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마침표는 없다

AI와 초등 수학, 새로운 시장의 문을 두드리다

by studio imparo 소희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기회도 알아보지 못한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필요 없습니다."


담당자의 말은 친절했지만, 16년 동안 교육 현장을 누빈 나는 그 말의 이면을 읽었다. '자료가 필요 없다'는 말은 곧 '준비성과 전문성을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라'는 무언의 요구다.


강사의 본능이 깨어났다.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오늘은 별로 준비 못 했어요'라고 말한 적 없는, 어떤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업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그 본능이.


AI를 활용한 중등 수학지도사과정이라는 새로운 갈래를 설득하기 위해 이틀 밤을 새벽 3시까지 불태웠다.



'설명을 잘하는 강사가 설명을 잘하는 아이를 만든다'는 나의 철학,

이 한 문장 속에는 내가 모든 수업에서 강조해 온 메타인지 교육의 정수가 담겨 있다. 단순히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풀었는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아이들.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이들. 그것이 진짜 수학 실력이다.



면접실의 공기는 따뜻했다.


센터장님과 교육팀장님은 나의 전문성에 귀를 기울였고,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요즘 학부모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우리 아이는 왜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를까?' AI가 그 부분을 도울 수 있다니, 이거 정말 새롭네요."

교육팀장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찾던 차별화 포인트가 바로 이거예요."



하지만 세상은 내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면접 끝자락, 센터장님은 한발 더 나아간 제안을 던지셨다.


"수업안은 정말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요. 중등 학부모들은... 솔직히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학원 스케줄, 내신 준비, 입시 상담으로 정신없는 분들이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표정관리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센터장님의 다음 말에 나는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대신 이런 건 어떨까요? 차라리 시간이 넉넉한 초등 학부모를 타깃으로 'AI 활용 초등 수학 코칭 과정'을 신설하는 겁니다. 초등은 중등만큼 입시에 쫓기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된 학습 습관을 잡아주고 싶어 하는 학부모가 많거든요."

"3월에 2시간짜리 특강으로 시작해서 반응을 보고, 괜찮으면 3월 특강으로 시작해 2분기 정규 수업까지 연결해 봅시다."



합격도 불합격도 아닌, 제3의 길


결론적으로 지원했던 중등 수학 지도사 과정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전략적 전환'이었다. 센터는 내게 기존의 자격증 과정이 아닌, 새로운 시장의 기획자 역할을 제안한 셈이다.


기분은 오묘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노멀(Normal)'한 상태. 가장 강력하다고 믿었던 내 무기가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야 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16년 강사 생활에서 배운 게 있다. 교육은 유연해야 한다는 것. 학생에 맞춰 설명 방식을 바꾸듯, 시장에 맞춰 전략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산책, 그리고 내면의 재정비


집으로 돌아와 반려견 쎄뇨와 산책을 나섰다.

"우리 공주, 산책 갈까?"


화창한 햇살 아래 바람은 매섭게 불었다. 불합격의 씁쓸함보다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짜야한다는 긴장감이 바람에 실려 왔다. 초등 수학. 학부모 대상. AI 활용. 특강에서 정규 과정으로의 확장.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저녁 6시에는 다른 센터의 발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쪽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함 대신, 나는 지금의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로 했다.


산책이 즐거운 우리 공주입니다.

어정쩡한 마침표는 없다


산책이 끝나면 다시 노트북을 켜야 한다. 이제는 중등이 아닌, 초등 수학과 학부모의 마음을 파고들 AI 활용 계획안을 짜야하니까. 어정쩡하게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갈 길이 조금 더 넓어진 것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만든 이 프로그램은 다른 곳에서도 나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6시의 소식에 연연하지 않고, 나는 다시 나만의 지도를 그린다. AI를 활용한 교육의 확장, 그 두 번째 페이지가 이제 막 펼쳐졌다.


16년 경력의 강사로서, 이제 나는 단순히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 한다. 남이 만든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며 진화시키는 것.

내가 살아남으려면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설레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아자아자! 박소희.

오늘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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