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즈음 터진 일이다.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는 특정 의대의 이야기였지만,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다. 같은 집단이 의대와 한의대 가릴 것 없이 여러 지역에서 학교 당 수십 명씩 피해자를 양산한 것으로 보인다.
대략적인 배경과 사건 개요는 이렇다.
의-치-한 학생들은 이르면 본과 2학년(더 이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늦어도 본과 3학년 때는 신용으로만 마이너스 대출이 가능하다. 무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전문직 예정자로서, 은행 입장에서는 차기 우수 고객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약 3-4%의 이율로 최대한도 3천만 원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기준 금리 5%를 바라보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일단 뚫어놓고 사용을 안 하면 그만이니, 같은 학번 내에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활비, 술값, 보증금, 여행 비용 등 각자 사용하는 용도는 다양했다. 아마 전국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본과 4학년까지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면허만 따면, 3천만 원이었던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는 1억 5천만 원까지 대폭 늘었다.
사건은 바로 이 시점을 파고들었다.
정신적으론 아직 학생이지만 한도는 전문직으로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미 빚을 지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있는 바로 그 시점. 막 대출 한도가 늘어나 1억이 ‘생겼다’고 착각하기 쉬운 사회 초년생들에게, 한 사업가(일단 사업가라고 지칭하겠다)가 투자자를 모집한다고 등장한 것.
사업의 내용은 이랬다. 1억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면 사업자는 그 돈으로 포르셰 등의 고급 자동차를 3대 정도 구비를 한다. 그중 한 대는 돈을 맡긴 투자자에게 무상 리스로 빌려주고, 나머지 2대는 렌트 사업을 해서 수익을 낸다는 것.
여기까지만 들어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제안에 이상하리만큼 달콤한 조건이 추가로 붙었는데, 바로 ‘원금을 100% 보장하고 매달 일정한 높은 수익금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이 말만 들어도 대강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원금을 보장하고 일정한 수익금을 지급’ - 대놓고 폰지 사기였다는 것을.
폰지 사기가 무엇인지, 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역사 깊은 사기 형태에 대해 설명한 자료와 글은 많으니 굳이 덧붙이진 않겠다. 말이 많으니 다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딱 한 구절만 기억하면 된다. ‘원금 100% 환급, 일정한 수익률 보장’은 폰지 사기이고, 불법이다. 그래서 모든 사모, 공모 펀드는 원금 손실 가능성을 반드시 고지해야 하고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해선 안 된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 넘치는 세계에서 ‘100%’란 없기 때문이다.
당시 사기 행각은 그래도 몇 년 간은 성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윗 학번 의대 선배들 중에 먼저 투자한 사람들이 비싼 차를 몰고 수익금으로 고가의 옷과 신발을 사며 자랑스레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몇몇은 후배들에게 ‘너를 특별히 소개해준다’며 투자를 권하기도 했고, 그러한 화려한 외관에 끌려 투자한 후배들이 많았다. 자기 돈도 모자라 부모님과 지인의 돈까지 빌려 투자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 집단이 받은 돈으로 차를 사서 렌트 사업을 했는지, 아니면 주식을 했는지, 혹은 새로 끌어드린 사람의 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다단계성 돌려 막기만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2020년 코로나가 세계 경제를 침체기로 이끌면서부터 그 집단은 수익금을 안 보내기 시작했고, 원금을 돌려달라는 아우성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 자취를 감췄다.
“네가 1억 땡겨서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포르셰 너한테 한 대 주고 나머지로 돈 굴려서 매달 백 만원씩 보내줄게.”
포르쉐, 명품, 사업, 놀라운 수익률. 지금 시점에서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얼토당토않는 수식과 의심스러운 단어 천지지만, 과연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똑같은 상황에 빠졌었다면?
자신 있게 ‘이거 사기잖아!’ 외치며 주변인들을 구해낼 수 있었을까.
범죄, 그중 특히 사기에 관한 처벌이 너무 약한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도 꽤나 단련이 되었다. 전세 사기, 빌라왕 사건과 같이 교묘한 법의 허점을 파고들고 배후를 철저히 숨긴 형태가 아니고서야, 사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중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언론과 SNS를 통해 많은 사기 사례와 예방법을 듣는 국민임에도 불구, 가장 기초적인 금융 다단계인 폰지 사기는 왜 아직까지 횡횡한 것일까.
폰지 사기에 당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그들이 정상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두 눈을 막는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욕심에 눈이 멀다'라는 표현은 적당히 문학적인 과장이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것을, 크나큰 후회를 안고 사는 이들은 체감한다.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되뇌기도 한다. 위 사건의 경우 인간의 욕심에 불을 붙여 정상적인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초기 투자자로 하여금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모습과 과소비하는 행태를 주변에 뽐내듯 보여주고 다니게 했다. '저거 진짜로 주는 거구나?' - 사람은 자기가 직접 본 것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시각적 자극에 속기 쉬운 인간이 잘 설계된 화려한 광고에 이성이 오작동하는 건 흔한 일이다.
사기가 발생하는 건 당신이 멍청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기 집단은 방어적인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심리적으로 교묘한 설계를 하기 때문에, 쉽사리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신뢰를 얻기 위해 크게 '유명세' 혹은 '지인'을 활용한다.
1. 유명세를 활용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얼굴'에 관대하다. 꼭 사기가 아니더라도 신문, 방송 매스컴에 나와 얼굴을 알린 유명인이 진행하는 사업에는 괜스레 덜 까다로워지고, 신뢰를 보내게 된다. 그 유명세와 사업의 연관성은 아무 관련이 없는 데에도 말이다. 수많은 방송인들이 자기 얼굴과 이름을 내 건 사업(특히 기술력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요식업)을 꾸준히 내걸 수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공중파 방송인 뿐만 아니라 각종 유튜버/인플루언서들도 한몫하고 있다.
<유퀴즈>에도 나왔던 유튜버 '카걸 부부'를 기억하시는지. 테슬라 초기 투자자라는 둥, 맥라렌 딸이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는 둥 대충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사기 행각을 벌였지만 그것이 꽤나 통했는지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공중파 예능 프로까지 출연했다. 결국 들통나긴 했지만, 그들은 페라리 그림을 수입해서 판매한다고 방송을 통해 밝히는 등 점차 그들의 리플리 증후군을 사업화할 동향을 비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유명세를 이용해 폰지 혹은 다른 형태의 금융 사기를 벌였다면? 테슬라 지분 1%를 소유하고 전 세계 유수 기업 오너와 친분이 있으며, 이를 공중파에서 '보증'까지 해줬다는 문구를 내걸었다면? 감히 적지 않은 피해를 냈으리라 장담한다.
2. 지인에게 접근
지인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규모는 크지 않아도 가장 많이, 가장 쉽게 당하는 사기 형태다. 인간이란 동물은 아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기 때문이다. 당장 이 글의 시작이었던 '의대생 상대 다단계 금융 사기'만 해도 그렇다. 주변 친한 사람들이 많이 하고, 또 괜찮을 수익을 내는 것처럼 보이니 사기일 수도 있다는 자각을 아예 못한 채로 돈을 맡긴 것이다.
만약에 이런 투자 제안이 '익명'의 메시지로 왔다고 생각해 보자.
<특별 투자 제안! 포르셰/벤츠/BMW 렌트 사업. 1억으로 고급 승용차 리스 1대와 안정적인 10% 수익률을 약속드립니다. 원금 보장!>
과연 사기 피해자들은 겁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분명 무시하거나, 잠깐 구미가 당겼더라도 분명 '이거 사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그만뒀을 것이다.
더 확실하게 지인 찬스를 활용하기 위해서, 새로운 투자자를 물어올 때마다 기존 투자자에게 얼마간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다단계 사기이다. '너에게만 특별히 소개해준다'며 후배를 꼬드긴 선배가, 몇 백만 원의 추천금을 받기 위해 친분을 이용한 다단계 연결책이었을지도 모른단 것이다. 물론 선배도 결국 함께 피해자가 되었으니, 자신도 사실상 공범이란 걸 모르고 그랬을 확률이 크다. 좋은 상품도 추천해 주고 자기도 돈을 받는, 꿩 먹고 알 먹고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실상은 불붙은 몸으로 포옹하려 달려드는 불귀신이었지만. 아니, 어쩜 정말 한패였을지도 모르고.
아주 나쁜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들은 오랜 친구 사이 우정에 금을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주식이 상승장이다가 하락장이 될 때에는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던 구조가 급격히 무너진다. 상승장에 재미를 좀 본 개인투자자가, 친구와 지인에게 돈을 빌려 레버리지를 땡기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도 보통 이런 조건을 붙인다.
"원금은 내가 무조건 보장하고, 지금 내가 평균 수익률이 20 퍼 정도 되는데 절반을 너한테 수익금으로 얼마씩 줄게."
그러나 하락장엔 그런 약속은 무의미해지고, 파산할 때쯤이 되어서 조심스레 고백할 것이다.
이젠 돈이 없다고.
다단계성 사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투자를 한 것이었다고 해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의 돈으로 레버리지를 했고,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변에서만 서너 개의 사례가 떠오른다. 친구의 아버지가 회사 사람들과, 친구 어머님이 계모임에서, 아는 형이 중학교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와 직접 아는 운동부 코치는 자신이 지도한 어린 대학생들에게 투자 제안을 하였다.
우리는 몇 가지 편집된 사실만 가지고도 사람을 안다고 착각한다. 인간에게 내재된 그 오만이 불러오는 인문학적 문제점은 차치해 두더라도, 돈-사업-계약에 적용되었을 때는 정말 큰 문제의 불씨가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 타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세상엔 확실한 건 없고, 확신하는 이를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유명세와 지인 찬스, 그 두 가지 방식의 근본에는 피해자들과의 친분이 깔려 있다 - 유명인에게는 내적 친밀감을 느끼니까, 괜히 더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둘을 조합한 방식이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 역사상 최대 폰지 사기 사건 되시겠다.
자수성가한 금융가로 이름을 떨쳤던 메이도프는, 동시에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존경받는 어른이기도 했다. 수십 년간 자신의 이름을 딴 투자증권을 운영했는데, 매년 일정한 10% 수익률을 보장했기에 인기가 매우 좋았다. 게다가 그는 무려 나스닥 회장(!)까지 지냈으니...... 유명인이자 믿을 수 있는 동네 어르신으로서, 친분을 활용한 사기를 펼칠 최적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심지어 은행들도 그에게 투자했고,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상품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의 회사가 나스닥 전체 주식의 10-20%를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물이 한없이 들어오던 밑 빠진 독은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진실이 밝혀진다. 실제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로 유입된 자금들을 이용해 10%의 수익금만 지급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원금을 인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독촉을 못 버티고 파산한 회사와 함께, 버나드 메이도프는 경제 범죄자로서 무려 150년 형을 선고받고 2021년 4월 수감 중 사망하였다.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는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사기로 파산한 회사, 그리고 은퇴 자금을 맡겼으나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수많은 시민들의 죽음과 원망에 비할 수 있을까.
현대 미국에서조차 폰지 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터진 사례다. 인간은 어디서나, 여전히 어리석은 걸까? 세상은 결국 똑같은 걸까?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단 하나, 형량 정도가 있겠다. 150년 형이라니! 어휴, 대한민국 사법에선 어림도 없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꼬드김에 넘어갈 뻔하다가 내 글을 떠올리고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다면 그보다 보람찬 영향력은 없을 것 같다. 뭐, 세상에 사기가 폰지만 있겠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거나, 좀 더 다양한 사기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속임수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성공을 추구하기 전에 그릇된 성공의 희생양이 되는 걸 피하는 게 먼저다. 책은 귀찮고, 이 글도 겨우 읽어낸 분들이라면 딱 한 문장만 기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