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 우리는 마케팅 책을 한 권씩 요약해서 발표하는 독서 스터디를 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포지셔닝>에 따르면, 1위가 이미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서라도 1위가 되라고 한다. 탄산음료 “7UP(세븐업)”은 강력한 1위가 있는 콜라 시장을 피해 “The Uncola" 라는 카피를 썼다고 한다. 이 단순하고도 확실한 진리는 회의 때 자주 인용되곤 했다. 상대적으로 전형적인 광고를 하는 1위 업체에 비해, 우리는 후발 주자에게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편이었다. TOM(Top Of Mind) 브랜드, 머릿속 1등 브랜드의 강력함을 알기에 캠페인의 목표는 대부분이 ‘1위 되기’였다.
(좌) 알 리스, 잭 트라우트의 <포지셔닝> / (우) 세븐업의 <The Uncola> 광고
디저트 카페 시장 1위 브랜드는?
한 팀원이 커피와 디저트를 사 온 적이 있었다. 늘 그렇듯 일상적인 대화는 물 흐르듯 회의로 이어졌는데, 우리가 깨달은 사실은 디저트 카페 시장 1위 브랜드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련 통계를 찾아봐도 디저트가 맛있는 카페에 대한 소비자 의견 정도만 있지, 확고한 1위 브랜드가 없었다.
“1위가 없다면 누구나 1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디저트를 팔기로 결심했다. 눈에 띈 클라이언트는 디저트39였다. 인지도가 크게 높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브랜드 명부터 디저트를 강조하면서 인기 메뉴, 매력적인 캐릭터, 독특한 패키징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브랜딩이 잘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39가지 디저트를 소개한다는 처음의 방향성과는 달리 음료와 디저트 종류가 (정말로) 셀 수 없이 많았고, 인테리어 등 고급화를 추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가성비 브랜드로서의 마케팅이 혼재했다.
디저트39 매장 전경
너희는 전혀 스윙하고 있지 않아
연주와 스윙, 둘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래 영상을 본 이들도 쉽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차이가 있음을 느낄 것이다. 스윙하는 브랜드와 그렇지 않은 브랜드의 차이는 소비자도 느낀다. 디저트39는 열심히 말을 하고 있었는데 소비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맛있는 크로칸 슈, 가성비 좋은 음료, 독특한 패키징으로 기억되는 디저트39에는 제품 그 이상의 경험이 부재했다. 일방향 소통을 쌍방향 소통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소비자 참여형 경험을 제공하기로 했다.
레퍼런스를 찾아보았다. 브랜드는 소비자와 친해지고 싶을 때 어떤 물건들을 건네는지. 테라 스푸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맥주를 딸 때 가장 청량한 소리를 낸다는 그 물건처럼, 디저트를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독특하고 극단적인 물건을 줄까? 빨대? 포크?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굿즈의 종류도 정말 다양했다. 기본적인 오브젝트 굿즈부터 부적, 그리고 타투 스티커도 있었다. 타투 스티커라니. 판박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9x년생으로서 반갑고 신기했다. 당시 캐릿을 뒤덮은 꾸미기 트렌드와도 잘 어울렸다. 다만 디저트 브랜드가 왜 스티커를 주는지, 그걸 소비자가 어떻게 몸에 붙이게 할지가 모호했다.
"스티커를 컵에 붙이는 건 어때? 디저트39는 리유저블 컵을 쓰잖아"
디저트39는 배달이나 포장 주문 시에도 일회용 컵이 아닌 리유저블 컵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컵에는 심플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데, 이 캐릭터를 꾸미는 스티커를 주자는 의견이었다.
재미있었다. 될 것 같았다. 가보기로 했다.
출처 : 매직채널 (스타일쉐어 판매 제품)
나만의 리유저블 컵 꾸미기, 디저트 삼꾸
디저트39는 작은 사치, 그리고 특별함을 추구하는 브랜드이다. MZ세대에게 특별함이란 ‘나만의 것’이다. MBTI를 비롯한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스스로를 유형화하는 트렌드나,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물건을 꾸미는 트렌드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어떠한 대상에 스스로를 투영하거나(테스트), 어떠한 물건에 자기만의 개성을 입혀(꾸미기)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MZ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만의 것, 특별함을 추구한다고 정리했다. 따라서 소비자가 ‘나만의 것’을 소유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면 디저트39는 특별함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디저트39의 브랜드 가치
<디저트 삼꾸> 캠페인은 음료와 함께 스티커 팩을 제공하는 심플한 이벤트이다. 환경을 위해 리유저블 컵을 제공하는 브랜드의 의도를 해치지 않도록 쉽게 제거하여 분리수거할 수 있는 리무버블 스티커 팩을 제공하기로 했다. 스티커 팩에는 감정 상태, 행동, 성격 유형, 디저트 메뉴 등의 요소가 들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MBTI 유형, 현재 감정 등을 스티커로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캐릭터에 투영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입히며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컵에 대한 소유감을 강화하고, 재사용 가능성을 높이며, 브랜드 친숙도를 제고할 것이다.
적극적인 참여 유도와 확산을 위해 후속 이벤트도 기획했는데, 우선 #디저트삼꾸 해시태그와 함께 직접 꾸민 리유저블 컵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제공한다. 또한 컵 꾸미기 공모전을 열어 투표를 통해 1등 참가자를 선정하고 수상작은 실제 텀블러로 제작한다. 이벤트가 확산된다면 추후에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한 새로운 스티커 팩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리유저블 컵, 심플한 캐릭터, 특별함이라는 가치. 이렇게 3가지 이유로 디저트39만이 할 수 있는, 디저트 39에 딱 맞는 이벤트임을 강조했다.
<디저트 삼꾸> 예시 시안
브랜드가 살아있다
불 꺼진 박물관에서 갑자기 움직이는 전시물들처럼, 마치 나만을 향하는 것 같은 말을 걸어오는 브랜드는 꽤나 매력적이지 않을까? 친구 사이의 가장 큰 자산은 둘만 아는, 둘 사이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말을 거는 브랜드가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를 만들면 소비자와 친구가 된다."
브랜드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디저트39라는 다소 생소한 브랜드가 말을 걸어왔을 때 흔쾌히 소비자가 답할 만한 방식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이 제안서를 통해 팀의 방향성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소비자가 광고를 광고로 느끼지 않고 자기 손으로 나서서 참여하게 하는 것이 궁극의 광고라는 합의점을 찾았다.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은근슬쩍) 브랜드의 본질을 전달하는 그런 광고. 우리는 인지보다는 경험을 목표로 하는 것이 잘 맞았다.
그래서 경험을 주는 대행사, 아니 광고 집행사가 되기로 했다.
또다시 실패, 근데 이제 배움을 곁들인
제안서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목표가 너무 거창했다. “우리 캠페인으로 디저트 카페 시장 1위가 된다고?” 우리부터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앞단의 논리를 짜는 데에 시간을 정말 많이 썼다. 나만의 것, 특별함이라는 돌파구를 찾아 완성하긴 했지만 여전히 본체는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결국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사람들 아닐까? 근거 있는 아이디어는 중요하지만 근거가 아이디어를 잡아먹어선 안 됐다.
말을 거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면서 정작 스튜디오 와그작의 브랜딩을 소홀히 했다.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열심히 상황 분석을 해도 우리는 클라이언트보다 한 수 아래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말을 걸어야 했다. 메일을 받는 담당자님이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그런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