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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 Aug 17. 2024

초보운전 스티커와 자격지심

붙여지고 떼어질 때.



초보운전 스티커는, 유난스럽지 않지만 눈에 띄고 다른 운전자들의 심기를 건들지 않는 것으로 하고 싶었다.

마치 도로에서 내가 보이고 싶은 캐릭터와도 비슷했다. 

튀지 않고 도로의 흐름에 적당히 잘 끼는 차.

속도부터 주춤거리는 움직임까지 어떻게 해도 눈에 띄는 초보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넷 속 수많은 초보운전 스티커들 중 그나마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차 뒷 유리 왼쪽 한편에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꾹꾹 눌러 단단하게 붙이지는 않았다.

까만 유리에 붙은 새하얀 글자들이 온 도로에 ‘나는 초보예요! 나는 운전에 미숙해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으니까. 언제든 운전이 늘었다는 확신이 들면 떼어버릴 생각이었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면 도로에서 배려와 양보를 받는 느낌이라 오래도록 떼지 않고 붙이고 다닌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후로 도로에서의 내 위치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배려보다는 차별에 가까운 느낌. 추월차선인 1차선에는 접근도 하지 말라는 듯이 코뿔소 같은 차들이 뒤따라와 나를 앞질러갔다. 

초보운전 스티커는 마치 첫인상처럼 나라는 사람을 계속해서 ‘초보’로 보이게 했다. 

매정한 도로세계에서 나의 성장을 격려해 주는 차들은 없었다. 


부아앙 하고 다른 차들이 나를 앞질러갈 때마다 뒷목에서 울분이 차올랐다. 

“나도 빨리 달리고 있잖아!” 

그 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한껏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어쩐지 초보운전 스티커는 내가 달리는 속도에서 50km를 늦추는 마법의 스티커처럼, 

나는 늘 느릿느릿 달리는 거북이 같았다.


그래도 쉽게 스티커를 뗄 수는 없었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아직 내 운전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니까. 운전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전날 밤부터 자꾸만 운전석에 앉은 내 모습을 상상하며 초조하고 긴장이 되었으니까. 아직 나에게 운전석은 어색했고, 작은 몸에 비해 차는 여전히 거대했다.


운전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고, 손이 꽁꽁 얼도록 추운 새해 아침이었다. 

1월 1일. 어떤 새로운 도전이라도 허락될 것 같은 시간이었다. 

스티커제거 스프레이를 사들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뒷유리에 쌓인 하얀 눈을 걷어내고 스프레이를 뿌렸다.

 날씨가 추울 때는 잘 떼어지지 않는다던데, 겨울이 지나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스티커는 분명히 심플한 디자인으로 샀던 것 같은데, 글자는 왜 이렇게 많은지 하나를 겨우 떼고 나서 남은 글자들을 보니 아득했다. 겨우 ‘초’를 다 뗐을 뿐인데 온몸에 진이 빠졌다. 하지만 ‘보운전’으로 다닐 생각을 하니 한껏 더 미숙해 보일 내 모습이 더 끔찍했다. 얼어붙은 손을 후후 녹이며 스프레이를 다시 뿌렸다. 뒷유리가 긁히는 것도 같았지만 나에게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는 게 더 중요했다. 


마지막 니은’ㄴ’을 다 떼고 나서야 무언가에서 벗어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밋밋한 뒷유리를 보며 나를 지켜주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밀려왔다. 

마냥 후련할 것만 같았는데 아이러니한 감정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스티커를 떼는 것에 집착하고, 떼어낸 것에 아쉬워했을까.

나에게 미숙하다는 것은, 겉으로는 잘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평가였다. 매번 나를 제쳐가는 차들 하나하나에 마음이 깎여 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무언가가 그런 미숙한 나를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나에게는 스티커였다.


한껏 투명해진 뒷유리로 처음 도로로 나가는 날, 나는 보호장비 없이 달리는 자유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날것의 몸으로 달리는 기분이었다. 달리는 도로의 차들과 이제야 동등해진 것 같았다. 


스티커와 상관없이 나를 대하는 도로는 큰 차이가 없거나, 같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운전 실력은 스티커 한 장 차이로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를 덮고 있던 ‘초보운전’이라는 하얀 자격지심이 한 꺼풀 벗겨지니 이제야 도로의 진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제쳐가던 차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급한 운전을 했던 거였네. 

나에게 빵, 하고 클락션을 울리고 앞에서도 계속 클락션을 울리고 있네. 


그리고 난 ‘정말로’ 운전에 더 익숙해져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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