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무슨 소문 들리던데?"
오늘 친구에게 대뜸 "요즘 너에 대한 소문 혹시 들은 것 있어?"라고 연락이 왔다. 소문이라니, 그럴 리가 있나. 소문이란 원래 친한 무리와 애매하게 아는 무리, 전혀 모르는 무리가 뒤섞여 있는 집단에서나 발생하는 현상 아니던가. 나도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졸업한 지 오래다. 요즘 통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내게는 이제 '소문'이란 단어가 들러붙을 겨를이 없다. 여럿 일하는 기업체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내 소문이라면 일단 궁금하지 않나. 들어나보려고 영문도 모르겠다는 투로 “응? 무슨 소문?" 하고 물었다. 아쉽게도 누가 들어도 신빙성 없고 별 재미도 없는 내용이었다. 친구도 말하면서 어이없단 듯 이죽이죽 웃으면서 얘기를 전하는데, 폭소 일변도의 말투인 걸로 보니 확인차 전화했다기보다 그냥 웃긴 얘기다 싶어 전한 모양이다. 슈퍼 스타와 열애설 같은 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문'이란 것의 제1의 특징을 꼽자면, 자극적인 거짓이 진실을 압도한다는 것 아닐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한번 퍼지기 시작한 거짓 소문은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되고 확대되어 더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거짓으로 변화되어 있고,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진실은 사실상 없다. 잔잔한 진실이 담긴 해명에 대중들은 듣는 데에 조차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소문에 조금이라도 사실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라면 해명의 과정은 더욱 골치 아파진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너 어제 쟤랑 술 먹고 쟤 집 가서 잤다며?"라는 소문이 들린다고 해보자. 이때 아래와 같은 해명은, 만약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적절치 않다.
"술은 먹은 것은 맞지만, 걔네 집에 가서 맥주 한 잔만 더한 후 잠은 각자 집에 가서 잤다."
위와 같은 가감 없는 사실 관계에 대한 반응은 뻔하다.
"뭐야, 걔 집에서 둘이 술 마신 게 맞긴 하네."
차라리 "어제 나 내내 집에서 혼자 있었는데 무슨 소리야!" 같은 거짓 진술이 상황 진정에 도움이 된다. 오히려 이게 더 진실처럼 들리지 않나?
평소에 조금이라도 사치를 부렸거나 술자리에서 한턱을 내는 등 경제적으로 풍족한 듯한 행동을 몇 번이라도 보였다면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는 1000억대 자산가'라는 소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관련 없는 독립된 사실들이 뭉쳐 소문에 뒷받침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상상력과 군중 심리가 인과 관계를 만들어 이어준다.
그나마 위처럼 소문에 노골적인 악의라도 없다면 다행이다. 대학생 시절, 나이와 돈이 많은 남자들만 만난다는 소문이 돌던 여학생이 있었다. 예쁘고 몸매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아마 파급이 더 컸을 것이다.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하지만, 영웅이 추락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까. 실제로 고급 외제차에서 내린다던가, 고가의 선물을 받는다던가 하는 ‘사실’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소문이 통째로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저기에 붙어있던 더욱 추잡한 가십들도 몇 개 포함해서. 신뢰도 여부를 떠나서, 대중들 때문에 일종의 잠재적 피해자가 계속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좀 얄궂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뒤에서 이런 말들이 돈다는 걸 그녀는 알았을까. 아마 어렴풋이라도 느끼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해명이나 설명을 하려 든 적이 없었다. 붙잡고 설명할 대상도 없었을 테고, 한다고 한들 딱히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셜록 홈즈 시즌 3> 막바지에는 ‘마그누센’이라는 인물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는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신문사까지 소유하고 있는 거부이다. 그는 정치인, 연예인, 기업가, 심지어 셜록의 조수 왓슨에게까지 그들의 약점이 담긴 협박성 메일을 보내 세상을 뒤에서 조종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그누센의 저택에는 협박을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사소한 과거와 개인 정보까지 담긴 자료들을 모아둔 '애플도어'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해킹에 대비하기 위해 아날로그로 문서화해둔 비밀문서 창고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셜록 홈즈가 왓슨과 메리, 그리고 의뢰인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애플 도어’를 찾아 파괴하기 위한 수사 과정을 그린 것이 셜록 시즌 3의 마지막 화 내용이다.
이 화의 백미는 전개가 절정에 이르러 셜록이 결국 '애플도어'를 찾아 들어갔을 때가 아닐까. 문을 열어제끼고 셜록이 발견한 것은, 텅 비어 있는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마그누센 뿐이었다. 자료를 보관한 문서 창고나 데이터 센터라고 생각했던 ‘애플도어’가, 사실 마그누센의 머릿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 궁전(Mind Palace)’를 가지고 있는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였고, 그가 가진 모든 협박성 정보들은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문서함을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며 뇌 한 구석에 떠올려 꺼내온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겨우 ‘기억’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과거에 한 잘못된 발언과 행동에도 인간이 불안에 떨지 않고 살 수 있는 이유는, 과거가 소멸되고 증거는 없기 때문이 아니었나(카톡 캡처가 사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명 '뻥카'로 협박은 할 수 있겠지만, 실물 자료가 없는 마그누센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의문이 떠오른 순간, 영화는 대답한다.
“Knowing, is only. (알고 있는 것이 전부야)”
“But you need other proof!
(하지만 다른 증거가 있어야 하잖아!)”
“I don’t have to prove it, I just have printed. (증명할 필요가 없지, 난 그저 찍으면 그걸로 끝인 걸.)”
언론을 소유한 부자, 그가 기억해내는 정보는 인쇄되어 곧 ‘증거’ 그 자체가 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지엽적이고 어린 소문 대신, 일말의 사실을 조합하여 헤드라인을 장식한 보도로 퍼트리면서.
내가 다니던 모교의 언론홍보영상학부(일명 ‘신방과’)에는 전공 기초 수업으로 ‘언론학개론’이 있었다. 어떤 교수님이셨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첫 수업에 하신 말씀이 있다.
“삼권 분립에 대해 정부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뉜다고 알고 있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제4의 기관, 언론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언론학 교수님의 후학 양성을 위한 자신감 심어주기 프로젝트 정도로 받아들였으나, 지금와서 보니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든다. 거기에 ‘금융’까지 더해서 총 5개의 영역이 대한민국의 큰 줄기를 구성하는 게 아닐까. 재벌 그룹의 언론과 금융 소유를 금지한 법이 이러한 맥락에서 있는 게 아닐지.
YouTube, Instagram 등 각종 SNS가 커지며 언론이 위상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자투리 시간까지 투자해가며 언론에 가치관과 취향이 들어설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언론의 힘은 여전히 거대하다. 더 세세해지고, 집요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부처가 되었을 뿐이다.
Meta, 혹은 Google 등 기업을 생각해 보자. 이들은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어떠한 정보도 ‘만들어내지’ 않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게시글을 만드는 사용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채, 공개되지 않은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을 유도하고 결정하기까지 한다. 대중의 Instagram 피드에 정치인, 기업, 혹은 특정 개인에게 부정적인 게시글만 뜨도록 설정했다고 해보자. 꼭 보도를 생성하는 집단만이 언론일까?
이 힘은 이제 개인에게도 분배되어, 모든 작은 소문은 언론 보도가 될 가능성을 부여받았다. 개인의 SNS가 알고리즘을 타거나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수 만, 수십 만이 보는 게시물이 되는 세상이다. 별 뜻 없이 올린 게시물이 제품을 품절시키기도, 인간을 매장시키기도 한다. ‘준’ 언론인이 생겨나기도 했다. 교육과 성찰보다 영향력을 먼저 갖추게 된 인플루언서, 유튜버, 블로거, 지역 카페 회원들까지.
기술과 세태는 변모했는데, 제도와 의식은 이에 따라오지 못했다. 대체로 소문의 무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개인의 책임감에 기대기엔, 이 언론의 힘이 가끔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뒷광고 논란’이나 연예계 찌라시 유튜버뿐만이 아니다. 왜, 요즘 초중고 학생들은 SNS를 이용해 왕따를 하기도 한다지 않는가. 오늘은 릴스를 둘러보다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반인 영상이 떠서 보았다. 정말 '완전한 일반인'이었고, 댓글창에는 친구들이 "너 담배 피우는 거 30만 명한테 얼굴 팔렸다"라고 놀리는 댓글이 보였다. 이제 일반인이 적는 글, 찍은 사진은 게시를 통해 소문이 되고, 보도가 된다. 이 소문 화살의 방향은 그 자신에게까지 향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소멸하지 않는 증거까지 남기면서 말이다.
‘나에 대한 소문’이라는 문구는 여전히 나를 가슴 뛰게 한다. 박동이 설렘과 기대라면 좋겠지만 두려움과 망설임에 가깝다. 왜 나는 ‘소문’이라는 단어에서 미담이 아니라 괴담을 먼저 떠올리는 건지! 혹시 무얼 잘못했나, 영사기 필름롤처럼 촤르르 돌아가며 복기한 인생 중 꼭 한 장면에서 만큼은 난 죄인으로 출연하기 마련이다.
남들이, 소문을 전달하는 친구가 얼마나 악의가 있었으랴. 디스패치 조차도 순수 악이 아니라 조회수로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유해성을 자각하려 노력하는 나조차도 자극적인 남의 소문에 솔깃하기 일쑤이니 별로 할 말도 없다. 눈치 보는 나와, 눈치 없이 소문을 퍼 나르는 남의 부정적 시너지라고 할 수 있겠다. 소문에 초연해지는 법을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이 세상 사람인 한, 남의 눈을 의식에서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지 싶지만.
사르트르는 대체로 옳더라! 역시 타인은 지옥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