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네컷 포토부스 기부 캠페인 <오늘만은 인생세컷>
폭력적인 아이디어
아이디어가 폭력적이라니, 표현이 조금 ‘폭력적일’ 수 있다. 우리가 회의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날카로운’, ‘충격적인’, ‘번뜩이는’과 같이 아이디어라는 단어와 친밀한 다른 표현들이 있지만, 일부러 아이디어와는 거리감이 있는 폭력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기분 좋은 파격성, 받아들여질 수 있는 독특함,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을 뜻한다.
“어, 폭력적인데?”
가끔 이렇게 우리를 때리는 아이디어가 있다. 따라가 보면 길이 있기도,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출발지는 항상 폭력성으로 두려 한다. 처음 들었을 때 다들 괜찮은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것이다. 일부만 좋다고 느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만약 그렇게 하더라도 무난한 아이디어가 되었다. 결국 애초에 안 괜찮은 걸 괜찮게 만들 수는 없음에 합의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여기서 말하는 폭력성은 ‘자극성’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무조건 주목만 받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리키는 독특한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의 폭력성과는 다름을 강조하고 싶다.
한 컷을 비워버리는 거야
나와 찬우, 둘이서 밤에 회의할 곳을 전전하다 PC방에 간 적이 있었다. 카페, 스터디 카페 모두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 절대 놀러 간 것이 아니다. 그래도 좋은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서, 두뇌를 자극하고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오버워치부터 한 판 하긴 했다. 그다음엔 정말 회의를 하긴 했다. 구체적인 클라이언트나 주제도 없이 일단 폭력적인 무언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생각이 날까 싶었는데, 났다.
“네 컷 사진에서, 한 컷을 비우는 거야”
왜 비우는지는, 지금부터 생각할 일이었다.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 아이디어가 우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내 돈을 주고 찍은 네 컷 사진 중에서 세 컷에만 내가 나온다면, 나머지 한 컷은 어디로 가야 할까? 기업에게 가기보다는 좋은 곳에 쓰여야 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비우는 행위가 긍정적인 경우는 어떤 게 있을지 생각했다.
네 칸의 프레임 중 한 칸을 비운다면, 나의 공간 한 칸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의미를 담는 건 어떨까? 사진의 한 칸을 공간 한 칸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의미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공간을 내어줄 대상을 고민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하철 교통약자 좌석 비워두기이다. 비운다는 행위로 나의 공간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가장 적절한 행위였다. 그런데 소재가 조금 뻔했다. 네 컷 사진을 주로 찍는 젊은 소비자가 돈을 내고 흔쾌히 참여할 만한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주거환경 개선 기부 캠페인이었다. 집이 없는 이들,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진 한 컷만큼의 공간을 기부하고, 이를 모아 진짜 공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대상은 주거취약계층 아동이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생활하는 동물들 중에 고민했다. 포토부스 사진 촬영은 즐거운 행위인 만큼 기부 역시 즐겁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지는 기부 주제인 유기견 생활환경개선으로 방향성을 결정했다.
<오늘만은 인생세컷>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인생네컷이다. 1등 브랜드여서가 아니라, 네 컷 사진 포토부스의 대명사여서이다. 인스타그램에 #인생네컷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타 브랜드의 포토부스에서 촬영한 사진이 반이다. 포토이즘, 하루필름, 포토시그니처, 홍대네컷 등 경쟁업체에서 사진을 촬영한 사람들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때에는 이를 ‘인생네컷’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한 컷을 비우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인생세컷"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었다. 인생네컷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생네컷의 메인 슬로건은 “네컷에 담긴 특별한 하루”이다. 소비자는 행복한 하루를 사진으로 남겨 특별한 하루를 완성한다. 이들의 하루를 더욱 특별하게, 행복한 순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방법이 바로 기부 캠페인이다. 소비자에게 기부는 더 이상 심각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드러내는 기분 좋은 행동이다. 인생네컷이 기부 캠페인을 진행한다면 특별한 하루라는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면서, 소비자에게 기억에 남는 흥미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만은 인생세컷 : 마지막 한 칸은 [유기견]에게 내어주세요
캠페인 명은 <오늘만은 인생세컷>이다. 소비자가 사진을 촬영할 때에 인생네컷 앱에서 <오늘만은 인생세컷> 프레임을 선택하고 촬영을 하면 인생네컷은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형태의 캠페인이다. 프레임에는 실제 보호소에서 생활하는 유기견의 사진을 담았다. 소비자는 마지막 컷을 촬영할 때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 숨는 방식으로 기부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기부의 의미에 더해 참여하는 재미까지 제공할 것이다. 인생네컷은 촬영 과정을 타임랩스로 영상화해서 제공하는데, 이 영상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줄 캠페인이라고 생각했다.
캠페인 확산 방식에도 자신이 있었다. 네 컷 사진은 기업이 애쓰지 않아도 SNS에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콘텐츠이다. 소비자가 공유한 사진에서 한 컷이 비어있다면 어떨까? 이러한 파격적인 비주얼은 주변인의 관심을 끌면서 자연스러운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생네컷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도 효과적인 매체였다. 여기에는 새 프레임이 출시될 때마다 게시글이 업로드되는데, 지인 태그 등 소비자의 반응이 활발한 편이기 때문이다. “20대 뭐하지?”와 같은 정보 계정 바이럴과도 잘 맞는 캠페인이다. “한 칸을 비우면 기부가 된다고?”라는 제목의 카드뉴스 게시물을 업로드했을 때 지나친 광고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 소비자의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지난 3월, 경쟁 업체인 포토이즘의 프레임 선택을 통한 산불 피해 기부 캠페인의 결과를 참고했을 때 높은 참여도가 예상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정중하게 고사합니다
답변을 받지 못한 다른 클라이언트와 달리, “정중하게 고사한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감사했다. 거절당하더라도 답변은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광고업계에는 기획비가 없다고 들었을 때,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는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지만, 그 시간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수익은 아이디어를 집행, 대행하는 데에서 나온다.
우리는 수주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판매하며 기획비를 받으려고 한다. 광고 구제샵(@studiowagzac)에서 판매 중이다. 거의 새것 같은 미개봉 상품이지만, 중고 제품이기 때문에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기획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캠페인의 실제 집행 역시 소화해낼 능력이 있다.)
무엇이든 비우고 싶은 브랜드,
혹은 색다른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고 싶은 브랜드에게 추천하는 아이디어이다.
contact@wagzac.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