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해소제를 팔기로 결심한 우리는, 나올 때까지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그렇게 하다 하다 복권까지 나왔다. 숙취해소제는 항상 묶음 할인을 해준다. 한 명이 사서 술자리의 모든 사람이 나눠 먹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여러 개를 사서 술자리에서 숙취해소제 포장재를 동전으로 긁으며 놀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게, 왜 숙취해소제는 항상 다음날만 얘기하지? 오늘 재밌게 놀자는 메시지를 전해볼까?"
제가 예언 하나 할게요
대부분의 숙취해소제는 다음 날의 고통을 줄여주는 효능을 강조한다. 상쾌환은 타 숙취해소제 제품처럼 음주 다음 날의 상쾌함을 소구하면서도, 음주 중의 즐거움에 대해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USP를 내세우고 있었다. 당시 상쾌환의 광고에서는 성시경과 혜리가 삐진 사람, 우는 사람, 목소리 커지는 사람, 한 얘기 또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 한다. 우리가 찾던 클라이언트였다. 숙취해소제 구매는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다음날 숙취를 줄여주기 위한 배려의 목적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지금, 나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숙취해소제를 다 같이 먹으라는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상쾌환 기존 광고
나를 위해 너도 먹자
단순히 구매만 하는 물건이 아니라 구매해서 누군가에게 주는 물건인 상쾌환은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숙취해소제의 구매 형태와 상쾌환의 USP를 연결하는 메지를 도출했다.
“나를 위해 너도 먹자”
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상쾌환을 챙겨 먹고 술자리를 즐기자.
상쾌환 기존 광고에서 다루듯이, 술자리에서는 지나친 음주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상황들이 자주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피하기 위해 상쾌환을 구매하라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전달 방식에 있어서 복권 아이디어는 적합하지 못했다. 나를 위해 너도 먹는 숙취해소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술자리의 즐거움만을 다뤄서는 안 됐다. 상쾌환을 먹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부정적인 상황을, 최대한 유쾌하게 보여줄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달리러 가나요, 달래러 가나요?”
술자리에서 취해버린 사람들을 챙기고 있는 내 모습, 어쩌면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거울은 어때?"
거울에 부착하는 스티커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오게 됐다. 이용자가 거울 앞에 서면 광고 속 (술에 잔뜩 취한) 인물과 함께 술자리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안은 취해 우는 친구 버전과 잠들어버린 직장 동료 버전을 제작했다. 이용자는 술자리에 가는 길에 거울을 보고 매무새를 정리하며 자연스럽게 광고를 접하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SNS에 공유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상쾌환은 음주 30분 전에 복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따라서 소비자는 술자리에 가기 전에 상쾌환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 위해 술자리로 가는 경로 상에 상쾌환의 필요성을 상기하는 광고를 집행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떠올린 매체가 지하철이었다. 강남, 홍대, 신촌 등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지하철역을 활용한다면 타겟의 상황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거울 스티커는 지하철역 거울에 부착하기로 했다.
술자리에 가는 중인 당신,
지금 달리러 가나요, 아니면 달래러 가나요?
최종 목업
“인간은 치약이 아닙니다”
호기롭게 시작한 우리의 첫 번째 제안서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완성하고는 며칠간 뿌듯할 정도로 애정이 있던 아이디어였는데, 채택이 되지 않아 심리적인 타격이 컸다. 2021년의 순진한 우리는, 거절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쌓아온 시간은 성공을 안겨주기도 했고, 광고 구제샵(@studiowagzac)의 멋진 빈티지 상품이 되기도 했다.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인간은 치약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시간을 우리는 치약으로 살고 있습니다. 짜내고, 짜내다가, 텅 빈 껍데기로 버려지는 삶.” - TBWA 유병욱 CD의 책 <평소의 발견> 중
짜내고 짜내다 보면 뭔가 나오긴 했다. 딱 한번 양치할 수 있을 만큼의 치약이 나왔다. 그다음은 번아웃이었다. 다 쓰고 난 치약처럼 쭈글쭈글해졌다.
“3시간은 넘기지 말자”
우리의 집중력은 딱 3시간 까지였다. 그다음부터는 정적이 토론보다 길어지는 고통의 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그땐 회의실을 벗어나 각자의 일상을 채우러 가는 것이 곧 아이디어 회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든든히 채워온 일상에서, 이를테면 회의하러 오는 길에 본 지하철 거울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풀어낼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아이디어 회의는 3시간을 넘기지 말자고.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3시간이 지나면 칼같이 회의를 끝내자고. 미리 얘기하자면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회의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얻어내고 끝냈다. 적절한 제약은 생각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3시간 이내에 우리는 결국 “와그작” 빈틈을 찾아 부수고, 새로운 영감을 캐러 각자의 일상으로 떠날 것을.