하던 서구 열강의 공사관원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좌약에는 바깥에서 안으로, 다시 말하면 표상의 세계에서 내면성의 세계로 향하는 인위적인 주향의 개념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좌약은 모든 입문 의식의 특성인 내향화라는 과정의 상징이 된다.
- [어떻게 지내십니까?] 에 대답하는 법. 1)아인슈타인 : 상대적으로 잘 지냅니다. 2)뤼미에르 : 기차 조심하세요! 3) 네로 : 몸과 마음이 불타는 듯 하오. 4)피카소 : 시기에 따라 다르지요. 5)프루스트 : 시간에게 시간을 줍시다. 6)비트겐슈타인 :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이런식으로 백 여명의 인물의 대답을 상상해 적어놓았다.)
그의 수많은 문장 중에 허탈한 웃음을 유발할 정도의 이해는 가까스로 해낸 유머를 적어둔 것인데, 사실 이해 못하는 부분이 더 많아 몇 페이지는 그냥 통채로 생략해버린 장도 있다. 내 지인 중 가장 박학다식한 분께서는, 이 책의 유머에 같이 웃기 위해 세상의 교양을 섭렵하는데 십 년 정도 걸렸다고 하셨다. 어휴, 난 그냥 침착맨 유튜브 보면서 쏘영이랑 웃고 말아야겠다.
움베르토 에코 씨가 웃자고 쓰신 글들을 읽으며 도무지 이해가 안가, 발음하다가 혀에 쥐가 날 것만 같은 인물명을 Mac북에 검색해가며 억지 웃음 지으려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내 모자란 상식과 교양을 마주해 더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아래의 말을 떠올리는데, 오늘도 동방예의지국의 유교보이로서 가까스로 뱉는 것을 참아본다 - 이탈리아말을 할 줄 모르므로.
"Che cos'è?(그게 뭔데? 십덕아.)” (에코 씨는 이탈리아 인이다)
p.s 움베르토 에코 씨가 처음의 ‘오발탄’ 유머를 들으면 함께 웃었을까? 잘해야 ‘타원(oval) 모양의 총알인가요?’ 라고 했겠죠. 여긴 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